[진천여행] 삼복더위의 뜨거움이 가득한 날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김유신장군의 탄생지와 태실을 찾아 가다.
신라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통일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신라의 장군 김유신
김유신 장군의 탄생지와 태실을 찾아 무더위가 한창인 날 길을 떠난다.
김유신장군 탄생지는 보탑사를 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데, 그동안 보탑사를 찾아가면서 차창밖으로 보기만 하였는데 오늘은 날 잡아 가기로 한다.
오늘은 탄생지뿐만아니라 태령산 정상에 있는 태실을 찾을 결심을 하고 길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
왜 오늘, 그것도 이렇게 삼복더위의 뜨거움이 가득한 날 찾기로 한 것인지
산을 오르면서 후회가 막심이 된다.
그냥 탄생지만 보고 갔으면 좋으련만, 태실을 찾아 간다고 하여 그 고생을 하였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이곳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김유신 장군이 태어난 곳이며 그의 태실이 묻혀있는 곳이다. 태실은 아이가 출산한 뒤 나오는 탯줄을 보관하는 곳을 말한다.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은 1996년 6월 11일 사적 제41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태령산 정상에 있는 김유신 장군의 태실>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 문봉리
즉 계양마을은
김유신이 태어난 곳으로 만노군 태수로 부임한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 김서현 장군이 집무를 보던 곳이다. 장군은 이곳에서 태어나 화랑이 되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막아냈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으며,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 자주성을 지키는데 공헌하였다.
김유신 장군은
신라 역사상 가장 높은 관등인 태대각간을 지냈고, 흥덕왕 10년에는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되었으며 고려시대까지는 국가에서 주관하여 봄과 가을로 제사를 올렸다. 지금은 진천군에서 군수를 초헌관으로 하여 제를 지내고 있다.
흥무대왕김유신유허비
그 옛날
삼국을 통일하며 한반도를 호령하던 김유신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이제는 그 유적지로만 있을뿐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과 유허비와 안내문만 덩그라니 있다.
(저기에 보이는 건물은 길상사를 찾았을 때 해설사님에게 여쭤보니 재실로 사용하던 건물로 지금은 방치수준이라고 하였다.)
탄생지를 뒤로하고 장군의 태실을 찾아 이동한다.
김유신 탄생지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는 활궁장에 도착하니 어르신 두분과 젊은사람 한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인사를 건네고
활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는 나누며 활을 쏠 수 있냐고 여쭈니 활을 쏠 수는 없다고 한다.
다만 활을 한번 잡아보라고 하여 활시위를 잡아당기니 자세가 좋다고 한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태실을 올라갈 것인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여쭈니 자기들 걸음으로 40분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그럼
나는 한시간 정도면 갔다올 수 있겠구나 하고 태실로 가는 길을 안내를 받아 출발한다.
활궁장 뒤로 가면 이런 오르막길을 만나게 된다.
오르막 길에서 내려다 본 활궁장
넓직하니 잘 정리된 활궁장을 보면서 활을 한번 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선 연보정을 찾아간다.
활궁장 바로 윗쪽에 있어 찾기가 쉽다.
잘 정리가 되어 있는 넓직한 길을 걸어간다.
연보정은 김유신 장군과의 관련뿐만아니라 신라시대에 성을 쌓을 때 사용되던 수법과 같이 자연석을 이용하여 옛 식으로 쌓아올린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식수로 사용하였다는 연보정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다.
연보정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둥글게 둘러 쌓았으며, 규모는 직경 1.8m, 최고높이 2.6m이다. 우물을 중심으로하여 상단과 하단에 고식(古式)의 석축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나, 윗편에 가공을 한 돌들이 보이는데 이것은 자연석을 쌓은 돌이 무너져 나중에 보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면에 우물로 내려갈 수 있도록 계단을 설치하고, 다시 4m 가량의 수로를 설치하여 물이 흐르도록 한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 우물은 태령산 중턱에서 나오는 지하수로 아무리 가뭄이 심하여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수로의 좌우에도 정교한 석축이 남아있으며, 주위에는 막쌓기식으로 축조한 3단 석축이 있어 만노군 치소나 옛 사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보정을 들어갔다 나와 산쪽을 보면 이와같이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길로 가지마시고 앞쪽(사진에서 오른쪽 길)으로 나 있는 길이 태실로 가는 길이다.
원추리꽃이 노랗게 피어있고 그 앞에 이름모를 꽃이 나의 길을 안내하고 있는 듯 피어있다.
뭐
이 정도 길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후회막급인지.
지금부터 시작이다.
저 앞에 있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계단길이 태실로 가는 계단의 시작이다.
저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다.
무더운 여름날
꼭 이렇게 산을 타야하는지
손에 든 것은 카메라가가 전부, 그리고 목에 두른 손수건하나
물하나도 들지 않고 길을 나서다니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
자자
슬슬 올라가본다.
자 보이시죠.
쉬엄쉬엄 걸어간다.
지도상에서 보니 태령산의 정상, 즉 태실이 있는 위치는 해발 450m 정도였다.
이정도면 강화도의 마니산 수준인디~~
강화도 마니산이 해발 469m인데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고 출발하다니
아마도
맨정신이 아닌가보다.
힘이드니 어디 쉬어갔으면 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피니 넘어져 있는 빈 의자가 보인다.
아!
내다리
좀 쉬었으면 좋으련만 ~~
길을 계속 이어진다.
간다
간다고요~~~
길에 피어있는 원추리꽃을 보면 쉬어간다.
사진을 찍으면 잠시 숨을 돌려본다.
아!
이쁘네
~~~
길가 여기저기 피어있어 길을 걷는 나의 발걸음을 조금은 가볍게 해준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 쉬어갈 수 있게 해준 니네들이 고맙다.
땀을 흘리며 걸어간다.
목에 두른 수건은 어느새 나의 왼손에 들려져 있고, 수시로 나의 얼굴로 목으로 가서 땀을 닦아내기 바쁘다.
위아래 할 것없이 온몸이 땀 투성이다.
얼마만에 이렇게 땀을 흘리는 것인지
숨이 턱에 차지만 그래도 땀을 흘리니 기분은 상쾌하다.
숨이 거의 턱밑까지 올라오고, 다리가 아파옴을 느낄 때가 되니 산의 능선이 보인다.
그럼 다 올라온건가?
이정표를 보니 좌측으로 조금만 가면된다.
지금 사진은 방금 온 길을 바라보고 찍은 것이니 계단에서 바라봤을 때는 오른쪽이 된다.
태령산 200m
능선길이라 숨을 골라가며 걸어간다.
능선길을 걸어가는데 눈앞에 작은 석축들이 보인다.
그 위로 올라서니 바로 앞에 약간 높게 만든 흙더미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오고, 좌측에 안내문이 보인다.
김유신 태실, 즉 태령산 정상에 왔구나.
정상에 오르니 둥그렇게 만든 기단이 보인다.
김유신 장군의 태실은 태령산성의 정상부에 있으며 자연석을 둥글게 기단으로 쌓고 주위에 돌담을 쌓아 신령스런 구역임을 나타내고 있다. 원형으로 3단의 석축을 쌓은 뒤, 그 위에 흙을 덮은 봉분형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탄생지 뒤편에 있는 태령산성은 태실을 둘러싼 돌담의 성격으로, 고대 신라의 산성 축조술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태실은 『삼국사기』와 역대의 지리지에 김유신의 태를 묻은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태실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성처럼 낮은 돌들이 쌓여있다.
길을 따라 한바퀴 둘러본다.
둘레가 그리 길지 않아 부담없이 둘러본다.
흙길을 걸어본다. 얼마만에 밟아보는 흙인가.
그것도 산꼭대기에서~~~
보이는 석축이 태실을 만들었을 때의 것이라면 신라시대의 석축인 것이다.
신라시대의 돌을 쌓는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김유신장군 태실을 둘러보고 이제 다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쉬워서 천천히 내려간다.
처음 올라가며 찍을 활궁장을 다시 찍어본다.
오늘 이렇게하여 그동안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김유신장군의 탄생지와 태실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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