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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여행] 고려 왕건, 조선 이성계의 건국설화가 살아 숨쉬는 곳, 임실 성수산 상이암

들꽃(野花) 2013. 10. 7. 18:23

[임실여행] 고려 왕건, 조선 이성계의 건국설화가 살아 숨쉬는 곳, 임실 성수산 상이암

 

임실 성수산의 상이암

임실에서의 여행중에 아주 특별한 곳이 있다고 하여 조회를 해보니 고려 왕건과 조선 이성계의 건국설화가 있다는 곳이라고 한다.

바로 성수산의 상이암을 말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고려와 조선의 건국을 꿈꾸며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얼마나 유명한 기도처여서 그럴까?

지금도 대권을 꿈꾸는 분들과 수험생 등 기도가 필요한 분들이 다녀가는 곳이라고 하니 나도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볼까 생각도 해본다.

 

상이암

'서로운 소리를 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이제 그 속으로 들어가본다.

 

 

 

<삼청동글씨가 새겨진 비석을 보호하는 어필각과 여의봉>

 

상이암은

성수산 골짜기에 있는 암자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신라 헌강왕 1년(875)년 도선국사가 창건하였고, 1394년(태조 3) 각여선사가 중수하였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전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리니 하늘에서 "앞으로 왕이 되리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절 이름을 상이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임실에서 출발하여 성수산 자연휴양림을 거쳐 임도삼거리에서 하차를 한다.

여기서 부터 걷기로 한다.

비록 콘크리트포장이 되어 있는 길이지만 왠지 기도처란 말을 들었기에 괜시리 공기도 좋아보이고 물도 좋을 것이고 거기에 맘씨도 깨끗해질 것 같아 천천히 자연을 만끽하며 길을 걷는다.

 

 

성수산 등산로 안내도

임도 삼거리에서 조금 올라가면 상이암을 갈 수 있다.

물론 조금이지만 산길이니 적당한 해석은 본인의 몫으로 남겨논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며 걸어보는 길

함께하는 이가 있어 좋다.

 

 

 

 

나이를 알 수 없는 굵은 나무들과 여기저기 쌓여져 있는 돌탑들이 현대판 콘크리트포장과 어울리지 않는 어울린 모습으로 있다.

나의 욕심이겠죠.

자연과 함께 하고픈, 비포장길이나 흙길 같은 것을 바라는 나의 욕심

버려야겠죠.

여기에 계신 스님이나 불공드리러 오는분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상일것 같네요.

 

 

 

참 묘하네요.

어찌 저리도 큰 돌을 쌓았을까요?

돌의 재질로 보아 전혀 다른돌인데 말입니다.

사람의 힘이 참으로 대단해 보입니다.

 

 

 

상이암으로 가는 길

거의 마지막이라고 하는 곳에 콘크리트포장길 옆으로 이렇게 돌계단으로 되어 있는 길이 나타나네요.

아까 했던말 취소합니다.

이끼끼고 삶의 때가 묻어있는 돌계단길, 아주 만족합니다.

얼른 이길로 걸어갑니다.

 

 

 

여기에도 돌탑이

절을 오가면서, 기도를 하러 오면서 쌓았을 돌탑들

소원이 이루어졌겠죠.

 

 

 

이끼긴 돌계단을 한발 한발 밟으면서 상이암으로 올라간다.

 

 

 

바위틈새로 나무의 뿌리가 보이네요.

생명의 소중함을 느껴봅니다.

 

상이암

절 이름치고는 특이하다.

상이암에는 고려태조 왕건과 조선태조 이성계가 왕이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두 왕조의 건국설화가 살아쉼쉬는 곳, 상이암

 

두 왕조의 건국설화를 잠깐 엿본다.

신라 말 고려 초에 도선국사가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과 함께 이곳을 지나던 중 성수산에 이르러 “이곳이야말로 하늘이 응하고 땅이 도와주는 처소입니다.”라고 하고는, 앞으로 이곳에서 8명의 성인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산 이름을 팔공산이라 했다고 한다. 도선국사의 말을 들은 왕건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끝내고는 못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하늘로부터 용이 내려와 왕건의 몸을 씻어주고 승천하면서 ‘성수만세(聖壽萬歲)’라 했다고 한다.(전통사찰광광종합정보 참조)

 

이에 왕건은 너무 기뻐 100일 기도를 했던 곳을 '환희담(歡喜潭)이라 이름 짓고, 그곳에 비석을 하나 세웠으며 지금도 상이람 아래에는 그때 왕건이 세웠다는 비석에 희미하나마 '왕태조필(王太祖筆)'이라는 글귀가 왕건의 필적으로 적혀있다고 한다.

 

 

 

드디어

상이암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삼청동'이란 글씨를 새긴 비석을 보호하는 어필각과 '삼청동'이란 글씨가 태조 이성계의 글씨라는 설명을 담은 비석이 눈앞에 떡하니 서 있다.

1922년에 세운 <조선태조고황제어필삼청동비각중수비>이다.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백일기도를 드렸으나 별다른 감응이 없자 이곳에서 3일을 더 맑은 계곡물에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드려 비로소 관음보살의 계시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비석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자연석에 새긴 것이라 한다.

'삼청동'

 

 

 

이성계는

여기서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고, 삼업을 깨끗이 했다고 하여 삼청동(三淸洞)이란 이름지었다.

삼업이란 불가에서 말하는 세가지 업으로서 입으로 짓는 죄 구업(口業), 자신의 몸을 위해 짓는 죄 신업(身業), 생각으로 짓는 죄 의업(意業)을 일컫는다. 서울의 삼청동은 그가 왕이 된 후에 이곳과 같은 이름을 지었다한다.(전라도 닷컴 일부 참조)

 

 

 

 

 

어필각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는 숱한 글씨들이 새겨져있다.

어찌 저런일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픈 사람들은 지금이나 예나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어필각 뒤의 여의봉의 바위에 앉아 기도를 드려볼까?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해야하나.

 

 

 

도선국사가 창건할 당시의 도선암이 상이암으로 바뀐 사연을 찾아보니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리니, 위에서부터 후에 왕이 되리라는 소리가 들렸다하여 상이암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상이암의 변천과정을 보니

태조 3년(1394)에 각여대사가 크게 중수하였고, 고종 31년(1894) 동학혁명 때 병화입은 것을 순종 3년(1909) 10월에 김대원선사가 재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의병대장 이석용이 상이암을 근거지로 해서 항일운동을 전개했으며, 그 여파로 상이암은 일본군대에 의해 불에 탔다. 1912년에 대원스님이 중건하였고,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1958년에 상이암재건위원회에 의해서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이암은 비록 기도처로 유명하지만 그 덕분에 여러번 소실되는 아픔을 겪은것 같다.

 

 

 

무량수전 앞 한켠에 우뚝솟아있는 편백나무

하나의 줄기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9가닥의 줄기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 저렇게 잘 자란 나무가 있다니

어쩜 기도처로 유명해서 일까?

 

 

 

상이암으로 올라오면서 약간의 땀이났지만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온몸이 시원하다.

이게 '기'라는 것일까?

꿈보다 해몽이 좋다.

 

 

상이암에 둘어서면

중심전각인 무량수전과 칠성각, 산신각을 중심으로 요사채와 절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숙소가 하나 있으며 여의봉 아래에 어필각이 있다.

 

 

 

 

 

칠성각

칠성각은 2003년에 설립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겹쳐마 팔작지붕으로 목조기와집이다. 칠성각 내부가 궁금하나 문이 닫혀있어서 볼 수 가 없었다.

 

 

산신각으로 올라가면서 뒤돌아본 상이암 전경

 

 

상이암 경내 뒤편에 3기의 부도가 있다.

 

 

좌로부터 해월당부도와 두곡당부도, 우측에 있는 부도는 사리의 주인공을 알 수 없다.

 

 

두곡당부도는

8각의 받침돌 위로 종모양의 탑신을 올리고,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은 구조로, 탑신에는 위아래에 넝쿨무늬를 두어 장식하였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4호 상이암부도)

 

 

 

 

 

해월당 부도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3단의 받침 위로, 항아리 모양을 한 탑신(塔身)의 몸돌을 두고, 지붕돌을 얹었다. 받침돌에는 세련되지 못한 연꽃무늬가 있고,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위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밑부분이 깨진 꽃봉오리 모양의 돌이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4호 상이암부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된 상이암부도

3기의 부도중 제일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부도는 주인공이 밝혀지지 않는 부도로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부도는 바닥돌 위로 전체의 무게를 받치기 위한 기단(基壇)을 두고, 그 위로 위아래를 자른 계란모양의 탑몸돌을 올린 후 지붕돌을 얹은 모습인데, 탑몸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위로, 둥근모양의 돌과 버섯모양의 돌이 차례로 올려져 길쭉한 머리장식을 이루고 있다.

 

 

 

산신각

편액이나 주련이 없는 정면과 측면이 모두1칸인 맞배지붕을 하고있는 목조기와집이다. 산신각 내부가 궁금하나 문이 닫혀있어서 볼 수 가 없었다.

 

 

산신각 앞에서 내려다본 칠성각

 

 

 

칠성각

 

 

 

상이암을 이제 떠난다.

나라를 건국하려면 100일 기도를 드려야하는데 한 시간도 머물지 못하고 되돌아가니 나라를 건국하기에는 아니되고 이런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돌아간다.

잠시 들렸던 상이암에서 나는 무엇을 얻어갈까?

곰곰히 생각을 해봐도 답이 없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찾아와야겠다는 생각만이 내가 얻어가는 것 같다.

 

 

상이암

주소 :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산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