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여행

[남원여행] 고요한 아침, 차가운 겨울날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남원의 자랑, 광한루원

들꽃(野花) 2014. 2. 5. 09:08

[남원여행] 고요한 아침, 차가운 겨울날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남원의 자랑, 광한루원

 

남원여행

남원으로 여행을 떠난다.

남원여행의 제일로 치는 곳, 광한루원의 아침은 어떨까?

차가운 기운이 서려있는 겨울날의 광한루원을 찾는다. 인적이 드문 텅비어있는 듯한 광한루원에는 지난날의 화려했던 추억을 그리워하듯 앙상한 나무가지와 너무나 잔잔한 마치 거울을 드려다보는듯 맑은 물이 나그네를 맞는다.

날이 추워 손이 주머니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시린 손에 두꺼운 장갑을 끼고 한적하니 광한루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몇년전 남원을 처음 찾았을 때 마침 축제가 열리고 있어 광한루원에서 보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마도 그때의 좋았던 추억이 있어 지금도 남원을 자주 찾는가보다.

다시금 남원을 간다해도 무조건 OK다.

 

명승 제33호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

 

 

광한루원의 백미 오작교를 걷고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넘 멋지다.

 

 

 

남원 광한루원의 정문으로 이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지상의 인간이 천상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된다는 상징적인 문이다.

청허부란 현판을 달고 있으며 광한루원이 천체우주를 지상에 건설한 작은 우주로서 하늘의 옥황상제가 사는 달나라 옥경인 광한청허부를 상징하므로 옥경을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로 청허부라 했다. 

 

 

무더운 여름날 팽나무 그늘아래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야기에 빠져봄이 어떨까?

이 팽나무는 450년전 광한루원 조성전 옛 "남산관" 마당에 정원수로 있었던 것을 기증받은 것으로 나무의 크기는 18m 정도이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 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거나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온 나무이다.

 

 

 

 

 

 

광한루원은 조선시대 지방관아에서 조성한 대표적인 관아정원으로 조선시대 세종조에 황희가 처음으로 이곳에 광통루를 지었으며, 정인지가 광한청허부라 칭한 것에 연유하여 광한루가 되었다.

선조조에 전라도 관찰사 정철이 광한루 앞에 요천의 물을 끌어들여 은하수를 뜻하는 못을 파고, 네 개의 반월형 교각으로 된 오작교를 놓아 정원을 조성하였다.

봉래, 방장 두 섬에는 대나무와 배롱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작은 정자인 영주각을 세웠다.

춘향전이 이곳을 배경으로 쓰여진 뒤 1920년 이후 광한루원 내에 춘향전과 관련된 시설이 들어섰다. 광한루원은 지방관아 정원으로서 국내에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고정원으로서 남원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명승이다.

 

 

 

 

 

오작교

해마다 칠월칠석이면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안타까운 천상의 사랑의 다리로 오작교는 까마귀 오(烏), 까치(鵲), 다리(橋)자를 쓴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보물 제281호 광한루

건물은 조선조 초기의 재상이었던 1419년 황희(黃喜)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다. 그 후 1434년 세종 16년에 남원부사 민여공이 중수하고 당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순찰사였던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 누에 올라 경관을 감상하다가 “오호라 호남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은, 나의 고향의 경승을 감상하게 되면 나의 고향보다 나은 곳이 없고, 더욱이 이곳 광한루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용성지(龍城誌)'고 했다.

또 일설에는 ”호남의 승경으로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지부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하고 감탄하여 그 후 광한루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건물은 1597년 정유재란으로 인해 불타고 현재의 건물은 1626년 당시 남원부사인 신감(申鑑)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한루의 앞뒤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호남제일루라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여기 서 있는 비석들은 과거에 남원과 인연을 맺은 부사, 관찰사, 어사들의 사적비 및 선정비 등으로 예전에는 남원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었었다.

비석의 제작연대가 조선중기부터 후기까지 다양하여 남원의 역사와 비석 형식의 변천과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춘향사당

 

 

열녀 춘향의 굳은 절개를 영원히 흠모하기 위해서 1931년에 건립된 사당으로 입구 대문은 '임 향한 일편단심'을 줄여 '단심문'이라 한다.

 

 

 

'열녀춘향사'라는 현판

 

 

춘향의 영정

최초 영정은 진주사람 강주수가 그려 기증하고, 1939년 가을 이당 김은호가 그린 영정을 나란히 봉안하였으나 한국전쟁 중에 훼손되어 1961년 기증받은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이 현재까지 봉안되고 있다.

 

 

 

 

부사 성안의 선정비

성안의(1561~1629)는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선조 24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과 남원부사를 거쳐 광주목사 등을 지냈으며 이 비석은 성안의가 선조 40년(1607)에 남원부사로 부임 후 4년여 동안 배푼 선정을 기리기 위해 광해군 3년(1611) 8월에 세워졌다.

 

 

 

 

널병(넓은)바위

널병(넓은)바위 또는 광암이라고 부르는 이 바위는 본래 남원성 동문앞에 있었던 것을 1950년대 말에 주변에 많은 비석들과 함께 이곳으로 옮겼다. 옛날 한 장수가 남원성 동문앞 개울가에 짊어져서 놓았다는 전설이 있는 이 바위에는 알터라고 부르는 30여개의 성혈(性穴)이 있다.

 

 

 

삼신산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을 섬으로 만들어 조성하였다. 왼쪽 섬이 영주산, 가운데는 봉래산, 오른쪽 오작교 옆에 있는 섬이 방장산이다. 섬과 섬 사이에는 아담한 구름다리가 있고, 영주산에는 영주각이, 방장산에는 6각의 방장정이 있다.

우리나라의 한라산은 영주산, 금강산은 봉래산, 지리산은 방장산에 해당한다.

 

 

 

 

방장정

삼신산의 영주(한라산), 봉래(금강산), 방장(지리산) 중방장에 위치하고 있다. 방장은 전라감사 송강 정철이 삼신도를 조성함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찾아가는 곳

광한루원

주소 전북 남원시 요천로 1447

전화번호 : 063-625-4861

홈페이지 : http://www.gwanghallu.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