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여행] 두들마을을 개척한 석계 이시명선생이 강학을 하던 곳-석천서당
[문화재답사/영양] 영양 석천서당(石川書當)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9호
소재지 :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318
경북 영양군 석보면의 두들마을
두들마을은 재령이씨의 집성촌으로 '언덕위에 마을'이란 뜻으로 1640년 석계 이시명 선생이 병자호란을 피해 영해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개척한 마을입니다. 이곳에는 석계 이시명 선생이 살았던 석계고택과 학생들을 가르쳤던 석천서당을 비롯한 30여채의 전통가옥과 한글 최초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쓴 여중군자 장계향 선생을 기리는 안동장씨유적비, 이문열 선생이 집필하는 광산문학연구소 등이 있습니다.
오늘은 석계 이시명 선생이 자녀들과 후학을 가르쳤던 석천서당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석천서당은
석계 이시명(1590∼1674) 선생이 영해에서 석보로 이사와 초당을 짓고 유생과 아들들에게 강학을 하던 곳으로 순조 31년(1831)에 후손들이 지금의 서당을 지었으며 고종 28년(1891)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석계 이시명선생은
퇴계의 학통을 이은 장흥효의 문인이며, 영남학파를 이은 이조판선 갈암 이현일의 부친이며, 선생은 1612년에 소과에 합격하였으나 정치가 혼란하고 1636년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함을 비분 강개하여 1640년(인조 18) 여러 아들들과 영해에서 석보로 이사를 와서 중대 위에 터를 잡고 석계초당을 짓고 이곳에서 자녀들과 후학들을 가르치며 벼슬길을 포기한채로 14년 동안 살았습니다.
처음에 초당이었으나 1674년 이시명이 안동에서 세상을 떠나자 1676년(숙종 2)에 상을 마친 넷째아 들 항재 이숭일이 고향으로 돌아와 선업을 이었습니다. 이숭일이 세상을 떠난 뒤 70여년 만에 만와 이인훈의 주도로 퇴락한 초당을 개축하여 석천서당’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석천서당은
두들산을 배산으로 하고 남서향으로 향하고 있는데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좌측에서 첫째와 넷째칸은 통칸방으로 꾸몄고, 둘째와 셋째칸은 마루를 깔았으며, 정면과 좌우면에 2자의 쪽마루를 내어 평난간을 둘렀고, 마루로 향하게 한 창호는 4분합의 들장지문(들어열개문)으로 하여 6칸을 1칸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서당 벽면에 현판들이 걸려있습니다.
<수산수신수창>
현판은 1662년(현종 3) 73번째 생일을 맞이한 이시명이 동생과 아들들이 축수를 해주자 감동하여 시를 지었으며 이 시에 대하여 일곱 아들들이 각각 차운한 시를 모아서 8수의 시를 적은 시판입니다.
이밖에도 서당에는 대산 이상정이 쓴 ‘석천서당기’를 비롯하여 1640년 이시명이 지은 ‘석계기’, 갈암 이현일의 ‘갈암차운’, 운악대훈, 좌해 이수영의 중수기 등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서당고에는 『안릉세전』,『석계선생문집』, 『항재선생문집』, 『냉천집』등 목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석천서당의 특이한 것은 굴뚝입니다.
일반적인 굴뚝은 아궁이의 반대편으로 높게 빼는 것이 일반적이나 석천서당의 굴뚝은 아궁이 바로 옆에 있어서 색다르게 보입니다. 해설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아궁이와 굴뚝을 같은 곳으로 한 것은 이렇게 해야 실내가 덥지 않아 공부하는 사람들이 졸지 않는다고 하여 그리 만들었다고 하니 효과가 있었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석천서당(石川書堂)의 현판을 자세히 보니 석천서당의 석을 한자로 “石”자로 쓰지 아니하고 石자의 口위에 ’(삐침)을 덧붙여 써있는 것이 보이네요. 石자를 몰라서 그리 쓴 것이 아닐진데 어떻게 ’(삐침)을 붙여 썼는지 궁금합니다.
나즈막한 담장과 화초들이 심어져 있는 서당에서 공부하는 그 옛날의 학동들을 그려봅니다.
공부하다 가끔씩 담장너머의 풍광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움이 겠죠.
찾아가는 곳
석천서당
소재지 :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318
'☞ 들꽃의 문화재답사 > 문화재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양여행] 두들마을의 가학을 정리, 기록한 학자 좌해 이수영의 석간고택 (0) | 2014.05.11 |
---|---|
[영양여행] 영양 석보면 두들마을의 유우당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5호 (0) | 2014.05.08 |
[문화재답사/청도] 청도 동헌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3호 (0) | 2014.01.07 |
[문화재답사/의왕] 청도 척화비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9호 (0) | 2014.01.06 |
[의정부여행] 조선후기 실학자 서계 박세당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 (0) | 2013.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