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여행]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조지훈 시인의 고향 - 영양 주실마을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조지훈 시인의 [승무] 한 구절입니다.
TV에서 언젠가 본 듯한 하이얀 고깔을 쓰고 춤을 추는 스님의 모습이 나그네의 뇌리속에서 아른거리는 날, 나그네의 발길은 조지훈 시인의 고향인 경북 영양군 '주실마을'을 향하고 있습니다.
조지훈 시인의 고향 '주실마을'
나그네와 주실마을의 첫 만남은 2008년 아름다운 숲으로 대상을 받은 '주실 마을 숲'에서의 '지훈시비'와의 만남입니다.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인 길 안쪽에 조지훈 시인의 시비가 보입니다.
주실마을을 들어서려면 주실숲을 지나야 하므로 숲은 마을을 들어서는 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당산목인 250여년생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은 숲으로 이어져 숲을 더욱더 아름답게 빛내주고 있습니다.
한적하니 고요한 숲속에서 조지훈 님의 시비를 만나니 더욱더 의미가 깊어집니다.
'빛을 찾아 가는 길'
사슴이랑 이리함께 산길을 가며
바위 틈에 어리우는 물을 마시면
살아 있는 즐거움의 저 언덕에서
아련히 풀피리도 들려오누나.
해바라기 닮아가는 내 눈동자는
紫雲 피어나는 靑銅의 香爐
東海 동녘 바다에 해 떠오는 아침에
북바치는 서름을 하소하리라.
돌뿌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은
푸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보자.
빛을 찾아 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
주실마을에 대해 설명하시는 해설사님
숲 한켠에 아름다운 철쭉도 피어 나그네를 맞이하여 줍니다.
푸르른 속에 붉은 꽃이 더욱더 빛을 내고 있습니다.
주실마을로 가는 다리 건너기 전 주실마을의 대표하는 조지훈 님에 관한 안내가 있어 살펴봅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
주실마을은
영양군 일원면 주곡리에 있는 마을로 본래 영양현에 딸린 주곡부곡이 있음으로 해 주실 또는 주곡이라고 했으며 지난 1914년 행정구역을 고칠 때에 감복동과 법곡동을 합해 주곡리라하고 일월면에 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1630년 이전에는 주씨(朱氏)가 살았으나 1630년 조선 중기 조광조의 친족 후손인 한양인 조전 선생이 사화를 피해 이 마을에 처음으로 들어와 정착한 뒤 매한이라 했고 1700년 무렵 매계 혹은 매곡으로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을 고칠 때 주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실마을은 시인 조지훈 선생의 고향으로 이곳의 조씨를 흔히 주실 조씨라 부르며, 개화기 서양 문물을 빨리 받아들였으며 1928년부터 지금까지도 양력설을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나그네의 시골동네도 한동안 양력설을 지내다고 지금은 설을 지내고 있는데 이곳은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네요.
월록서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2호)
조선시대 문신 옥천 조덕린의 손자 월하 조운도가 만곡 조술도와 함께 후진양성을 위해 1773년(영조 49)에 지은 서당으로 일월산아래 서남향으로 위치해 주변의 경치가 수려하고 학문을 연마하기에 좋았던 곳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2008년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은 주실숲
푸릇푸릇 새싹을 돋아내는 모습이 싱그러운 봄의 향기를 전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전하여 옵니다.
지훈 문학관
관람안내
- 관람시간 : 하절기(3월 ~ 10월) 오전 09:00 ~ 18:00
동절기(11월 ~ 2월) 오전 09:00 ~ 17:00
- 개관일 : 매일 개관
휴관일 : 1월 1일, 설날, 추석-
- 관람료 : 무료
지훈예술제
조지훈(1920 ~ 1968)
한국 현대시의 주류를 완성한 청록파 시인이며, 수필가, 한국학 연구가, 민속학과 민족운동사에 공헌을 하였으며, 한국문화사를 최초로 저술하였습니다. 저서로는 조지훈 시선, 한국민족운동사 등이 있습니다.
지훈 시 공원
봉황수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남은 단청
풍경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들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용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
승무
낙화
조지훈 시인의 동상
조지훈 시인의 본가 ' 방우산장'
이 가옥은 청록파 시인이자 국학자인 조지훈이 유년시절에 살던 집을 복원해 놓은 것으로 부친인 조헌영(제헌국회의원, 한의학자)을 따라 1936년에 상경할 때까지 성장기를 이집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2010년에 복원)
방우산장은 조지훈이 생전에 방우산장기라는 수필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집에 붙인 이름으로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가 있는 자리, 곧 그의 영혼의 새가 깃들이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지 모두 방우산장이라 하였기에 어린시절 그의 시혼이 깃든 이곳에 그 이름을 붙여 현판을 달았다고 합니다.
호은종택(조지훈 생가, 경상북도 기념물 제78호)
영양에 처음 들어논 입향조 조전의 둘째아들 조정형이 조선 인조 때 지은 것으로 경북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양반가의 모습을 하고 있는 'ㅁ'자형 집입니다.
이곳은 조지훈이 태어난 곳으로 이 건물은 정침과 대문채로 나눠지며 정침은 정면 7칸이며 사랑채는 정자 형식으로 되어 있고 서쪽에는 선생의 태실이 있다.
호은종택에 사는 조씨를 가르켜 칼날 같은 남인 집안이라하여 검남이라 불렀는데 검남의 집안으로서 체통을 지키기 위해 재물을 빌리지 않고, 남의 문장이나 학문을 빌리지 않고, 사람을 빌리지 않는다는 삼불차(三不借)의 가훈을 철저히 지켜 내려왔다고 합니다.
삼불차 중 사람을 빌리지 않는다. 무슨뜻일까?
그것은 양자를 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가들은 중에 아들이 없어서 양자를 들이지만 이 집안은 그런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16대 동안 양자를 들이지 않고 친자로 대를 이었다고 하는데 370년 동안 이어온 삼불차
지금 현세에 필요한 중요 덕목이 아닌가 합니다.
건물 오른쪽에 있는 방에서 조지훈 시인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주실마을은 박사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전북 임실군의 삼계면에는 박사가 40여명 나왔지만 그것은 면단위의 이야기이고 이곳은 조그만 마을이니 이곳이 어쩜 우리나라에서 박사가 제일 많이 배출된 마을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또한 호은종택을 등지고 정면을 바라보면 인상적인 봉우리 하나가 보입니다. 눈이 부실정도의 봉우리다. 정신이 번쩍 나게 한다. 하여 '문필봉'이라고 합니다. 문필봉은 글씨 쓰는 붓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찾아가는 곳
영양 주실마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
지훈 문학관 : http://jihun.yy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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