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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여행] 대동법을 실시토록 한 김육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김육비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7호

들꽃(野花) 2015. 2. 25. 23:50

[아산여행] 대동법을 실시토록 한 김육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김육비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7호

 

김육비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7호

 

김육비는 조선 현종 때 대동법을 주장하여 시행토록 한 김육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김육비를 만나러 가려면 먼저 충남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 있는 신창초등학교와 신창향교를 찾아가야 한다. 향교의 문을 상징하는 홍살문을 지나면 길 오른쪽에 너른 주차장을 만나게 되고 그 앞쪽에 많은 비석들을 만날 수 있다. 신창면에 산재해 있던 비석들을 한군데 모아 놓은 것으로 김육비는 그 비석들 가운데 세워져 있다.

 

 

 

김육비는 거북받침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었다.

비석의 높이는 182cm, 너비 71cm, 두께 20.5cm로 머릿돌에는 서로 노려 보는두 마리의 용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으며 비에 새긴 '순치 17년명'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현종 1년(1660)에 세웠던 것을 알 수 있다.

 

 

 

김육(1580~1658) 선생은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 호는 잠곡·회정당이며 1605년에 사마시에 입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1609년(광해군 1) 동료 태학생들과 함께 청종사오현소(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등 다섯 사람을 문묘에 향사할 것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린 일이 화근이 되어 문과에 응시할 자격이 박탈되자 성균관을 떠나 경기도 가평 잠곡 청덕동에 은거하였다. 청덕동에 머물며 회정당을 짓고 홀로 학문을 닦으면서 호를 잠곡이라 지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자 의금부 도사에 임명되었으며 음성현강, 사간원 정언, 안변도호부사, 예조참의, 승정원 우부스지, 충청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대동법의 시행을 건의하는 한편 수차를 만들어 보급하였으며 1649년 효종의 즉위와 더블어 사헌부 대사헌이 되고 우의정이 되자 대동법을 전국에 시행하는데 노력하였다. 이후 충청도에서 대동법을 시행하는데 성공하였고 1654년(효종 5년) 6월에 영의정에오르자 대동법의 시행 지역을 확대하고자 『호남대동사목 』을 구상하고 이를 1657년에 효종에게 바치면서 전라도에 대동법을 시행할 것을 건의하였다.

 

 

 

 

 

대동법은

각 지방의 토산물을 바치게 하는 공물법을 폐지하고 쌀과 포로 대신하는 것을 말하며

대동법의 실시로 농민의 부담을 줄이고, 국가의 재정도 확보하게 되었다.

 

 

 

 

 

 

 

 

 

아래 사진은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에 있는 대동법시행기념비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선 선조 41년(1608)에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었고, 효종 2년(1651) 충청감사로 있던 김육이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토록 상소를 하여 왕의 허락을 얻어 실시하게 되었다.

비는 효종 10년(1659)에 세웠다.

 

http://blog.daum.net/pjb1223/13002609

 

 

 

 

찾아가는 곳

김육비

충남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3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