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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여행]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 현장인 군산선의 군산 구 임피역 - 등록문화재 제208호

들꽃(野花) 2015. 8. 22. 05:00

[군산여행]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 현장인 군산선의 군산 구 임피역 - 등록문화재 제208호

 

등록문화재 제208호 군산 구 임피역

 

 

길을 나선다.

오늘은 이른 새벽 인천에서 출발하여 완주 모악산(전북도립미술관)으로 가는 여정이다.

다른 차편으로 가는 일행들보다 인천에서 좀 일찍 출발하여 도착지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 집사람에게 이야기도 없이 서해안고속도로동군산 IC를 나오면서 방향을 바꾼다.

보통 모악산(전북도립미술관)으로 가려면 동군산 IC로 나와 21번 국도를 이용하는데 오늘은 발 닿는 대로

가려고 첫번째 갈림길인 대야방면으로 방향을 튼다.

대야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직진을 하여 가는데 갈색바탕의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임피역사

갈색바탕의 안내판 글씨라면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 그리로 간다.

임피역사를 찾아가는 길은 오가는 차량들이 거의 없는 한적한 길이다.

임피역사 앞 길옆에 차를 주차시키고 안내판을 보니

지금은 폐역이 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역사였다.

 

 

 

등록문화재 제208호 군산 구 임피역

 

 

 

임피역으로 들어가는 좌측에 '옥구농민항일항쟁' 조형물이 있어 시선을 끈다.

 

오늘이 일제강점기에 36년간의 치욕의 순간을 벗어나는 광복절이다.

 

 

 

옥구농민항일항쟁은

악랄했던 일본의 식민 지배에 정면 대항한 사상 초유의 농민저항운동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조직적으로 전개된 농민항일운동으로서, 일제의 착취와 폭압에 항거한

대표적인 항일 투쟁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임피역사는

일제강점기에 전라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가 된

군산선의 역사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의 전면과 후면의 출입구는 박공면으로 구성하였고,

철로 쪽 대합실 출입구에 차양을 덧달아 본채 지붕과 차이를 두어 입체감과 함께 그늘을 제공하는 등

당시 농촌 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양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군산선은 1912년 호남선의 지선으로 완공되었으며, 임피역은 1936년 건립되었다.

본래 임피면 읍내리에 만들어졌어야 하는데 읍내리의 유림들이 기차가 지나가면

산이 끊기고 기차의 운행진동으로 임피지역의 기가 훼손된다는 풍수지리적 이유로 반대하여

술산리를 경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 274-3번지에 있는 임피역

 

임피역이 있는 술산리는 술(戌)자는 '개'라는 한자이고 산(山)자는 '뫼'라는 말이다.

이 마을 좌우에 '청룡', '백호' 두 혈(穴)이 있다 하는데,

이 큰 혈맥 때문에 개가 꼼짝 못하고 엎드려 있는 산이 '술뫼' 또는 '술매'다

 

이 마을에서 서수쪽으로 빠져나가는 길 안쪽 논 가운데에 큰 용구멍이 하나 있다.

약 180평 가량의 용구멍에서는 지금도 사철 물이 많이 솟아 그 밑바닥을 본 일 없고,

그 물로 인근 논은 가뭄을 모르고 농사를 지어왔다고 한다.

어찌나 깊은지 지금고 어린이들을 얼씬도 못하게 하고 있다.

 

 

 

임피역 우측에 우물과 오포대가 있어 당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우물

 

 

오포대

매 정오마다 10초간 사이렌을 울리고 있아오니 당시의 정취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임피역사와 함께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재래식 화장실이다.

 

 

임피역사에 딸린 화장실 겸 창고 건물로 연면적은 43.32㎡이며

1936년 무렵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피역사 내부

 

 

 

 

호남철도가와 조선총독부 철도국의 포스터

 

대륙으로 가는 최단 경로!

여행으로 약진하는 조선을 확인하자.

 

 

 

 

 

 

임피 간이역 이야기

임피역은 임피, 서수 지역에서 운반된 미곡을 군산항으로 반출하기 위한 수탈의 거점이었다.

힘들게 수확한 쌀을 빼앗긴 농민들은 깻묵과 나무껍질로 허기진 배를 달랬고,

역사 옆 미곡창고에서는 노동자들이 배고픔을 참고 쌀가마니를 실어 날랐다.

또한 임피역에는 태평양 전쟁에 끌려갔던 젊은이들과, 해방 후 돌아오지 못한 아들 딸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모들의 눈물이 서려있다.

 

 

 

 

 

한국전쟁 후 군산의 경공업이 발전하면서

많은 농촌 청년들이 공장에 취직해 통근열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으며,

생선장수들은 새벽열차를 타고 군산항에 나가 생선과 젓갈을 구입해 머리에 이고 팔았다.

한편 학생들은 임피역에서 통학열차를 타고 군산·익산·전주 지역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1934년 『신동아』에 발표한 채만식의 자전적 단편소설인 '레디메이드 인생'이다.

'레디·메이드(ready-made)' 인생이란

기성품 인생이라는 뜻으로 좁게는 식민 치하의 지식인, 넓게는 조선인 전체의 삶을 가리킨다.

채만식은 이 작품에서 자조적인 풍자와 반어법을 통해 지식인 실업자의 삶과 당시 사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군산선 대야방면의 철길

 

호남선의 지선인 군산선은 1912년 3월 6일 개통되었다.

일제가 군산선을 건설한 것은 호남평야의 풍부한 농산물을 수탈하고 군산의 일본인 상권을 확대시키기 위해서였다.

일본인 철도 경영자들은 조선인 승객을 차별하여 대우했다.

조선인들이 주로 타는 3등칸의 대우는 화물칸 이하였고,

요금 또한 조선인이 주로 이용하는 근거리 노선을 상대적으로 비싸게 책정하였다.

일제시대 임피에서 군산까지 철도 요금은 쌀 두되 값 정도였는데, 이는 일반 조선인들에게 부담스러운

금액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걸어다녔다고 한다.

 

 

 

군산선의 통학열차는

초기에는 화물차를 개조한 것이었는데 학생들은 이 열차를 타고 이리·군산에 있는 학교를 오갔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열차는 비둘기호, 통일호, 통근열차로 이름을 바꿔가며 승객들을 실어 날랐다.

그러나 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이 늘어나면서 통근열차 이용객을 점차 줄어들었고,

2007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군산선 통근열차는 운행을 중단하였다.

이를 대신해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운행하게 되었으나,

2008년 5월에는 서천-익산간 새마을호 운행마저 중지되면서 임피역은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게 되었다.

 

 

 

 

 

 

객차전시관

전시관에는 군산선과 일제의 수탈, 소설『탁류』·『세 길로』, 추억의 통학열차,

임피면의 역사와 문화, 군산여행정보, 쉼터로 구성되어 있다.

 

 

 

 

 

 

 

 

임피면의 역사

군산시 동부에 자리잡은 임피면은 풍요로운 충적평야로 인해 일찍이 번영을 누렸던 지역이다.

삼한시대 임피면은 마한의 54개 부족 중 하나인 시산족의 근거지로 신흥국이라 불렸으며

또한 소도라고도 불렸다. 이후 백제가 세력을 확장하며 임피지역은 시산군이라불리다가

통일신라 때인 757년에 임피라고 개명되었다.

임피는 방죽에 다다른다는 뜻으로 과거 이 일대에 바닷물을 막기 위한 방죽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의 추억이 되어버린 승차권과 일부기, 개표가위가 전시되어 있어 당시의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임피역을 둘러보고 있는데 익산에서 군산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술산리의 화기를 누르는 연방죽

 

 

 

방죽이란 물이 밀려드는 것을 막기 위한 둑 또는 인공적으로 만든 연못을 뜻한다.

 

이 방죽은 일제시대 이전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에는 연꽃을 키웠으므로 연(蓮)방죽이라 불렸다.

연방죽은 자연적인 퇴적과 쓰레기 투기 등으로 인해 조금씩 메워져 90년대에 완전히 매립되었다.

연방죽이 사라진 후 남자들이 잇따라 죽는 등 마을에 흉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무렵 지나가던 스님이 풍수를 보고는

'술산리의 지세는 화기가 강해 이를 누르려면 방죽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십 수 년이 지나도록 흉사가 끊이지 않자, 마을 주민들은 시에 연방죽의 복원을 청원하였다.

군산시청에서는 주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2013년 임피역 관광자원화사업의 일환으로 연방죽을 복원하였다.

 

 

 

 

 

 

 

시실리의 '거꾸로 가는 시계'

 

 

 

 

 

 

'논 이야기'

1946년 『해방문학선집』에 발표된 채만식의 단편소설로

일제치하 일인 토지 침탈 과정 및 해방 후 일본인 재산 처분 과정을 통해

농민의 현실과 부조리한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그려냈다.

 

 

 

술산리에 어린아이들이 지방의 지명을 넣어 부르던 노래가 있어 적어본다.

 

"알매(보덕리)가서 알을 낳고

깐치멀(창오리)가서 까 갖고

동세(월하기)와서 등불쓰고

술매(술산리)에서 술 마시고

사신고 탑골 가서 탁 고꾸라지네"

 

 

 

찾아가는 곳

 

등록문화재 제208호

군산 구 임피역

전북 군산시 서원석곡로 37-1(임피면, 임피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