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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여행] 원불교의 산실, 영광 원불교 영산성지

들꽃(野花) 2017. 5. 31. 18:51

[영광여행] 원불교의 산실, 영광 원불교 영산성지

 

원불교 영산성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원불교 영산성지는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방중빈 대종사(1891~1943)가 탄생하고

성장, 구도, 고행 끝에 큰 깨달음을 얻고 새 회상 원불교를 창립한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일대를

영산성지라 한다.

영산성지에는 소태산 대종사의 탄생가를 비롯하여 기도터인 삼밭재 마당바위,

입정에 들었던 선진포 입정터,

큰 깨침을 얻은 노루목 대각터,

제자들과 함께 바다를 막아 이른 정관평 방언답,

9인 제자가 목숨을 바쳐 기도를 올렸던 9인 기도봉,

법인성사를 이룬 구간도실터,

영산원, 법모실, 적공실, 학원실 등 초기교단 건물들이 있고,

원불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창립관,

그리고 원불교 성직자를 양성하는 영산선학대학교 등이 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원불교를 상징하는 커다란 원이 산 정상에 그려져 있다.

 

 

 

 

 

창립관

 

 

 

 

 

 

영모전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이하 역대 선령 열위의 법은을 추모하여 향례를 올리는 곳으로

원기 65년(1980)에 건립하였다.

영모전 안에는 전면에 4단의 제단을 조성하고 대종사소태산여래위 이하 역대 선령들의 합동 위패가 모셔져 있다.

매년 6월 1일과 12월 1일에는 이곳에서 합동 향례를 모신다.

 

 

 

 

적공실

원기 10년(1925) 경 승산 김형오 선진의 집을 옮겨 지은 건물로,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당대에는 영빈관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여학원실, 여직원실로 사용되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영산고아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적공실은 영산원 주변 건물 중 유일한 우진각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다.

 

 

 

법모실

원기 10년(1925) 경 지어진 건물로 원불교 제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 종사의 사가로

사용되었던 집이다. 원기 34년(1949) 정산 종사 일가가

익산으로 이사한 후 창고로 사용하다 원기 44년(1959)부터 3년간 원불교 제3대 종법사인 대산 김대거 종사가

기거했다. 원기 48년(1963)부터는 영산선원 원장의 숙소로 사용하다가 그 후 영산선원생들의 기숙사와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학교인 영산성지고등학교의 기숙사로도 사용됐다.

 

 

 

신성실

원기 10년(1925) 경 영산원 일대 건물과 함께 지어진 건물로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첫 여성제자 사타원 이원화 선진이 살았던 집이다.

사타원 이원화 선진은 구간도실 건축과 방언공사 등에 신성을 다해

조력하며 40여년 동안 영산지부의 안살림을 하였다.

이후 신성실은 원불교 초기 선진들의 숙소로 주로 사용되었다.

 

 

 

 

영산원

구수산 옥녀봉 아래에 있던 구간도실을 원기 8년(1923) 이곳으로 옮겨짓고 영산원이라 하였다.

구간도실은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9인 제자들이 방언공사를 하면서 원기 3년(1918)에 건립한 원불교 최초의 교당이다.

 

 

 

 

영산원 내실

 

 

 

영산성지 대각전

원불교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재세 시에 건축한 영산성지의 중심 건물이다.

영산교당의 교도 증가로 법회 장소가 협소하여 원기 21년(1936) 현 위치에

원불교의 법회 및 강연의 장소로 대각전을 건축하였다.

정면 불당에 일원상  ○을 봉안하였으며, 우측에 소태산 대종사의 진영을 모셨다.

원기 96년(2011)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제 제481호로 지정되었다.

 

 

 

 

 

 

 

 

 

 

 

 

찾아가는 곳

원불교 영산성지 : 전남 영광군 성지로 1367

전화번호 : 061-352-6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