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여행

[연천여행] 당일치기 연천여행,경순왕릉,호로고루,숭의전,당포성,은대리성,전곡리 유적,연천1일여행,

들꽃(野花) 2017. 6. 23. 06:00

[연천여행] 당일치기 연천여행,경순왕릉,호로고루,숭의전,당포성,은대리성,전곡리 유적

 

연천 당일치기 여행, 연천 1일 여행코스

 

2017년 5월 4일

4월 29일부터 5월 7일 까지 이어지는 9일간의 연휴

세상사 사연이 있는 나그네에게는 365일 내내 연휴지만

집사람은 그나마 효체험, 재량휴업일로 5월 4일 하루를 쉴 수 있어서 석가탄신일, 효체험, 어린이날로 이어지는

5일간의 연휴를 갖게 되었다.

주말에는 제천 시골집에 모내기를 가야해서 집사람과 모처럼 연천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온 것이다.

문화재를 찾아 전국을 다니면서

인천에서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는 연천지역은

전곡리 선사유적지와 재인폭포를 다녀온게

전부였는데 문화재를 검색해보니 찾아볼 문화재가 많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 찾아간 곳은

사적 제244호 연천 경순왕릉

사적 제467호 연천 호로고루

경기도 기념물 제158호 연천 학곡리 고인돌

경기도 기념물 제212호 연천 학곡리 적석총

사적 제223호 연천 숭의전지

사적 제468호 연천 당포성

사적 제469호 연천 은대리성

사적 제268호 연천 전곡리 유적

이다.

 

나그네의 첫번째 방문은 연천 경순왕릉이다.

'경순왕'

역사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듯할 것이다.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마의태자 아버지가 경순왕이다.

즉, 통일신라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의 무덤이 경주를 벗어나 연천에서 있는 것이다.

 

사적 제244호 연천 경순왕릉

포스팅 : http://blog.daum.net/pjb1223/13351343

 

 

 

사적 제244호 연천 경순왕릉

경순왕은 신라 56대 마지막 왕으로  재위기간이 927~935으로 927년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놀다

견훤의 습격을 받아 시해된 후 견훤에 의해 왕위에 올랐다.

전쟁으로 인해 백성이 많은 피해를 입자 군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935년 평화적으로 신라를

고려 왕건에게 넘겨주고 왕위를 물러난 신라 마지막 왕이다.

신라 왕릉 중 유일하게 경주 지역을 벗어난 릉이다.

 

 

 

경순왕릉의 너른 주차장

나그네 차량 한대와 문화해설사 차량 한대와 달랑 두대만이 주차되어 있다.

 

 

 

고려에 나라를 귀부한 경순왕은 태자보다 높은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받고 경주를 식읍으로 받아 최초의 사심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태조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을 두었으며,

귀부한지 43년 후인 978년 세상을 떠났다.

 

 

 

경순왕이 경종 3년(978년)에 개경(지금의 개성)에서 세상을 떠나자

이 곳에 능이 마련되었으나 그 후 오랜 세월동안 실전(失傳) 되었다가

조선시대 영조 23년(1747)에 다시 찾게 되었다.

경순왕릉은 조선시대 전형적인 묘소의 격식으로 재정비되어 능표, 양석, 장명등, 망주석 등이 이때 마련되었다.

 

 

 

 

신도비

 

 

 

 

두번째 찾아간 곳은

사적 제467호 연천 호로고루이다.

호로고루는 임진강 북안의 현무암 절벽위에 있는 고구려성으로

호로고루(瓠蘆古壘)라는 명칭은

일대의 임진강을 삼국시대부터 호로하라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성의 둘레는 401m로 크지 않지만 특이하게도 남쪽과 북쪽은 현무암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하고

평야로 이어지는 동쪽에만 너비 40m, 높이 10m, 길이 90m 정도의 성벽을 쌓아 삼각형 모양의 성을 만들었다.

 

사적 제467호 연천 호로고루

포스팅 : http://blog.daum.net/pjb1223/13351347

 

 

 

한강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이후 7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경으로 삼았는데, 임진강 하류에서부터 상류쪽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 보루 등 10여개의 고구려 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그 중 호로고루는 고구려 평양성과 백제 한성을 연결하는 간선도로상에 있을뿐 아니라 말을 타고

직접 임진강을 건널 수 있는 길목을 지킬 수 있었으므로 고구려의 남쪽 국경방어성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천 호로고루 홍보관과  앞에 서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홍보관 앞에 서 있는 광개토대왕릉비는 2002년 북한에 소재한 국보급 고구려 유물 및 벽화고분을 북한에서

직접 모형으로 제작해 우리나라에 제공한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의 결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민간의 남북사회문화협력사업을 주도하며 이 비를 소장하고 있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2015년 연천군에 이 비를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연천군은 고구려의 기상을 되새기고

남과 북의 통일과 화합을 기원하는 뜻을 담아

남한 지역을 대표하는 고구려 유적인 연천 호로고루에 이 비를 세우게 되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경기도 기념물 제158호 연천 학곡리 고인돌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불린다.

고인돌은 입지, 규모, 투입된 노동력, 축조 방법 등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기술수준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므로 고인돌은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158호 연천 학곡리 고인돌

포스팅 : http://blog.daum.net/pjb1223/13351352

 

 

 

연천 학곡리 고인돌은

땅위에 굄돌과 막음돌을 세워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대형 덮개돌을 올려 만든 전형적인 탁자식이다.

 

 

 

 

현재 고인돌은

양쪽을 막는 막음돌은 사라지고 두 매의 굄돌만 남아있다.

지석묘에 사용된 석재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으로 덮개돌과 받침돌은 많이 손질된 상태이다.

 

덮개돌은 약각 각이 진 6각형에 가깝다.

크기는 길이 2.8m, 너비 2.7m, 두께 0.45m로 북동방향으로 길게 놓여있다.

 

 

 

 

연천 학곡리 적석총은 

 

학곡리 고인돌을 보고 가는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돌마돌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m정도 떨어진

임진강변의 자연제방 위에 위치한 돌무지 무덤으로 매장시설인 묘곽은 모두 4기가 확인되었다.

 

경기도 기념물 제212호 연천 학곡리 적석총

포스팅 : http://blog.daum.net/pjb1223/13351359

 

 

 

유적은

강쪽의 구릉 말단부에 일정한 크기의 강돌을 보강하여 적석부의 붕괴와

유수로 인한 침식을 막고 자연구릉에 기대어 돌을 쌓은 후 구릉 정상부를 삭토하여 

그후 구릉 정상부를 정면하여 무덤방을 위치시키고 다시 강돌을 쌓아 마무리하였다.

무덤의 원래 크기는

25 × 10m 정도로 추정되나, 잦은 강물의 침범과 주변 개발로 파괴되면서 상당부분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길을 달려간다.

다음 목적지는 숭의전이다.

숭의전 가는 길에 잠시 새둥지마을 찾아간다.

새둥지마을은 백학면 구미리에 있으며 농림부지정 녹색농촌체험마을이다.

나그네처럼 이렇게 불쑥 찾아가면 아무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그냥 되돌아 나왔다.

 

숭의전 주차장에 차를 댄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후 숭의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데

홍살문 직전 좌측에 어수정이란 우물이 있어 목을 축일겸 찾아간다.

어수정은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물을 마신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왕건은 궁예의 신하로 있을 때 개성(당시 송악)과 철원(당시 태봉)을 왕래하면서

중간지점이었던 이곳에서 쉬어가며 물을 마셨다고 한다.

 

 

 

홍살문과 하마비

 

 

 

사적 제223호 연천 숭의전지

포스팅 : http://blog.daum.net/pjb1223/13351362

 

연천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를 비롯한 왕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현재 건물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다시 복원하여 놓은 곳이다.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전 왕조인 고려의 태조 왕건을 비롯하여 나라를 부흥시킨

4명의 왕들과 고려 충신 16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사당이다.

조선 초기 처음 사당이 건립되어

1451년(문종 1)에 숭의전이라 이름 지어졌으며 이후로 숭의전의 관리와 전례도

고려왕조의 후손들에게 맡겨졌다.

숭의전이 있던 자리는 원래 고려 태조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가 있었던 곳이다.

 

 

 

앙암재

재례 때 사용하는 향, 축, 폐 등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제례준비를 하며 머무르는 곳이다.

 

 

 

 

 

 

 

전사청

제례 때 사용할 제수를 준비하고 제기를 보관하는 곳이다.

 

 

 

숭의전

고려 4왕의 위패를 모신 경전

 

 

 

 

 

숭의전의 내력

사당 건립 후 1399년(정종 1년)에는 왕명에 의해

고려 태조를 비롯하여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원종(충경왕), 충렬왕, 공민왕 등 고려 8왕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425년(세종 7)에 이르러 조선의 종묘에는

5왕을 제사하는데 고려조의 사당에 8왕을 제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하여

태조, 현종, 문종, 원종 등의 4왕만을 봉향토록 하였다.

 

 

 

배신청

고려 16공신의 위패를 모신 곳

 

고려조의 충신 16명

(복지겸, 홍유, 신숭겸, 유금필, 배원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 등을

배향토록 하였다.

 

 

 

 

 

숭의전 앞에 있는 느티나무(550년)는 조선 문종 2년 왕씨 자손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이 나무가 웅웅 소리를 내며 울면

비나 눈이 많이 오고,

이 나무에 까치가 모여들면 마을에 경사가 나며,

까마귀가 모여들면 틀림없이 초상이 난다고 한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연천 당포성이다.

 

당포성은

전곡읍의 서북쪽 임진강 북안과 그 지류에 형성된 천연 절벽을 이용하여 만든 고구려시대의 돌로 쌓은 평지성으로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높은 수직 절벽이 끊어진 지점에 구축되어 있다.

 

사적 제468호 연천 당포성

포스팅 : http://blog.daum.net/pjb1223/13351363

 

 

 

 

당포성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 당포성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으나

허목의 [기언별집]에 '마전 앞의 언덕 강벽 위에 옛 진루가 있었는데 그 위에 총사가 있고,

그 앞의 나루를 당포라고 한다. 큰 우물이 흘러 진로가 소통된다. '라고

당포성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당포성은

서쪽 부분이 뽀족한 모양인 삼각형 형태로 이러한 구조때문에 가로막아 쌓은 동쪽 성벽은

매우 높게 구축되어 있으나 단애지대를 따라 구축된 남, 북 성벽은 낮게 축조되었다.

성의 전체적인 형태가 주변에 위치한 은대리성이나 호로고루와 매우 흡사하며

특히 축조방식은 호로고루와 매우 밀접하다.

 

 

 

임진강의 물길이 만들어낸 수 km에 달하는 수직절벽은

현무암 주상절리로 되어 있는데

높이 20여m에 달해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더라도

적을 막아낼 수 있는 자연 성벽 역활을 하고 있다.

따라서 평지로 연결된 부분만을 돌로 쌓았는데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현무암을 이용하였다.

 

 

은대리성을 찾아가는 길

가는 길에 잠시 임진강의 주상절리를 감상한다.

 

 

 

 

 

 

연천 은대리성

연천 은대리성은 한탄강과 차탄천의 합류지점에 형성된 삼각형의 하안단구 위에

축조된 삼국시대의 성곽이다.

 

사적 제469호 연천 은대리성

포스팅 : http://blog.daum.net/pjb1223/13351364

 

 

 

연천 은대리성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1995년에 발간된 [연천군사료집]에 의해서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1995년부터 2003년 사이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고구려토기 일부가 발견되는 등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의 성으로 추측된다.

 

 

 

연천 은대리성은

한탄강과 차탄천이 합류하는 곳이 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루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넓어지는 형태이다.

한탄강과 차탄천의 합류지점에 형성된 마여울은 수심이 낮아 강을 쉽게 건널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로 은대리성은 이곳을 통제하는 고구려성이다.

 

남벽과 북벽은 각각 자연 절벽을 그대로 성벽으로 활용하였으며

동벽은 동쪽에 형성된 개활지를 가로질로 축조되었다.

성의 규모는 동서길이 400m, 남북길이 130m로 총길이는 1,005m이다.

 

 

 

전망대 오른쪽으로 삼형제 바위의 전설이 전하는 바위가 살짝 보이고 있다.

삼형제 바위를 보려면 성곽 오른쪽 길로 내려가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삼형제바위

 

옛날 한 과부가 아들 삼형제를 기르는데

그 우애가 지극하였다.

하루는 여름에 일을 하다 더위에 지쳐 한탄강에서 목욕을 하게 되었는데 막내가 강에 빠지고 말았다.

막내를 구하기 위해 형 둘이 모두 강에 뛰어들었지만 삼형제 모두 빠져 죽고 말았다.

아들들을 잃은 과부가 강가를 헤매며 울부짖은 지 석 달 만에 삼형제의 형상이 강 가운데

나타나더니 갑자기 바위로 변하였다.

그 후부터 해마다 사람이 이곳에 빠져 죽으니 큰 바위에 제단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어느덧 하루가 저물어 간다.

은대리성에 앉아 잠시 쉬어본다.

저기 어딘가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마지막으로 연천 전곡리 유적을 찾아간다.

은대리성에서 들었던 음악소리는 전곡리 유적지에서 열리는 '연천 구석기축제'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사적 제268호 연천 전곡리 유적

포스팅 : http://blog.daum.net/pjb1223/13351365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은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에 있는 전기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1978년에 당시 동두천 주둔 미군인 그렉 보웬에 의하여 처음 발견되었다.

전곡리 유적은 현재 전곡읍 납쪽 한탄강이 감싸고 도는 현무암 대지 위에 분포하고 있다.

 

전곡리 유적은 현재 17차 까지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해

주먹도끼, 사냥돌, 주먹찌르개, 긁개, 홍날, 찌르개 등 다양한 종류의 석기가

6,000점 이상 출토되었으며

가장 특징적인 석기는 아슐리안형의 주먹도끼들인데 양면가공된 것과

단면가공된 것이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 최초로 발견된 도끼여서 주목을 받고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가?

전곡리 유적지에서 열리고 있는 구석기축제 마당에

진조크루 공연이 열리고 있어

집사람과 처음부터 끝까지 젊은이들의 흥겨운 놀이마당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연천에서의 당일치기 여행

언젠가 가야지 했던 것을

오늘 이렇게 다녀가니 가슴이 후련하다.

문화재답사를 하면서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면 뭔가 허전한 것을 느꼈었는데

오늘 이렇게 나마 다녀갈 수 있어 좋았다.

오늘은 전곡리까지 답사를 하였으니 다음 기회에는 전곡리에서 철원으로 가는 길을 둘러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