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의 이곳저곳
돌구멍절의 중암암, 백흥암, 은부암, 은해사 등을 들러본 후 은해사의 마지막으로 국보 제14호가 있는 은해사거조암을 찾았다.
입구는 진입로공사 중이었으며, 절 안에도 공사 중이었다.
거조암은 은해사의 산내 암자로서
거조암은 당초 거조사(居祖寺)라하여 은해사 창건보다 앞서는데 신라(新羅) 효성왕(孝成王) 2년(738) 원참조사(元참祖師)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경덕왕(景德王)(742∼764) 때 창건했다고도 한다. 은해사와 거조사와의 관계는 언제부터 맺어졌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근래에 와서 은해사를 본사(本寺)로 하고 거조사는 그 말사(末寺)로 편입되어 거조암이라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고려 우왕 13년 혜림법사(慧林法師)와 법화화상이 영산전을 건립하여 오백 나한을 모신 유서깊고 영험있는 나한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우리 나라 목조 건물로 가장 오래된 거조암 영산전(서기 1375)은 고려시대의 대표적 건물로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봉정사 극락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 등 4곳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귀중한 문화재가 되고 있다.
어이 이리도 많이 천일홍을 심었을까?
꽃색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다하여 천일홍이란 이름을 얻은 꽃이 절의 한쪽에 가득 피어있어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은해사의 건물을 살펴보면
소박하고 간결한 주심포계(柱心包系)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전·후퇴칸5량구조(前·後退間五樑構造)의 맞배집으로 공포(공包), 보(樑)의 단면(斷面), 솟을합장(八字臺工), 포대공(包臺工) 등에서 일부 고식(古式)을 볼 수 있으나 일반적인 조각수법(彫刻手法)으로 보아 조선(朝鮮) 초기(初期)에 중수하면서 많은 부분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상(釋迦牟尼佛像)과 526분의 석조나한상(石造羅漢像)을 모시고 있다.
은해사거조암삼층석탑으로 통일신라 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거조암을 마지막으로 은해사의 구경을 마치고 화남동삼층석탑 및 석불좌상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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