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여행

빙계계곡의 풍혈과 빙혈에 얽힌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

들꽃(野花) 2009. 11. 30. 06:42

군위의 인각사와 의흥향교를 거쳐 이곳 빙계계곡에 왔다.

빙계계곡은 

경북 8승의 하나로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하며,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 하고, 동네를 빙계리라 부른다.

  삼복 때 시원한 바람이 나오며 얼음이 얼고, 엄동 설한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비의 계곡으로 빙계(氷溪) 3리 서원(書院)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용추, 물레방아, 바람구멍, 어진바위, 의각, 석탑, 얼음구멍, 부처막을 빙계팔경이라 하며, 계곡 안쪽에 자리한 보물 제 327호 오층석탑은 높이 8.15m의 대형탑이며, 화강석으로 조성된 고려초의 석탑이 있다.

 

  마을 건너편에 수십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아래 맑은 시냇물 가운데 우뚝 솟은 크고 작은 무수한 바위는 1933년 10월 4일 경북도내 경북팔승의 하나로 뽑혔으며, 계곡 가운데 돋보이는 높이 10m, 둘레가 20m 정도의 유난히도 큰 바위에 빙계동(氷溪洞)이란 커다란 글씨가 새겨진 건 임진란 때 여기 들른 명장 이여송(李如松)의 필적이란 얘기도 있다. 그 옆에 단 하나의 큰 바위 위에는 경북 팔승지일 이라고 새긴 아담한 돌비(石碑)가 자리잡고 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빙계계곡 

 

 

 

 

제1경 빙혈(氷穴)

        마을 뒷산 산기슭의 바위 아래 너덧 명이 들어설 수 있는 방 한 칸 만한 넓이의 공간이다.

        여기선 입춘(入春)이 되면 찬 기운이 나고 한여름엔 얼음이 얼어 있다. 입추(入秋)가 지나면 차차 녹아 동지(冬至)에는 볼 수 없고 훈훈한 바람이 나온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전하는 빙혈과 풍혈의 이야기를 적어보면

  신라 무열왕의 둘째 따님임 요석공주가 젖먹이 아들 설총을 데리고 지아비 원효대사를 찾아 이곳 빙산원에 이르렀을  때는 유월염천 유두가 막 지난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공주일행이 서라벌을 떠나 보현산을 지나 거처 조문국(지금 의성군 금성면) 경내에 다다르자, 궁궐터와 임금이 쓰시던 우물인 어정이 있었다. 동네어귀에서 원효대사의 거처를 물더니 빙산 빙혈 속에 기도하는 이상한 스님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빙혈을 지나면 찬바람이 씽씽 불어나오는 풍혈이 있는데 얼마나 깊은지는 아는 사람이 없소. 그 끝이 저승까지 닿았다고도 하지요"

공주는 좁을 굴속을 더듬더듬 기어 들어갔다. 이리 꼬불 저리 꼬불 몇 굽이를 지나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른다. 점점 추워졌다. 공주는 전신이 꽁꽁 어는 듯 하였다. 발이 미끄러지는 곳은 얼음판이었다. 얼마를 들어갔을까? 굴이 넓어졌다. 허리를 펴고 팔을 둘러도 거칠 곳이 없다. 공주는 크게 소리쳐 불러 보았다.

"아바아(여보)!"

굴속이 응하고 울렸다. 울리는 소리가 마치 큰 쇠북 마지막 소리 모양으로 길게 꼬리를 끌다가 스러졌다.

 ....

 -춘원 이광수 작, '원효대사(하) 중에서

 

춘원선생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먼 옛날 이 계곡은 거대한 동굴이었다고 한다. 대지진으로 동굴이 무너지면서 풍혈, 빙형 구멍이 지금 같이 좁아졌으나 지하는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신비하기만 하다. (빙계계곡 역사문학 연구보존회)

 

 

 

 

 

 

이곳을 찾은 남녀노소선남선녀들이여

여기 만고의 신비를 간직한 세계제의 빙혈이 있노라

옛날 빙산사 태일전 빙계서원이 있던 영산성지이오니

자비와 경천과 인애의 마음을 살려

부처님, 상제님, 공자님 가르침 지켜

공덕과 음덕과 선덕을 쌓을 지어다.

건강과 성공과 행복이 찾아 올 지니...

 

라는 글귀가 빙혈 벽을 가득 채우고 있고, 조선 후기의 관료이자 성리학자 허목의 <빙산기(氷山記)>도 걸려 있다

 

 

제2경 풍혈(風穴)

        동구 도로 변 바위와 바위 사이에 뚫린 좁고 깊은 곳으로 여름엔 찬바람이 나오고, 겨울철은 훈훈한 더운 바람이 일고 있다.
        그 근방 크고 작은 바위 사이엔 거의 같은 현상이 일어 나는 편이다.

 

 

 

 

제6경 석탑(石塔)
        빙산사 구지(氷山寺 舊址)에 당시 (신라말 내지 고려초) 이뤄진 5층 모전(模塼) 돌탑으로 보물 327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물 제327호인 의성빙산사지오층석탑

경상북도의 8군데 아름다운 경치 가운데 하나인 보현산 줄기 빙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이 탑은 신라말 내지 고려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돌을 벽돌 크기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이다. 각층의 크기가 다른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의성 탑리오층석탑(국보 제77호)을 모작한 듯하며, 다소 시대가 뒤떨어지기는 하나 거작이며 우수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파손상태가 심하여 1973년 완전히 해체복원하였는데, 그때에 3층 옥개석의 석함 속에서 금동사리장치가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탑의 형태는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높이는 8.15m이며 지대석 너비는 4.06m이다.

 

 

 

 

-  빙 계 팔 경 -

제3경 인암(仁岩)

         옛날 서원(氷溪 書院)터 앞에 위치한 나비 1.2m, 높이 2.4m가 넘는 큰 바위다.
         그 전면에는 햇빛으로 인해 정오가 되면 어질 인(仁)자 모양의 그늘이 나타나 세상 인심을 선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제4경 의각(義閣)
         임진란 때 윤은보(尹殷甫)가 모재, 회재(晦齋) 두 분의 위패를 청송 주왕산(周王山)으로 모셔 들어가 7년 동안 삭망 시 향화를 이어와 잘 피난시켰다가 평란 뒤 서원에 안주케 했다.
        그 공으로 의사라 일컬음을 받고 그의 갸륵한 의리를 기려 비와 이 전각을 세워 의사각(義士閣) 이라고 불린다.

제5경 수대(水碓)(물레방아)
         시냇물을 이용해 매일 많은 곡식을 찧던 규모 큰 물레방아가 있었다가 오래 전 자취를 감춰 버렸고 그 빈터 가까이 대한불교법화종 소속 빙계정사(氷溪精舍)가 세워져 신도들의 발길이 잦다.

제7경 불정(佛頂)
        불정봉(佛頂峰) 꼭대기에 움푹 파인 데로, 그 옛날 부처가 용과 싸울 적에 찍은 쇠스랑 자국이란 설이 전한다.

제8경 용추(龍湫)(용소)
         개울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 시냇물이 굽이치는 곳에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는데 현재 거의 메워졌다. 부처와 싸운 용의 머리가 부딪쳐 파인 데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