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의 용문산
용문산의 정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용문사
가야지, 가야지 하고 몇번을 마음먹었던가.
인천에서 멀다먼 먼, 내 생각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용문사
이곳을 몇번인가 오고 싶었는데 그리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발걸음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었다.
이번 방문이 네번째인가?
그래도 가고 싶었던 곳이다.
마의태자가 심었다고 믿고 싶은 은행나무, 천년의 비애를 너는 알고 있겠지.
이른 봄에 한번, 정상 등반한다고 눈이 녹지 않은 그늘에 얼음이 있을 때 집사람과 함께 올라가다 정상에 군인들이 있어 중도에 내려와야 했었고, 친구들 모임이 대명비발디에서 있어 지나가다 어느 겨울에 들렸었지.
이런 녹음이 우거지는 날에 한번 오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파란 하늘을 허락받지 않았지만 집사람과 함께 찾은 용문사는 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도 남은 그런 곳이었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 전합니다.
사흘간의 연유 둘째날, 초파일 다음날이라 많은 사람들이 용문사를 찾았다.
이제 들어가렵니다.
예전에는 없었던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뭔가가 눈길을 끕니다.
가까이 가보니 양창석 작시의 '용문팔경시'라는 비문입니다.
뭐라고 써있나요.
첫째 용문사 새벽 종소리
북쪽절에는 예불 올리는 종소리 길게 울리어
잠깨어 보니 만가지 형상은 새벽빛이 짙구나
별들은 여기저기 보이고 바람은 나무숲을 감돌고
새벽 안개 자욱한데 산봉우리에 달만 걸려있네
둘째 조계골 열두 여울
셋째 윤필암의 돌아가는 구름
넷째 봉황대의 맑은 바람
다섯째 칠보산의 아지랑이
여섯째 중원산 폭포
일곱째 흑천의 어부 피리소리
여덟째 백운봉의 저녁 노을
이라고 써있네요.
저기 왼쪽에 꼬마들의 놀이기구가 보이고 있죠.
용문사의 첫 인상은 뭘까요. 바로 일주문 앞의 시끄러운 놀이기구 시설이랍니다. 조용한 사색을 방해하는 그런 시설이 절 앞에 세워져 있어 첫 이미지를 많이 해치고 있답니다.
청춘은 다시 돌아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은 한번 뿐일세
좋은 때 부지런히 힘 쓸지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도연명'의 시귀가 걸려있네요. 맞는 말씀이죠.
'용문산용문사'라고 편액이 결려있는 용문사의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을 보고 되돌아 숲속의 산책로 길을 이용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일주문을 통해 용문사로 가나,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이번에 숲속의 산책로를 이용하여 용문사로 가려합니다.
누구를 기다리고 계시나요.
이런 한적한 오솔길을 걸어보세요.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그런 도로가 아닌 흙길을 걸어보세요. 발의 느낌이 다르실것입니다.
깔끔하게 조성된 것을 보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죠.
을 꼭 잡고 걸어가는 오누이의 모습이 무척 정겹습니다.
산책로 아래로 일주문을 통해 용문사로 가는 길이 보이시죠. 저 길보다 훨씬 멋지죠.
갈림길이 나옵니다. 정지국사 부도 및 비와 용문사 은행나무가 있는 길로 접어들어야 겠죠.
또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정지국사 부도 및 비가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제가 원래 문화재를 찾아다니고 있죠. 그러니 저기를 그냥 지나칠 수 없죠. 당연히 가야합니다.
저 나무 계단 끝 좌측에 보이지는 않지만 바로 정지국사의 비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죠.
보물 531호인 정지국사의 비입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정지국사의 부도가 나옵니다.
잠깐 정지국사에 대해 알아보아야 겠죠.
정지국사(1324∼1395)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황해도 재령 출신이며 중국 연경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조선 태조 4년에 입적하였는데 찬연한 사리가 많이 나와 태조가 이를 듣고 ‘정지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는 정지국사의 행적 등을 하였던 것입니다.
안내문을 자세히 보는 분이 있는가 하면 꼬마들은 관심없이 뛰어 놀고 있네요. 애들한테 많은 것을 요구하면 안되겠죠.
용문사로 내려가는 길에 만난 나무인데 참 이상하게도 생겼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용문사의 지붕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조금 더 볼 수 있다면 멋진 사진이 나왔을 텐데 마땅한 위치가 없는게 아쉽네요.
유명한 사찰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있습니다. 대웅전과 지장전이 보이고 지장전 오른쪽에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하여 주는 물이 있네요.
관음전
관음전의 불상은 시도유형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된 양평용문사금동관음보살좌상입니다.
지장전
용문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은행나무입니다. 파란하늘이었다면 더욱 멋지게 나왔을텐데...
대웅전
금낭화의 멋진 모습
기와장에 작은 부처님들이 놓여 있네요.
다시한번 더 은행나무를 보겠습니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15.2m이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 정미의병(1907)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합니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습니다.
용문사 앞을 흐르고 있는 계곡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겠죠. 물론 발은 담그지 못했지만 손을 담가보니 엄청 찼었습니다.
이번에는 일주문 쪽으로 난 길을 걸어보기로 하였습니다.
전통찻집도 있고
조금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에 먹거리가 있는데 젊은 사람이 인절미의 떡매를 치고 있네요.
길 한편에 물이 흐르도록 물길을 만들어 물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며 걸을 수 있게 만들었답니다.
또한 도랑물이 흐르는 숲속의 볼랫길이라 명명된 옛길을 조성하여 놓았네요.
다람쥐 한마리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다리를 나무로 멋있게 포장하여 딱딱한 콘크리트를 숨기게 만들어 풍광을 멋지게 살렸네요.
걷기 힘드신 어르신네들을 실어나르고 있네요. 경로우대사상이 잘 되어 있는 우리나라 좋은나라입니다.
작은 소망인지, 큰 소망인지 사람들의 소망이 깃든 작은 돌탑들이 많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계곡물이 흐르고 있죠.
이제 일주문을 벗어나 용문사의 사찰로의 여행을 마무리 해야겠죠.
[글/사진 박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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