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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당진] 남이흥장군일가유품 - 국가민속문화재 제21호

들꽃(野花) 2010. 9. 24. 15:23

남이흥장군일가유품(南以興將軍一家遺品) / 국가민속문화재 제21호

소재지 : 충남 당진군

 

  남이흥(1576∼1627)은 임진왜란 때 노량해전에서 이순신과 함께 전사한 남유의 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선조 35년(1602)에 무과에 급제 하고, 이후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유품에는 사슴의 가죽으로 만들어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옷 1벌과 많이 훼손되어 형태를 분별하기 어렵지만 정묘호란시 안주성에서 남이흥 장군 순국 소식을 들은 인조(仁祖) 임금은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라 명하고 장례시. 장례에 참여하여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며 인조(仁祖) 임금이 입었던 곤룡포를 친히 벗어 장군의 관(棺)위에 덮어 주었다고 전하는 곤룡포 1벌, 그리고 상아·나무·녹각 등으로 만든 장군 가족들의 호패 7점이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고서(古書), 서한(書翰), 영정, 교지 등 보존되고 있는 500여 점의 그의 유품들은 17세기 초의 생활상과 복식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참조)

(곤룡포)

답호는 조선시대 왕과 문무관리들이 철릭 위에 입었던 소매없는 겉옷을 말한다.

이 유물은 남이흥 장군의 유품 중 하나로 인조의 하사품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형태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유물관)

 

(영정)

 

(급제 교지)

 

(광대)

조선후기 군복의 가슴 띠로 사용되던 것으로 요대(腰帶)라고도 하며, 아청색의 우단으로 제작되었다.

 (궁대)

활을 넣은 통으로 겉감은 녹색의 융(絨)이고, 안감은 가죽이며, 다양한 무늬가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남여)

위를 덮지 않은 뚜껑이 없는 의자와 비슷한 작은 승교(乘轎)로 산길 등 좁은 길을 다닐 때 사용하던 가마의 일종이다.

장방형의 4각 틀 위에 네 개의 기둥을 세워 사개 물림하여 튼튼하게 세워 동자 사이에 2단의 머름판을 두르고 난간을 돌렸다.

목재의 연결부위는 자형의 거멀장식으로 견고하게 짜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