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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철조비로자나불상이 반겨주는 예천의 한천사

들꽃(野花) 2011. 1. 13. 06:00

천년의 철조비로자나불상이 반겨주는 예천의 한천사

 

예천 천향리 석송령(천연기념물 제294호)을 구경하고, 한천사의 철조비로자나불상과 삼층석탑을 보러간다.

석송령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주인 아주머니에게 한천사 가는 길을 여쭤보니 오던 길을 되돌아가다 보면 좌측에 다리가 나오는데 그 다리를 건너 계속 가면 한천사의 이정표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석송령을 보고 가르쳐 준대로 길을 간다.

흔하디 흔한 네비게이션이 없으니 그렇게 길을 물어 간다든가, 아니면 지도를 보고 가곤한다.

감천면 현내리를 지나니 좌측으로 작은 저수지가 보이고 그 길을 조금 더가니 중거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중거리 마을 입구를 지나는 순간 무언가를 본 것 같다.

바로 한천사라는 작은 팻말을 본 것이다.(지도상에는 마을 이름을 알 수 있지만 차를 운전하며 마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약간 후진을 하고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산길을 조금 가니 저만치에 사찰이 보인다.

 

지금 찾아가고 있는 한천사가 그곳에 있는 것이다.

한천사는 그리 크지 않은 절이지만 한천사에는 천년의 시간을 견더온 철조비로자나불상과 삼층석탑이 있다.

 

한천사는 신라 678년(문무왕 18)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이후로 알려진 절 내력이 없고 한국 전쟁으로 전각들도 모두 불에 타 다시 지어 옛 모습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불길 속에서도 살아남은 통일 신라 후기의 철조비로자나불상(보물 제667호)과 삼층석탑(경북 시도유형문화재 제5호), 1988년 마당 조경공사 중에 발견된 고려시대의 금동 자물쇠 3점(보물 제1141호, 지금은 김천의 직지사에 보관 중)과 청동 용뉴 등의 보물들이 번성했던 한천사의 옛 모습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한천사의 대적광전

 

한천사 부처님에 얽힌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으니 다름 아닌.

2차대전 말엽, 일제는 극심한 물자 부족으로 전쟁 수행에 어려움을 당하자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온갖 만행을 다 저지르기 시작했다. 전쟁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향교나 사찰의 놋그릇, 쇠절구, 촛대, 제기, 심지어 불상까지도 강제로 압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때 어느 날 밤 당시 한천사 주지스님 꿈에 법당에 부처님이 내려오셔서 “내 몸에 속히 진흙을 칠해라.”하시는 것이었다. 주지스님은 꿈도 이상하다 하면서도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는데 며칠 후 똑같은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그제서야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꿈에서 말씀하신 대로 부처님 몸에 골고루 진흙을 잘 칠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일본 순사와 많은 사람들이 수레를 끌고 와서 절에서 사용하는 놋그릇과 향로, 촛대 등 쇠붙이들을 닥치는 대로 빼앗아 갔다. 그때 한 일본 순사가 한천사 부처님을 보고 “이 부처님은 흙으로 된 土佛(토불)이구나.”하며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래서 한천사 부처님은 무사히 난을 면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천사 부처님의 난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한국전쟁으로 한천사의 모든 전각이 불타버리는 비극을 겪었고, 또 무슨 사연인지 발견 당시에는 전신에 백포(白布)로 도장되어 있었으며 양 손이 없었던 것을 1979년 보수를 하면서 한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하고 한 손에는 약합을 받쳐든 약사여래상으로 만들어졌으나, 2002년 현재의 비로자나불로 다시 조성되었다.

 

보물 제667호 예천 한천사 철조비로자나불상

광배(光背)와 대좌(臺座)가 없어진 높이 1.53m의 철조비로자나불상이다.

우아하면서도 침착한 인상을 풍기는 얼굴, 건장한 신체, 의젓한 앉음새, 탄력 있는 다리 등은 통일신라 후기 불상으로서는 보기 드문 뛰어난 기량을 나타내고 있다.

왼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주름이 비교적 힘있어 보이고 자연스럽게 처리되었으나, 팔과 두 무릎의 주름에서는 형식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고, 긴 상체, 평평한 콧잔등, 유난히 두드러진 인중 등에서 추상화된 경향이 대두되는 작품으로 당시 유행하던 철불상들 가운데 우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오가는 이의 마음을 알려나?

너무나 고요한 사찰이다.

 

한천사삼층석탑(시도유형문화재 제5호 (경북))

한천사의 대적광전 앞뜰에 서 있는 탑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부 몸돌의 네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으로, 처마의 네 귀퉁이가 날카롭게 하늘로 들려있어 경쾌한 멋을 풍긴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탑이 조성된 시기는 대적광전 안에 모셔진 한천사철조여래좌상(보물 제667호)과 같은 시대인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된다.

 

 

약사전

 

삼성각

 

 

 

절의 한편에

많은 꽃들이 조성되어 있어 절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하여주고 있다.

 

하늘을 향해 활짝 피어있는 해바라기

 

설악초와 백일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