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여행

[세계문화유산/경주여행] 경주남산에서 살아있는 노천박물관을 만나다.

들꽃(野花) 2011. 4. 13. 10:22

서라벌

부처님의 나라

신라의 천년 고도

그 서라벌이 2000년 12월에 역사에서 깨어나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 세계인의 역사가 되었답니다.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유산이 산재되어 있으며, 모두 5개지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지역인 대능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2011년 4월 9일

따뜻한 봄내음이 물씬 풍기는 날

세계 유일의 노천 박물관이 있는 경주의 남산으로 떠납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주관한 [한국의 보물 마음에 담다]라는 주제하에 찾은 세계문화유산 경주의 남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삼에서 찾은 불교의 미술

그 역사의 현장을 찾아 갑니다.

오늘 우리들의 발길을 이끌어줄 불교문화재들을 정리해봅니다.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 망월사 ~ 배리삼릉 ~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 ~ 삼릉계곡선각육존불 ~ 삼릉계곡선각여래좌상 ~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 ~ 용장사곡 삼층석탑 ~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하나하나 소중한 문화재

우리가 소중하게 관리보전하여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문화재

잘 관리보전하려면 문화재에 대해 알아야 하기에 이제 남산의 불교의 세계로 갑니다.

 

티끌세상 어디인들

불계(佛界)가 아니련만

향화(香火)의 인연이

우라나라에 가장 많다네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남산안내도앞에서 우리에게 1박 2일동안 세계문화유산 경주에 관해 설명해주실 해설사님이 남산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보통 여행을 가면 안내판의 글을 읽어보곤하는데 이렇게 직접 설명을 들으면 머릿속에 솔깃하니 잘 들어옵니다.

1박2일 동안 틈틈히 들려주시는 이야기들

너무 고마웠습니다.

 

배리삼릉 입구에서의 남산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찾아간 곳이 배리석불입상입니다.

간절히 기도 드리고 있는 사람

무엇을, 누구를 위한 두손 모아 기도를 할까?

 

보물 제63호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三尊佛)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본존불은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표면이 매끄럽게 표현되었다. 어린아이 표정의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찐 뺨 등을 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佛性)을 표현하고 있다. 목이 표현되지 않은 원통형의 체구에 손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는데,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올리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옷은 불상을 전체적으로 강직해 보이게 하지만, 어린아이같은 표정과 체구 등으로 오히려 따뜻한 생명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나타난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보병(寶甁)을 잡고 있는데,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오른쪽의 보살 역시 잔잔한 내면의 미소를 묘사하고 있는데, 무겁게 처리된 신체는 굵은 목걸이와 구슬장식으로 발목까지 치장하였다.

조각솜씨가 뛰어난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고 있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보호각이 설치되지 않았을 때의 전경 사진(해설사님의 안내 책자에 있는 것 촬영)

 

배동의 석조여래삼존입상을 보고

배리삼릉으로 가는 길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좌측에 망월사란 절이 보인다.

이곳은 계획에 없던 곳으로 해설사님과 일행들을 앞질러 길을 가고 있는데 해설사님께서 절 안에 탑이 있다고 하며 얼른 들어갔다 오라고 한다.

 

망월사내에 있는 탑으로 상륜부가 특이하게도 연꽃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산길을 걸어 배리삼릉으로 갑니다.

봄내음 물씬 풍기고 밭가에서 쑥을 뜯는 아낙네와 산속에는 진달래가 우리를 반겨 주고 있습니다.

송림숲속 한 가운데에 신라의 능 3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군요.

 

사적 제219호 배리삼릉

 

[사진상의 왼쪽 아래로부터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무덤이라 전하고 있으며, 무덤은 모두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형태를 하고 있다.

신덕왕릉이라 전해오는 가운데의 무덤은 1953년과 1963년에 도굴 당하여, 내부를 조사한 결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임을 확인하였다. 무덤에는 돌방 벽면에 병풍을 돌려 세워 놓은 것처럼 동·서 양벽의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는데, 이것은 본격적인 벽화는 아니지만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 색은 붉은색, 황색, 백색, 군청색, 감청색으로 되어있고, 12폭으로 되어있다.

배리삼릉의 주인공이 신라의 박씨 3왕이라 전하고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없고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신덕왕, 경명왕 사이에는 무려 700여년의 차이가 있어 이들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신라 초기에는 이와 같은 대형무덤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경주 남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의 남산지구로 탐방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려 합니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깔려 있는 길

배리삼릉에서 얼마 올라가지 않은 곳 우측에 인근에 굴러다니던 곳을 한곳에 모아 놓은 석재들이 있습니다.

 

좌측으로 부터

탑의 옥개석, 탑의 몸통, 머리가 없어진 앉아 있는 불상, 그리고 제일 우측에 세워져 있어야 할 불상이 누워져 있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남산이 노천박물관이라고 할 만합니다.

 

산 기슭에는 진달래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습니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이 계곡을 삼릉계라고 하는데 계곡 입구의 배리삼릉이 있어 그렇게 불리고 있으며, 계곡이 깊고 여름에도 찬 기운이 돌아 냉골이라고 부른답니다.

삼릉계 계곡에는 11개소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하여 남산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있는 곳입니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약 30m 남쪽 땅 속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특히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매듭진 가사끝과 아래 옷을 동여맨 끈, 그리고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 줄의 매듭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용장사 삼륜대좌불과 함께 복식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조각품으로 평가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의 왼쪽 산능성이에 있는 불상으로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깔려 있어 오가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여기서 잠깐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름아닌 진달래꽃 따 먹기

그리 달지 않지만 입안 가득 향기가 좋습니다.

 

남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

조금 올라가니 삼릉계곡선각육존불의 이정표가 보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겠죠.

우리가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다름 아닌 세계문화유산을 찾아 서울역 14번 출구에서 8시에 출발하여 이곳을 왔으니 많은 곳을 둘러보아야 겠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삼릉계곡선각육존불

 

[자연 암벽의 동서 양벽에 각각 마애삼존상을 선으로 조각한 6존상으로, 그 조각수법이 정교하고 우수하여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중에서는 으뜸가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오른쪽 삼존상의 본존은 석가여래좌상이며, 그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온화한 표정으로 연꽃을 밟고 본존을 향하여 서 있다. 왼쪽 삼존상의 본존 역시 석가여래로서 입상이며, 양쪽의 협시보살상은 연꽃무늬 대좌 위에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이다.

이 2구의 마애삼존상은 만들어진 시대나 조각자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며, 오른쪽 암벽의 정상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

 

삼릉계곡선각육존불의 바위 위에 삼릉계곡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학생들이 잠시 쉬어가고 있습니다.

저렇게 어린 학생들이 많이 찾아야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몸소 보고, 듣고,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정상으로

~~~

삼릉계곡선각육존불의 바위 위쪽에 올라 바위위를 살펴보니 육존불을 보호하려는 보호각을 세웠던 흔적이 보입니다.

 

소나무숲과 진달래를 감상하면서 오르는 산길

전면에 커다란 바위가 우리들 앞을 막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위면에 새겨진 선각여래좌상이 보입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삼릉계곡선각여래좌상

 

[삼릉계곡에 있는 10m 정도의 바위에 새겨진 앉아 있는 모습의 여래상으로 서쪽을 향하고 있는 불상이다. 몸은 모두 선으로 그은 듯이 새기고 얼굴만 도드라지게 표현한 독특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며 이런 유형의 불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세계문화유산 경주의 남산지구

왜 등재되어야만 했는지, 살아있는 노천박물관이라 했는 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불상들이 있습니다.

다음을 찾아갑니다.

선각여래좌상 오른쪽으로 산길을 따라 갑니다.

숲속을 벗어났다 싶은데 눈 앞에 커다란 광배가 눈에 보입니다.

 

보물 제666호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이 석불좌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광배가 깨져 흩어져있던것을 현재와 같이 보수하였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자리잡고 있다. 얼굴은 원만하고 둥글며, 두 귀는 짧게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옷의 옷주름선은 간결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허리는 가늘고 앉은 자세는 안정감이 있다. 대좌(臺座)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었는데, 상대에는 화려한 연꽃무늬를 조각하였으며, 8각 중대석은 각 면에 간략하게 눈모양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하대는 단순한 8각대석으로 되어 있다.
8각의 연화대좌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안상을 비롯하여 당당하고 안정된 자세 등으로 보아 8∼9세기에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여행블로거기자단 일행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을 보고 남산의 상선암으로 올라가는 길

석조여래좌상의 뒷편 바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높은 바위 전면에 부처상이 새겨져 있군요.

이렇듯 많은 불상들의 보니 당시 신라는 부처님의 나라였던 것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바위에는 불상이 커다란 바위에도 불상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습니다.

운동도, 자연의 아름다움도 만끽하고, 문화재 공부도 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리라 봅니다.

 

헉헉 힘든 다리를 이끌고 도착한 상선암

보물 제666호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에서 상선암까지가 삼릉계곡에서의 제일 난코스로 산에 오르기에 너무 힘든것 같습니다.

그래도 포기는 없는 법

천년고도, 신라의 불교를 잠시나마 둘러보는데 이정도야 참아야겠죠.

상선암의 앞마당에 살구꽃이 활짝피어 우리들의 반겨주고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

상선암에 들렸으니 그냥 갈 수 없는 일

비록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부처님에게 삼배의 예를 해야하지 않겠나?

딸래미 공부 잘하게 해주시고, 집사람 건강하게, 그리고 양쪽집 어른신들 건강하게 해달라고 잠시 빌어봅니다.

 

상선암을 뒤로하고 조금 더 올라가니

올라가는 계단의 좌측에 넓은 공터가 눈에 보인다.

공터에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고, 바위면을 보니 약간 고개를 숙인듯 커다란 부처님이 보인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58호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

[거대한 자연 바위벽에 새긴 앉아 있는 모습의 석가여래불로 높이는 6m로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있으며, 반쯤 뜬 눈은 속세의 중생을 굽어 살펴보는 것 같다.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입체감있게 깊게 새겨서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겼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의 마애불로 추정된다. ]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을 보고 위로위로 올라갑니다.

능선에 올라 왼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커다란 마당바위가 나타납니다.

서라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경주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넓은 평지와 골골이 살아있는 신라 불교의 흔적들, 서라벌의 나라를 잠시 그려 봅니다.

 

다시 뒤로 돌아 용장사지를 향해 걸어갑니다.

 

능선길을 걷는데 해설사님께서 방금 보고 올라온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을 보고 가라 합니다.

이곳에서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의 아름다움을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능선길에서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을 보고 바위지대를 지나치려는데

해설사님이 스톱을 합니다.

뒤로 돌아 바위를 자세히 보라고 합니다.

산신당(山神堂), 즉 산의 신에게 제를 지내는 곳을 보라고

아니 틀렸습니다.

산자가 한자로 뫼산이 아니고 産, 즉 낳을 산이라고 합니다.

즉 자식을 많이 낳게 해주는 산신당이라고 말입니다.

바위에 당시 아들을 낳은 이름들을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상사바위(想思岩)

 

["상사바위는 금오산에 있다. 그 크기가 백여 발이나 되는데 그 생김새가 가파르게 솟아 있어 오르기가 어렵다.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위하고 빌면 병이 낳는다." "산아당(産兒堂)은 금오산에 있는데 아기를 낳는 모습을 돌에 새겨놓았다. 신라 때 아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빌던 곳이라 전하는데 가위과 칼자국이 남아있다."

위의 글은 [동경잡기[에 실려 있는 상사바위에 대한 기록이다.

상사바위는 높이가 약13m, 길이가 약25m 가량 되는 큰 바위로 이 바위를 서편에서 보면 냉골 여울에 뿌리 내리고 수십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첨탑처럼 보이고, 동쪽에서 보면 산등성이 위에 직사각형으로 육중하게 솟아 있어 염라대왕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험상궂은 상이다.

바위 중간 쯤에 가로 파인 틈에 돌을 던져 그 곳에 얹히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던진 돌이 떨어지면 바위신이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고 있으며, 상사바위의 남쪽편에 아기를 낳는 듯 한 갈라진 바위인 "산아당"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현지 안내글)

 

금오산 정상

이제 용장사지를 향해 내려갑니다.

임도와 능선길을 따라 가는 길,

봄의 햇빛이 따뜻하고 여기 저기 봄의 소식을 알려주는 꽃내들이 피어있어 봄의 여행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진달래와 분재를 해 놓은 듯한 소나무의 환상적인 조화

 

 

여기도 탑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길 저 멀리 탑이 보입니다.

 

반대편 산의 능선이 발 아래에 보이는 듯한 곳에 자리잡은 탑

어찌 이리 높은 곳에 탑을 만들었을까요?

당시로 돌아가 물어보고 싶군요.

 

 

보물 제186호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금오신화』를 쓰며 머물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 몇 군데의 석축(石築)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절을 감싸고 뻗은 동쪽 바위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 서 있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자연암석을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바로 윗층 기단이 올려져 있다. 즉, 자연암석이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고 그 아래 바위산 전체가 또한 아래층 기단일 수도 있는 셈이다. 윗층 기단은 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조각을 새기고 2장의 판돌로 덮어 기단을 마감하였다.

탑신(塔身)은 지붕돌과 몸돌을 별도의 석재로 조성하였다. 1층 몸돌은 상당히 높은 편이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 4단이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다가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져 원래의 상태를 알 수 없고 쇠막대를 꽂았던 구멍만 남아 있다.

쓰러져 있던 것을 1922년에 재건하였는데, 사리장치는 없어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각 부의 조화가 아름다우며 주변 자연과의 조화 속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

 

 

 

용장사곡 삼층석탑을 보고

가파른 절벽길을 따라 내려가니 눈 앞에 커다랗고 특이한 원형의 몸통위에 머리가 없어진 불상이 보입니다.

문득 전라도 어딘가에 있는 천불천탑의 절이 생각납니다.

 

보물 제187호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경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큰 사찰이었던 용장사터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머리 부분은 없어졌고 손과 몸체 일부가 남아 있는데 대좌에 비해서 불상은 작은 편이다. 어깨는 적당하고, 전반적으로 볼륨이 강조되지 않은 현실적인 체구로 어떤 승려의 자세를 보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입고 있는 옷은 양 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으며, 옷자락이 대좌(臺座) 윗부분까지 흘러 내리는데, 마치 레이스가 달린 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좌는 자연기단 위에 있는 특이한 3층탑이라 생각될 만큼 특이한 원형(圓形)인데, 맨 윗단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이 석불은 특이한 대좌 뿐 아니라 석불 자체의 사실적 표현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며, 『삼국유사』에서 보이는 유명한 승려 대현(大賢)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 유명한 불상이다. 대현의 활동 기간에 제작되었다고 보아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용장사곡 석불좌상을 보며 오른쪽 바위면을 처다보니 불상이 하나 보입니다.

 

보물 제913호 경주 남산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경주 남산 용장사지석불좌상(보물 제187호)의 뒤쪽 바위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으로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원만한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내린 옷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아직 판독은 어려우나 글자가 10자 새겨져 있고, 보존 상태도 양호해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산능성이에 부는 봄바람,

그 바람에 흩날리는 진달래를 사진에 담아보려 합니다만 바람에 흩날려 촛점이 흔들리지만 그런대로 괜찮아 보입니다.

 

아래에서 처다보니 용장사곡 삼층석탑이 높디 놓은 산에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실감납니다.

 

 

 

여기도 진달래

경주 남산에는 지금 진달래 천국이랍니다.

경주 시내에는 벚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지만 이곳은 진달래가 지천입니다.

 

매월당 김시습

단종의 생육신중 한분으로 세조의 부름을 받자 깊은 골짝기에 숨어버린 김시습

그의 법호가 설잠이라 그를 기리는 뜻으로 설잠교라 명명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굳이 이렇게 천년의 역사를 지닌 곳에 현대판 다리를 만들어놓아야 하는 지 묻고 싶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는지!

 

용장계곡의 모습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저물어 가고 있는 해속에 숨어버리려는 진달래를 담아봅니다.

 

 

용장마을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그 중간에 해설사님이 절골의 석조여래좌상이 있다고 하여 일행 몇이 올라가 봅니다.

제가 빠질 수 가 없죠.

 

머리는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몸통만이 남아 있는 불상입니다.

이 계곡 어딘가에 있는 불두를 찾아 온전한 불상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맑은 물의 용장계곡

여름이라면 저 깨끗한 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군요.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습니다.

오늘 어땠나요?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http://www.ch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