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전두환전대통령이 백담사에 몸을 의탁하며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기 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절.
전두환전대통령에 때문에 널리 알려졌지만
그보다는 '님의 침묵' 을 쓰신 만해 한용운이 이곳에서 '님의 침묵'을 쓰셨던 것을 알아야겠지요.
백담사에 언젠가는 한번 가들러야지 했었지만 막상 시간을 내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인제에서의 1박2일 여행을 통해 찾을 수 있었던 절
설악산의 깊은 계곡에 있는 백담사를 찾아간다.
한용운의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백담사는 서기 647년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하고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 봉안하였다. 창건한지 50여 년만인 신문왕 10년(690년)에 불타고, 719년(성덕왕 18)에 중창하였는데 비금사로 하였다. 이후에도 화재로 인하여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축사로 바뀌었다. 그러나 6번째의 화재로 영축사가 불타자 이듬해 다시 중건하여 백담사로 하였다. 1772년(영조 51) 겨울 다시 불타버리자 1755년 심원사로 중건하고 1783년(정조 7) 절 이름을 백담사로 다시 바꾸었다.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될 때까지 7차에 걸쳐 화재를 당한 연유로 골이 깊고 흐르는 물의 연원으로부터 먼 곳에 자리한 절이라는 뜻의 백담사란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백담사라 불리게 된 전설이 전하는데
거듭되는 화재로 고심을 하던 스님의 꿈에 어느 날 노승이 나타났다.
현몽한 노승은 대청봉에서 1백 개째에 있는 웅덩이[潭] 옆에 절을 세우라고 하였다. 이튿날 스님은 노승이 점지한 대로 절터를 잡아 중건하고 절 이름 또한 웅덩이 ‘潭’자를 넣어 백담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 뒤 백담사에는 오랫 동안 화재가 없었다. 그러나 1915년 겨울 밤에 일어난 화재는 불상과 탱화 20여 위를 제외한 건물 70여 칸과 경전 범종까지 모두 태웠다. 당시의 주지 인공(印空) 스님은 오세암에 머물면서 백담사의 중건에 착수하였고, 기호(基鎬)와 인순(仁淳) 스님 등이 강원도 일대를 다니면서 받은 시주금으로 1919년 4월 법당 20칸과 화엄실(華嚴室) 25칸을 지었으며, 1921년 봄에는 법화실(法華室) 16칸을 비롯하여 응향각(凝香閣)사무실 등 30칸을 이룩하고, 종과 북을 새로이 주조하여 낙성법회를 열었다. 한용운 스님이 백담사사적을 편찬한 1928년 당시의 백담사는 복구가 끝나고 정리가 되어 있을 때였다.
근대에 이르러 백담사는 한용운 스님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과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님의 침묵'을 집필하는 장소가 되었고, 만해사상의 고향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절은 6.25전쟁 때 소실되었으며, 1957년 대웅전과 법화실, 화엄실을 중건하였다. 특히 이 절은 1988년 12월 전직 전두환 대통령이 은거하여 2년 동안 머물게 됨에 따라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백담사로 가려면 용대리마을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물론 백담계곡을 감상하며 걸어갈 수는 있지만 도로폭이 좁고 계곡이 깊어 위험하므로 조심스레 걸어야 한다.
셔틀버스 운전기사 머리 위에 붙여놓은 각종 스티커
백담사 안내판
백담사에서 다시 용대리 주차장으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주차장에서 내려 경내로 들어가려면 백담계곡을 가로 질러 있는 수심교를 건너야 한다.
백담계곡에는 시원스레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사람들이 한가로이 발을 담구고 쉬고 있다.
좀더 가까이 가보자.
백담계곡의 수심교를 건너오면 제일 먼저 맞아주는 천왕문이다.
솟을문
경내로 들어서니 삼층석탑이 보이고 그 너머로 금당인 극락보전이 눈에 들어온다.
극락보전 좌우에 요사인 법화실과 화엄실이 있다.
템플스테이 하는 분들이 범종각 위에서 쉬고 있다.
만해기념관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삼층석탑과 극락보전
극락보전 오른쪽 뒤에 있는 작은 연못
수련이 활짝 피어 오가는 이의 발걸음을 잡는다.
극락보전 왼쪽 뒤에 있는 산령각
보물 제1182호인 인제 백담사 목조아미타불여래좌상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머물렀던 곳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야광나무
만해당
나한전
님만 님이 아니다.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백담사
만해스님이 계셨기에 오랜 세월 동안 세간에 널리 알려져 지금도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는 것은 아닐까요?
설악산의 깊은 백담계곡과 함께하는 백담사
만해기념관
만해 한용운 스님의 '코스모스'
가벼운 가을 바람에
나부끼는 코스모스
꽃잎이 날개냐
날개가 꽃잎이냐
아마도
너의 혼(魂)은
호접(蝴蝶)인가
하노라.
만해 한용운의 상
님의 침묵
님은 갔읍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읍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 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읍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이 추억은 나의 운면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읍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읍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니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에 일이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 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읍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읍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이제 떠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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