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의 건봉사
인제에서 미시령터널길을 이용하여 찾아간 고성
청간정, 천학정, 화진포의 김일성별장, 이기붕 부통령 별장, 이승만 대통령 별장을 둘러보고 고성에서의 마지막 여행을 하려 건봉사로 향한다.
화진포에서 건봉사로 가는 길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성쪽을 이용하여 들어가는 것이고, 또 다른 길은 주간에만 통행이 가능한 군부대를 통과하는 길이다.
우리는 거리와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군부대를 통과하는 코스를 이용하기로 하고 건봉사로 간다. 물론 군부대 통과니까 신분증 제시하고 통과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갈 수 있다.
군부대를 지나가는데 양쪽에서 검문을 한다. 신분증과 건봉사를 찾아가는 길이다하고 설명을 하니 통과하하고 한다.
반대편의 검문을 통과하여 오르막 길을 조금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바로 건봉사로 들어가는 길이다.
우회전을 하며 보니 길 좌측으로 누구의 상인지 지팡이를 쥐고 있는 스님 상을 조각하여 놓았고 저 멀리 부도밭이 보인다.
넓은 주차장이 나오고 차를 주차시키고 둘러보니 상당히 넓은 느낌이 든다.
주차장 주변으로 오래된 나무들도 있고 만해당 대선사의 '사랑하는 까닭'의 시비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조영출의 '칡넝쿨' 시와 노래비도 있고, 조영암님의 6.25당시 나라를 구하려 떠나는 사람들의 출정사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며 한켠에 서 있다.
건봉사는 민족의 영산인 금강산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끝자락을 이룬 곳에 있다.
6.25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4대사찰의 하나로 꼽던 대찰이자 31본산의 하나로서 명망을 떨쳤던 곳이다. 건봉사는 520년 아도(阿道)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758년(경덕왕 17)에 발징 스님이 중건하고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열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의 만일회의 시초다. 신라 말에는 도선 국사가, 그리고 고려 말에는 나옹 스님이 중수하는 등 당대 최고의 명망 있는 고승들이 건봉사와 인연을 맺었다.
조선시대에서도 15세기 이래 어실각(御室閣)을 짓고 역대 임금의 원당(願堂)으로 삼았다. 그 뒤 사명(四溟) 대사가 부처님 진신사리와 치아를 봉안하였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절은 폐허가 되었고, 자리한 곳조차 이른바 민통선 안에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었다. 다행히 1992년 여름부터 이곳의 출입이 가능해져서 누구나가 옛 성지를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건봉사로 들어가는 불이문과 약 500년 된 팽나무
팽나무는 한국전쟁중 766칸의 건봉사 사찰이 소실되었으나 유일하게 남아있는 불이문을 지켜주었다고 전해지는 상징목으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만해당 대선사의 '사랑하는 까닭'의 시비와 함께 오른쪽에 조영출의 '칡넝쿨' 시와 노래비가 있다.
그리고 주차장 한켠에 오래된 소나무가 비스듬히 자라고 있다.
1920년대의 건봉사 전경으로
건봉사의 중심을 이루었던 대웅전지역, 극락전지역, 낙서암지역, 사리탑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이문
한국전쟁 때 페허가 된 건봉사 절터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로 해탈문이라고도 불린다.
불교에서는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는 문이다. 1920년에 세운 것으로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 있다.
무더운 여름날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가지며 걸어본다.
보물 제1336호로 지정된 고성 건봉사 능파교위를 걸고 있는 사람들
능파교는
건봉사의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m이다.
조선 숙종 34년(1708)에 건립된 경내 불이문 옆의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에 의하면 이 다리가 숙종 30년(1704)부터 숙종 33년(1707)사이에 처음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영조 21년(1745)에 대홍수로 붕괴되어 영조 25년(1749)에 중수하였고, 고종 17년(1880)에 다시 무너져 그 석재를 대웅전의 돌층계와 산영루(山映樓)를 고쳐 쌓는데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사진 중앙에 보이는 석주는 페허가 된 극락전 지역의 현존하는 유일한 유물로 커다란 자연석 위에 세워져 있는 입석이다.
사각형의 석주를 3m 높이로 세우고 그 위에 돌로 봉황새를 조각하여 올려놓았는데 새는 대웅전 쪽을 바라보게 앉혀 주목된다. 석주에는 '나무아미타불'을 한글과 한문으로 새겨져 있으며 또 다른면엔 한문으로 '대방광불화엄경' 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석주는 사역을 나타내는 표석의 기능과 경배의 대상물로 조각되었을 것이다.
대웅전 지역으로 넘어가는 능파교의 상부모습
극락전 지역 전경
대웅전
명부전과 요사채
??
극락전 지역과 사리탑 지역으로 가는 도중 잠시 다리 아래로 내려가 보았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십바라밀 석주
독성각
발굴중인 모습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
조선시대 사명대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치아를 봉안한 적멸보궁
진신사리탑으로
1605년 사명대사가 일본에서 되찾아 온 부처님의 치아와 사리를 봉안한 탑으로 1724년 건립하였다.
되돌아 나가면서 페허가 된 극락적 지역을 담아본다.
오른쪽의 산 커다란 소나무가 건봉사를 한눈에 내려다 보듯 말없이 서 있다.
사명대사의 조각상과
부도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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