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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여행] 백제를 보려면 공주 송산리고분군에 있는 무령왕릉을 보라.

들꽃(野花) 2012. 3. 3. 06:34

백제의 왕릉

우리나라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역사에서 왕릉의 주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왕릉이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인 무령왕릉이다.

공주의 송산리고분군내에 있는 것으로 1941년 7월 5일 송산리 5 · 6호분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어 우리들 품으로 들어오게 된다. 다시말하면 백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인 것이다.

 

무령왕(武寧王 : 461~523)은 이름이 사마(斯麻) 혹은 융(隆)이고 시호(諡號)는 무령(武寧)이다.

부왕인 동성왕이 시해(弑害)된 501년 40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523년 62세까지 23년간의 재위기간 동안 민생안전과 백제의 국력을 신장하여 국제적 지위를 강화하는 등 대 · 내외적으로 큰 업적을 이룩하여, 그의 아들 성왕(聖王)대에는 백제 중흥을 열게하였다.

 

무령왕릉은 우리나라 고대의 고분 중 묘지석이 발견되어 처음으로 피장자의 신분과 정확한 사망연대를 알려준 최초의 왕릉이라는 점에서 고고학적 · 역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금제관식, 귀걸이를 비롯한 금속 공예품들의 정교한 제작 기술을 통해 백제 미술의 발달된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가장 중요한 유물은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묘지석(墓誌石)으로, 이 묘지석에 의하면 "왕은 523년 5월 7일에 돌아가셨고 3년째 되는 525년 8월 12일 왕릉에 안장하였으며, 왕비는 526년 12월에 돌아가셨고 529년 2월 12일에 왕릉에 안장하였다."고 쓰여져 있다.


왕릉의 구조는 묘실 전체를 벽돌로 쌓은 벽돌무덤(塼築墳)으로 입구통로에 해당하는 연도(羨道)와 시신(屍身)을 안치하는 현실(玄室)의 두 부분으로 만들어졌다.

이 왕릉에서는 관장식(冠裝飾).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 금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를 포함하여 도합 108종 4,600 여점이라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고, 그 중에는 국보(國寶)로 지정된 것만도 12종 17점에 달하고 있다.

 

 

날씨가 흐리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송산리고분군을 둘러보고 있다.

송산리고분군은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웅진 백제시대 왕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으로 무령왕릉을 포함한 이 일대의 고분들은 모두 7기가 전해지는데, 송산을 주산으로 뻗은 구릉 중턱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 ·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1∼6호분은 일제시대에 조사되어 고분의 구조와 형식이 밝혀졌고, 무령왕릉은 1971년 5 ·6호분의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6호분

굴식 벽돌무덤(전축분)으로 내부에 진흙을 바르고 그 위에 횟가루(호분)로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를 그렸다.

 

5호분

할석으로 쌓은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분)으로 천장이 활무양(궁륭식) 형태이다.

 

 

1997년 문화재청의 영구비공개 결정으로 인해 굳게 문이 잠겨져 있다.

 

무령왕릉

무령왕릉은 지하로 굴광하여 연화문이 새겨진 벽돌로 널방을 만든 단실묘(單室墓)로서, 널방 크기는 남북길이 4.2m 동서너비 2.72m에 높이 2.93m이다.

벽은 벽돌 네 개를 눕혀 쌓고 1개는 세워 쌓아 올리는 사평일수(四平一竪)법으로 축조하였으며, 천장은 9단 이상부터 사다리꼴 모양 전을 사용하여 터널형으로 만들었다.

벽면에는 등잔을 놓았던 벽감(壁龕)이 북벽에 1개 동서벽에 각 2개 등 모두 5개가 있다.

널방 남쪽 벽 가운데에 입구로 사용된  널길(羨道)이 달려 있는데, 길이 2.9m 너비 10.4m에 높이가 1.45m이며 천장은 역시 터널형이다. 

널방에는 왕의 관이 동쪽에, 왕비의 관이 서쪽에 놓여 있었다.


 

백제의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공산성이 저 멀리 보인다.

 

송산리고분군을 한바퀴 둘러볼 수 있도록 만든 길

 

정지산유적으로 가는 길

정지산유적은 백제시대 국가적 차원의 제의시설로 추정되며 유적지 내에서는 국가의 중요시설에만 사용된 8잎의 연꽃잎이 새겨진 수막새가 발견되었고, 이외에 화려한 장식이 부착된 장고형 그릇받침 등 국가 제사와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과 왕비의 매지권에 기록된 신지(申地), 유지(酉地)의 방향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어, 왕비의 시신이 사후 무령왕릉에 안치되기까지 2~3여 년간 수습되어 보관된 곳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송산리고분군의 전경

 

송산리고분군의 모형관

이곳은 관람이 폐쇄된 무령왕릉 및 5, 6호분을 정밀하게 재현하여 모형으로 복원한 전시관으로 기존의 고분을 1:1 크기로 동일하게 만들어 관람객에게 역사의 산 체험장으로 제공하고 있다.

모형관 내부에는 5, 6호분, 무령왕릉의 모형과 함께 무령왕릉 출토유물 모형 전시, 사이버진열장, 정보 검색 시스템을 설치하여 한눈으로 백제 역사를 탐방할 수 있는 유익한 교육의 장이다.

 

5호분

 

 

6호분

6호분은 활모양 천장으로 된 이중 널길과 긴 네모형의 널방으로 되어 있는데, 오수전(五銖錢)이 새겨진 벽돌로 정연하게 쌓았다. 널방 벽에는 7개의 등자리와 사신도 · 일월도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무령왕릉

무령왕릉도 6호분과 같이 연꽃무늬 벽돌로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반복하여 벽을 쌓았다.

벽에는 5개의 등자리가 있고, 무덤주인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지석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