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여행

[공주여행] 웅진시대의 백제 역사를 볼 수 있는 국립공주박물관

들꽃(野花) 2012. 3. 4. 23:03

웅진시대의 백제 역사를 알 수 있는 곳, 국립공주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은

무령왕릉실, 충청남도의 고대문화실, 야외정원의 3곳의 상설전시공간과 1곳의 특별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2004년 5월 신축 개관하여 보다 나은 전시환경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1층 무령왕릉실은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으며, 2층 충청남도의 고대문화실은 원삼국시대부터 사비(부여)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웅진(공주)을 중심으로 한 백제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고, 야외정원에서는 공주 일원에서 출토된 많은 석조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국립공주박물관의 관람은  

입장료은 무료 (단, 기획전시는 경우에 따라 유료 가능)이며, 무료 관람이라도 관람질서 유지 및 이용객 안전 등을 위해 '무료 관람권'을 발행하므로 표 받는 곳에서 무료 관람권을 발급받아 입장하여야 한다

전시실은  전문자원봉사자, 멀티미디어단말기, 박물관 직원으로부터 전시유물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한 박물관에서는 문화체험을 하고 있으며, 체험실에서는 박물관을 방문한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해 우리 문화재에 대해 직접학습하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박물관의 상설전시실의

무령왕릉실은 삼국시대의 왕릉 중 무덤의 주인공이 유일하게 확인된 왕릉인 무령왕릉의 발굴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발굴을 통해 출토된 108종 4,687점의 유물 가운데 묘지석, 왕의 관식, 다리작명 은제팔찌 등 1,000여점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왕과 왕비의 목관도 복원하여 전시되고 있다. 특히 3D영상시스템을 갖추어 관람객들이 출토유물의 모든 면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하였고 무령왕릉과 관련된 영상물도 상영하고 있다.


충청남도의 고대문화실에서는 

백제 웅진시기를 전후한 이 지역의 주거, 분묘, 성곽, 대외교류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여 웅진기 백제문화의 특성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하였다.

천안 용원리유적, 공주 송산리고분, 공산성 출토품 등 총 130여점이 전시되어 있고, 특히 최근 높은 관심 속에 발굴되어 4-5세기 무렵 공주지역 지방세력의 존재를 밝혀준 공주 수촌리 백제고분 출토품들도 공개 전시되고 있다. 이와 함께 통일신라 이후 이 지역의 백제적 전통을 보여주는 계유명 천불비상 등 불교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웅진문화 관련 영상물도 상영하고 있다.


야외 전시장에는 공주시 반죽동의 대통사지(大通寺地)에 있던 대통사지(大通寺地) 석조(石槽)와 서혈사지 출토 석불좌상 등 70여점의 석조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4(웅진동 360번지) (우:314-020)

전화 : (041) 850 - 6300, 850 - 6360

홈페이지 : http://gongju.museum.go.kr

 

 

박물관전경

 

 

 

관람안내

 

박물관 1층 내부

 

무령왕릉실에 들어가 처음에 만나는 것으로 무령왕릉의 발굴과정을 사진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무령왕릉의 내부 모습

 

묘지석(국보 제163호)

 왕릉의 널길 입구에 2장의 지석이 놓여 있었는데, 비록 내용은 소략하지만 삼국사기 기록의 정확성을 입증해 주었고, 왕릉 출토유물과 관련된 유적·유물의 편년 연구에 기준이 되고 있다. 무령왕을 무덤에 안치할 때 묘지와 간지도, 매지권(買地券)을 만들어 넣었고, 그 후 529년 왕비를 안치할 때 매지권을 상하로 뒤집어 뒤편에 왕비의 묘지를 새겼다.

이 지석은 우리나라 지석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며, 지석이 출토됨으로써 삼국시대의 무덤 중 피장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무덤으로 비록 내용은 소략하지만 『삼국사기』에 누락된 사실을 보충할 수 있었고, 매지권에서 알 수 있듯이 백제인들의 사상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석수(국보 제162호)

석수는 기괴한 신수를 표현한 공상적인 동물을 무덤 안이나 앞에 놓아서 악귀(惡鬼)를 쫓아 사자(死者)를 수호한다는 중국의 묘장풍습(墓葬風習)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전국시대 초나라 무덤에서 나무 조각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한대에 이르러 무덤 앞에 기괴한 돌짐승을 세우거나 짐승모양을 무덤 안에 넣으면서부터 보편화되었다. 출토당시 무령왕릉 널길 중앙에 밖을 향하여 놓여 있었다.

 석수는 뭉뚝한 입을 벌리고 있고 코는 크지만 콧구멍이 없으며, 등에는 네 개의 융기(隆起)가 있고 머리 위 융기 상면의 패어진 홈에는 나뭇가지 모양의 철제 뿔이 꽂혀 있다. 몸통 좌우에는 앞뒤로 날개모양의 갈기가 도안처럼 부조되었으며, 네 개의 짧은 다리가 있으며 발톱이 표현되어 있는데 뚜렷하지는 않다.

 

 

 

금제귀걸이(왕) (국보 제156호)

 

금제관장식(왕) (국보 제154호),  금동제신발(왕)

 

 금제관장식(왕비) (국보 제155호), 금동제신발(왕비)

 

금제귀걸이(왕비) (국보 제157호), 글자가 있는 은제팔찌(왕비) (국보 제160호)

 

 

 

받침있는 은잔

 

충청남도 역사표

 

 

금동여래입상, 금동관음보살입상

 

 

계유명천불비상 (국보 108호)

비석모양의 불상은 상, 하 두 개의 돌로, 연꽃무늬 받침과 비석이 있고, 그 위에 두 단으로 이루어진 지붕모양의 덮개돌이 얹혀져있는 모양이다. 둥근 연꽃받침위에 세워진 비석형태의 몸통에는 아랫부분에 여래상과 보살상을 조각하고, 그 양쪽으로는 각기 4줄의 글씨를 새겼으며 나머지 몸체와 덮개돌 전면에는 작은 여래상을 가득 새겼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의 내용은 「계유(癸酉,679)년 4월 15일에 백제유민(百濟遊民)인 신도(信徒) 250인이 국왕대신(國王大臣), 7세부모(七世父母), 법계중생(法界衆生)을 위하여 이 불상을 만들다」라고 되어 있다.

 

석조여래좌상

 

 

 

문화재를 기증해 주신 분들을 정리해 놓은 코너

 

야외전시장

 

대통사지출토 석조 (보물 제148, 149호)

 석조[石槽]란 

돌을 파서 물을 담아 쓰도록 만든 큰 물통으로, 절에서 큰 행사가 끝난 뒤 그릇을 씻을 때, 또는 물을 담아두거나 연꽃 등을 기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조는 백제(百濟) 성왕(聖王) 5년(527)년에 세워진 대통사지에 있었던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사각형 석조와는 달리 연꽃무늬가 조각된 둥근 받침돌 위에 올려져 있고, 가장자리에는 한 가닥 띠를 돌리고 몸 중앙에는 약간 가는 두 줄의 띠가 새겨져 있다. 백제문화의 특유의 우아한 조형미를 지닌 이 석조는 발견된 장소의 이름을 따서 각각 반죽동 석조(보물 149호)와 중동석조(보물 148호)로 불리고 있다.

 

서혈사지 출토 석불좌상

 

 

 

 

 찾아오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