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여행

[남원여행]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 있던 광한루를 찾아보니

들꽃(野花) 2012. 4. 15. 05:30

남원의 광한루

춘향전에 나오는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야기의 무대가 이곳 광한루다.

4월1일

봄이 우리들 곁으로 다가오려는 시점에 광한루를 찾아간다. 예전 같으면 벌써 봄이 우리들 곁에 다가와 있었겠지만 올해는 추위가 아직 떠나지 않아 봄꽃들도 피기를 주저하고 있다.

'2012년 전북 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일요일 아침 일찍 시청 관계자와 함께 광한루를 찾는다.

조금은 싸늘하다는 느낌이 드는 광한루의 아침은 너무도 고요하다.

다만 같이 간 일행들의 발걸음과 사진기에서 나오는 소리만이 고요한 광한루의 아침을 깨우는 것 같다.

 

몇 년전 5월에 광한루를 찾았을 때 이곳에서 춘향제의 춘향아가씨 선발대회가 있어 상당히 복잡했었는데 오늘은 너무도 고요하고 잔잔하다.

바람도 없고 관람시간 전에 광한루를 찾아갔기에 관광객들도 없어 사진을 찍기에는 너무도 좋다.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을거란 생각이 든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여행이란 돈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삶의 여유를 찾으려는 시대로 관광이 많이 활성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광한루 앞에 물에 비치는 광한루와 오래된 고목들, 한폭의 산수화를 연상케하는 광한루다.

 

광한루원의 문화재를 소개하면

보물 제281호 광한루가 1963년 1월 21일 지정되었고, 1983년 7월 20일 광한루원이 사적 제303호, 2008년 1월 8일 광한루언이 명승 제33호로 지정되었다.

 

광한루원은

우리나라 4대 누각의 하나인 광한루와 더불어 하늘의 옥황상제가 살던 궁전 「광한청허부」를 지상에 건설한 인간이 신선이 되고픈 이상향으로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같다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시인묵객들은 궁궐에는 경회루가 있고, 지방에는 광한루와 더불어 평양의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이라 불려지는데 그 중 으뜸은 광한루라 했다.
경회루는 궁궐의 건물로 황실에서 지은 곳이며 지방의 누각 중 평양의 부벽루는 애석하게도 아직은 가볼 수 없는 곳이고, 진주 촉석루는 안타깝게도 6ㆍ25 때 불에 타 지금의 건물은 1960년 5월경 복원한 것으로 복원 역사가 짧으며, 밀양의 영남루 역시 1844년에 지어 복원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러나 광한루는 1419년에 지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1626년에 복원한 건물로 복원 역사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광한루와 오작교가 왕버들 아래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광한루원의 정문인 '청허부'

이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지상의 인간이 천상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된다는 상징적인 문이다.

이 건물은 1971년 최봉채 남원군수가 경역을 확장하면서 신축한 건물로 건평 약 11.83평에 맞배지붕 솟을 삼문형식으로 지어졌는데 광한루원이 천체우주를 지상에 건설한 작은 우주로서 하늘의 옥황상제가 사는 달나라 옥경인 광한청허부를 상징하므로 옥경을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로 청허부라 했다.

 

팽나무 아래의 의자들

무더운 여름날이면 이곳에는 광한루를 찾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겠다.

 

영주각의 모습

 

완월정은 수리중

 

영주각의 모습은 연못에 비치고 있고

 

저 멀리 광한루 또한 물에 그 그림자를 비추고 있다.

 

 

저 돌 생각난다.

한복을 입은 남정네가 관광객들을 위해 대금을 불어 주던 곳이다.

 

 

춘향사당

 

춘향영정

 

남원 시내에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모아 놓은 것

 

보물 제281호 지정된 광한루

광한루는 원래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이후 세종 26년(1444)에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따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되었다. 광한은 달나라 궁전을 뜻한다. 춘향과 이몽룡도 바로 이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맺게 되었다.

 

호남제일루 광한루

 

 

 

자라돌

 

오작교

하늘의 견우와 직녀의 사랑, 신분의 벽을 뛰어 넘은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을 표현해 놓은 다리로 오작교는 까마귀오(烏), 까치작(鵲), 다리교(橋)자를 쓴다.

오작교의 건축 역사를 보면

선조15년(1582)에 남원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또한, 오작교를 밟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고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어린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처녀가 아닌 사람이 다리를 건너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처럼 광한루와 오작교는 전설과 사랑이 어우러져 있어, 춘향이가 단오날 그네를 뛰는 것을 광한루에 올라앉아 이도령이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것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의 다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춘향관

1992년 완성된 건물로, 박남재 화백이 그린 유화 9폭의 춘향일대기와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서화류, 장신구, 서책 등이 전시되어 있다.

 

 

 

 

 

 

 

 

광한루원

전북 남원시 요천로 1447번지

전화번호 : 063-620-8901~3

홈페이지 : http://www.gwanghallu.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