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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여행] 성웅 이순신장군의 발자취를 찾아 임진왜란의 첫 승전지 - 옥포대첩기념공원

들꽃(野花) 2012. 4. 21. 06:00

성웅 이순신장군의 발자취를 찾아 임진왜란의 첫 승전지인 옥포대첩기념공원을 찾아간다.

옥포대첩

옥포대첩기념공원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한 옥포해전을 기념하고 충무공 정신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기 위해 유서 깊은 옥포만이 내려다보이는 옥포동 산 1번지 일원에 109,022㎡의 규모로 조성한 기념공원이다.

기념탑과 옥포루에 오르면 옥포만이 정면으로 보인다. 공원 내에는 기념탑과 참배단, 옥포루, 기념관, 이순신 장군 사당 등이 있으며 매년 이순신 장군의 제례행사가 열리며 6월 16일을 전후하여 약 3일간 옥포대첩기념제전이 성대하게 열린다.

 

옥포대첩을 알아보면

임진년 4월 14일 부산포에 침입한 왜적은 상주, 충주를 거쳐 5월 2일에는 마침내 한양을 점거하고, 6월 13일에 평양에 이르면서 전국 곳곳에세 살인과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고 있었다.

이때 경상우수사 원균이 율포만호 이영남을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였다. 4월 29일 구원 요청을 받은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도는 경상도와 더불어 일해상접한 요새라는 명석한 판단으로 출정을 결단, 5월 14일 축시에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을 거느리고 전라좌수영을 출발 경상도로 향하였다.

소비포 앞바다에 이르러 날이 저물어 하룻밤을 지낸 다음 5월 5일 새벽 전함대를 지휘하여 원균과 만나기로 약속한 당포로 향하였다. 5일밤을 당포 앞바다에서 보내고 6일 아침에야 전선 1척을 타고 도착한 원균을 만나 왜적의 정세를 상세히 듣고 남해 현령과 경상도의 진장들의 전선 6척을 증강 편성하고 거제도 남단을 거쳐 송미포 앞바다에 이르러 밤을 지냈다.

7일 새벽에는 일제히 송미포를 출발 왜적이 머무르고 있는 천성, 가덕도를 향하였다.

오시경 이윽고 이들 91척의 함대가 옥포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이순신 장군이 타고 있던 판옥선상에 전방의 척후선으로부터 옥포 선창에 적선이 있음을 알리는 신기전이 날아 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여러 장병들에게 적선의 발견을 알림과 동시에 전열을 가다듬고 준엄한 목소리로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 태산같이 침착하게 행동하라"는 주위와 함께 공격개시의 군령을 내렸다. 이같은 맹렬한 공격으로 옥포선창에 정박하고 있던 적선 50여척 중 26척이 격파되니 한창 강성하던 적의 기세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것이 옥포대첩이다.

 

옥포대첩은 무방비 상태의 조선이 일본의 수군을 맞아 벌인 최초의 전투이자, 승전이다.

옥포만은 지형이 복잡한 거제도의 동쪽에 위치한 소규모 어항으로 우리 수군이 옥포에서 큰 승리를 거둔 것은 장비나 실전 경험의 우수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조정은 왜구에 대한 방비를 전혀 세우지 못한 채 당파싸움으로 혼란스러웠으며, 무기 또한 왜구의 조총에 대적할 만한 것이 조선에는 없었다.

특히 옥포대첩은 왜군의 통신 및 보급로를 차단해 왜군의 육상 전진을 저지했으며 아군의 사기진작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

 

기념탑의 위용 

 

기념관 

 

옥포만의 모습 

 

기념탐과 참배단으로 올라가는 길

길 좌우에 조팝나무꽃이 하얗게 피어 기념탐으로 올라가는 길의 발걸음을 환하게 하고 있다. 

 

하얀 꽃을 활짝 피운 조팝나무

눈꽃이 내려앉은 듯하다.

 

 

기념탑

 

옥포루

이곳에 오르면 옥포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옥포만의 전경

 

 

 

등나무에 자주색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이순신 장군 사당 

 

 

 

이순신 장군 영정

 

사당에서 내려다 보는 옥포만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전투함이었던 판옥선

평전선 선체위에 상장을 얹고 선방을 세워 방패의 기능을 하게 하였고, 포혈을 내여 곡사 방포를 가능하게 하였다. 중앙에는 장대를 높게 설치하여 수장의 지휘가 원할하게 하였다. 화력은 천지현황포와 장군전, 신기전, 활 등으로 무장하여 포격 후에는 적의 상황을 살펴봄으로서 작전 수행이 가능하였다. 특히, 병사중에는 노 젓기와 항해술이 능숙한 병사들의 기동성이 배의 기동력을 높게 하였다.

난전중이나 근접전 중에도 노군과 치군은 적으로부터 안전한 2층에 위치 노출되지 않는 장점이 있으며, 모든 전투함의 기본이 되었다.

조선 수군의 주력전투함으로 거북선 건조의 기본이 되었다. 160~190여명의 탑승인원 중 100~120여명이 노군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포술과 궁술로 왜적을 무찔렀다.

 

거북선

거북선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지휘아래 세계 4대 해전중의 하나인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등 화력이 막강한 전투함으로 판옥선에 둥근 개판을 덮고 선두에 용머리를 달아 그 형상이 거북이와 비슷하게 만든 배이다.

적의 근접과 등판을 막기 위하여 철편을 덮고 송곳을 꽂았으며 선두의 좌 · 우와 상장의 좌 · 우에 포혈을 만들고 천지현황포와 장군전, 신기전, 완구포 등을 장착하여 그 화력이 막강한 전투함이다.

주로 돌격선의 역할을 다하며 당파를 하였고, 적의 기선 제압에는 최상의 전투함이다.

 

 

 타일 위에 그려진 그림을 보니 푸른 바다 위에 넘실대는 파도를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