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왠지 조용한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시점에 금산에서 1박 2일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금산이라
금산하면 뭐니뭐니 해도 인삼이 유명하죠.
인삼을 사러 금산을 왔다 간적도 있고, 금산의 문화재를 찾아 다녀갔기에 그리 낯설지 않게 느끼는 곳이다.
몇 년전에 문화재를 찾아 이곳 금산을 찾았을 때 절의 이름이 참 이뻐 찾은 곳이 있었다.
바로 보석사다.
진악산 남쪽 산기슭에 자리한 보석사
보석사에 대한 기록을 찾다보니 산의 암석에서 금을 캐어 불상을 주조했다고 전해져 보석사라는 절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그래서 보석사구나!
더구나 보석사는 의병승장이었던 영규대사의 호국정신이 절 곳곳에 배여 있고, 절을 창건한 조구대사가 제자 6명과 함께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이제 6그루의 나무가 하나로 묶여서 아름드리의 한그루 은행나무로 성장하여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되었다.
일주문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아름드리 전나무 숲 길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 때인 886년 조구대사에 의하여 세워진 절로 산의 암석에서 금을 캐어 불상을 주조했다고 전해져 보석사라는 절 이름이 붙여진 곳이라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진악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보석사
절은 울창한 숲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마을 뒷편의 전나무 숲이 보석사의 입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아담한 마을과 진악산의 산세가 잘 어우려져 있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주차장에서 소나무의 숲길을 걸어가니 보석사 일주문이 떡 하니 나를 맞는다.
차량이 들어갈 수 있도록 일주문 옆에 자갈길이 밌어 분위기를 조금 떨어트리고 있는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진악산 보석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보석사 일주문
문은 문이되 그 어떤 열고 밀고하는 문이 없는 누구나 쉽게 들어가고 나올 수 있도록 만든 문
그것이 일주문이다.
절과 세속의 경계로 절에 들어오는 마음을 다스리라는 의미가 아닐까?
소나무 숲이 길가는 나그네를 즐거이 맞아준다.
의병승장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호)
임진왜란의 의병승장으로서 금산전투에서 중봉 조헌과 함께 순절한 기허당 영규대사의 순절사적비로 1840년 보석사 입구에 건립되었다.
비문을 지은이는 우의정 조인영이며, 금산군사 조취영이 글씨를 썼고, 비는 비각안에 있다. 비의 앞면에는 큰 글자라로 '의병승장(義兵僧將)'이 새겨져 있으나 자획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1940년 일본 경찰이 비각을 헐고 자획을 훼손하여 땅에 묻었던 것을 광복 후에 다시 세웠다.
의병승장(義兵僧將)
의병승장비를 지나 앞쪽으로 시원스레 있는 전나무 숲길을 걸어본다.
햇빛이 뜨거운 날이지만 숲속에 들어오니 더위는 저 멀리 사라지고, 시원한 기운을 온 몸으르 느낄 정도로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전나무 숲 길을 지나면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오고 그 좌측으로 높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은행나무를 만나게 된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된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이다.
보석사를 창건한 조구대사가 6명의 제자와 심었는데 후에 한그루의 나무로 성장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이다.
은행나무 둘레를 보니 어른 몇 사람이 팔을 벌려 안아야 할 거 것 같다.
은행나무를 보고 절로 들어가니 넓은 마당에 한편에는 식수대가 있고,
그 너머로 대웅전과 기허당이 보이며 절의 제일 뒤쪽에는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대웅전 앞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승장이었던 영규대사가 머물며 정진했던 곳으로 알려진 의선각이 있다.
보석사 대웅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대웅전이란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을 말하며.
보석사 대웅전은 마당에서 10계단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다포계 양식의 맞배지붕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협시로 봉안되어 있다.
진영각, 기허당
영규대사의 진영을 봉안해두었다고 해서 진영각은 기허당으로로 불리우며, 전각안에는 기허당 영규스님의 진영을 중앙에 모셔놓았다.
영규대사의 진영
절 한켠에 있는 박태기 나무
엊그제 밥풀데기 같은 꽃을 피웠었는데 어느새 열매가 맺혀있다.
기허당과 그 너머로 산식각이 보인다.
의선각(문화재자료 제29호)
임진왜란 당시 의병승장이었던 영규대가가 머물며 정진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영규대사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승병을 모집하고, 중봉 조헌선생의 의병과 함께 금산의 왜적을격퇴하였으며 700의사와 함께 1592년 8월 금산벌싸움에서 전사했다. 영규대사는 용맹과 담력이 출중했으며 싸움마다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창녕위 김병주가 쓴 의선각이라는 글씨
전나무 숲길을 뒤돌아보며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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