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여행] 신석기시대의 선사인을 찾아 떠난 길 -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수렵과 어업으로 살아갔을거란 막연한 생각으로, 간혹 방송이나 인터넷상에서 보는 것이 전부일 뿐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지 못했다.
울산의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울산암각화박물관을 찾아 암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을 얻고,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
바위그림을 암각화라고도 하는데,
암각화란 선사인들이 자신의 바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주소 :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안길 285 (대곡리)
국보 제285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965년 완공된 사연댐으로 인해 현재 물 속에 잠겨있는 상태의 높이 3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을 새긴 바위그림이다.
바위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75종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45점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교미하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바다고기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
조각기로 쪼아 윤곽선을 만들거나 전체를 떼어낸 기법, 쪼아낸 윤곽선을 갈아내는 기법의 사용으로 보아 신석기말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과 점을 이용하여 동물과 사냥장면을 생명력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미술작품으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울산암각화박물관
고래를 형상화한 박물관
암각화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과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의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울산암각화박물관
암각화박물관에서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길을 떠난다.
파란하늘에 뭉게구름
비록 날은 폭염 수준으로 더웠지만 사진이 잘 나와서 참을만 하다.
다리의 상류지역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국보 제147호 울주 천전리 각석을 만나게 된다.
사연댐으로 흘러가는 대곡천의 계곡물
무더위속을 씩씩하게 걸어간다.
천전리각석 1.4km, 반구대 암각화 1.0km
어느쪽으로 갈까?
오늘은 반구대만 보고, 천전리 각석은 다음을 기약해야 하네요.
높은 절벽에 우뚝솟은 작은 봉우리
바위에 '반구'라고 새겨져 있는게 보인다.
반구대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집청정'
계곡물이 흐르는 언덕위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니, 선조들의 자연을 즐기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푸르름을 모으는 정자'라는 뜻의 집청정은 관리가 좀 소홀한 것 같다.
다만 그 뒤로 탬스테이를 하고 있는 것이 보여,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이 멋진 풍경을 뒤로 하고 뭐에만 신경쓰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상사화의 슬픈 사랑을
오래된 흙담속에 묻어두고
오늘도 하루가 흘러간다.
반고서원
대곡천 너머 숲 속에 있는 비각이 보인다.
저 비각안에는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제 제13호로 지정된 '반고서원 유허비'가 있다.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으로, 이 비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포은 선생은 고려 우왕 2년(1376)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있으면서 중국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친원배명 외교정책에 반대하다가 이곳에서 1년가까이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 동안 반구대에 올라 "중양절감회"라는 시를 짓는 등 많은 자취를 남겼다. 그 후 지역인들은 선생을 추모하여 반구대를 "포은대"라 명명하기로 하였다.
숙종 38년(1712) 언양지역 유생들이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세 분을 추앙하여 반고서원을 세우고 제서하였다. 그러나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서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후 지역 유림들이 포은대영모비(1885), 포은실록대비(1890), 반고서원유허비실기(1901) 3기의 비석을 차례로 세웠으며, 1965년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된 대곡천
반구대 암각화로 가는 길
뜨거운 태양아래 이런 멋진 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줄 모르겠다.
좀더 하고 싶다면
저 계곡물에 풍덩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도
나는 오늘 기어이 물속에 들어갔다.
'석남사'아레에서~~~
울산 대곡리 연로개수기
대곡천 가장 자리의 바위 면에 새겨진, 일종의 마애기로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연로'는 벼루길이라는 뜻으로
'벼루처럼 미끄러운 바윗길,'
'벼루에서 음차한 벼랑길',
'사대부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학문길' 등의 뜻을 가진말이다.
반구대 암각화까지 500m 남았습니다.
데크길을 걸어간다.
버드나무 주렁주렁 늘어지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습지식물들이 가득 깔려있고
파란하늘의 뭉게구름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린다.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
대곡리 하천에 있는 공룡발자국화석을 사진에 담으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약 1억년전의 전기 백악기 시대에 살았던 공룡들의 발자국으로 보이는 화석이다.
드디어 반구대 암각화에 도착했다.
그러나 나의 발길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멈쳐서야만 했다.
다름 아닌 저 계곡물 너머의 바위가 바로 선사시대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암각화가 새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진으로, 망원경으로 대신해야만 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선사인들의 삶을 보고 싶었는데
여기서 눈으로만,
그것도 바위에 있을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울산암각화박물관이 있어서 바위에 새겨진 것들을 멀리서 보지만 그 내용을 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울산암각화박물관에 만들어놓은 모형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물론 그림을 이해하는데는 약간 전문가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몇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비록 직접 만져보고 하지만 못했지만
선사인들의 생활모습을 조금은 엿보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울산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산여행] 울산시민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 태화강변의 십리대밭길에서 그 맛을 즐겨보다. (0) | 2012.08.29 |
---|---|
[울산여행] 도의국사가 신라의 호국을 염원하기 세운 가지산의 석남사 (1) | 2012.08.26 |
[울산여행] 바다의 고래가 육지에 올라와 있는 울산암각화박물관 (0) | 2012.08.23 |
[울산여행]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며 무더운 여름을 나는 울산의 작괘천계곡 (0) | 2012.08.22 |
[울산여행] 고래 찾으러 떠난 고래바다여행. 너는 어디에? (0) | 2010.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