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여행

[삼척여행] 조선의 뿌리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만난 삼척의 준경묘와 영경묘

들꽃(野花) 2012. 10. 11. 17:27

[삼척여행] 조선의 뿌리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만난 삼척의 준경묘와 영경묘

 

역사의 뿌리를 찾는다.

우리나라의 역사중 조선의 뿌리를 찾아 떠난다.

삼척의 준경묘

작년 가을 준경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영경묘를 찾았었다.

그리고 준경묘를 찾아왔을 때 너무 힘들어 포기를 하고 그냥 돌아간 적이 있어 항상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다.

 

삼척 준경묘와 영경묘

준경묘와 영경묘는 조선 태조의 5대조(목조의 부모, 즉 양무장군과 그의 부인 이씨)의 능묘로 비록 왕의 능침은 아니지만 조선왕조가 인정한 선조의 묘역이다. 준경묘는 활기리에 있고 영경묘는 약 4km 떨어진 하사전리에 있다.

특히 준경묘와 영경묘는 남한에 소재하고 있는 조선 왕실 선대의 능묘로서 조선 왕조 태동의 발상지로 중요한 곳이다. 전주이씨 문중 주관으로 매년 4월 20일 제례를 올리고 있다.

 

1899년에 왕명으로 묘소를 짓고, 제각(제사를 지내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머무는 공간 또는 제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공간), 제실, 비각 등을 세웠다.

특히 준경묘 앞에는 왕릉에 세워지는 정자형의 제각이 아니라 황제의 제각에 세우는 일자형으로 되어 있다.

준경묘와 영경묘 일대는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되어 있어 원시림의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경치가 좋은 곳이며 여기의 소나무는 경복궁 중수 때 자래로 쓰였다고 한다.

 

 

준경묘 전경

 

 

주차장에 차를 대고 출발한다.

 

그런데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의 경사가 만만치 않다.

 

준경묘까지의 거리도 1.8km라 하니 반 정도는 이정도의 오르막길로 가야한다고 한다.

 

체력이 문제일까?

상당히 힘들어한다.

등에서는 땀이 흘러내린다.

 

가을날 햇살을 받은 칡덩쿨

 

지금부터는 평지길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간다.

주변을 둘러보면 오래된 소나무가 가득하다.

이런 길을 걸으면 숲에서나오는 기운에 의해 기분이 상쾌해지고 건강이 넘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인송

 

산림청 임업연구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의 혈통보존을 위해 10여년의 연구와 엄격한 심사를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형질이 우수하고 아름다운 소나무를 찾았는데 여러분이 보는 이 소나무가 선발되었다.

나이 95살, 키 32m, 가슴높이 둘레 2.1m인 이 소나무는

보은군 내속리면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이품송을 신랑으로 맞아 2001년 5월 8일 세계최초의 '소나무 전통 혼례식'을 가졌다.

 

 

 

 

 

투구꽃

 

준경묘를 찾아가는 사람들

 

홍살문과 일자각, 비각등이 보이고 그 뒤로 묘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왕의 능에는 정자형 제각이 있는데 여기는 황제의 능에 있는 일자형의 제각이 세워졌다.

 

 

준경묘역

 

조선왕조 창업의 산실로 불리는 준경묘에는 유명한 백우금관(百牛金冠)전설이 전해오고 잇다.

목조 이안사가 삼척으로 이주하여 살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게 된다. 목조는 아버지의 묘자리를 찾기 위해 산속을 헤매다가 나무 밑에서 잠시 쉬는데, 한 도승이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루 살피고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혼잣말로 '참 좋구나. 대지(大地)로다'라고 하였다.

이안사가 나무 밑에 앉아 있었기 때문데 듣는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도승은 계속해 '개토제(開土祭)에 소 일백 마리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관을 금으로 만들어 장사지내면 5대 안에 왕이 출생하여 기울어 가는 이 나라를 제압하고 창업주가 될 명당이로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안사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골몰히 생가하였으나 가난한 살림살이에 소 백마리와 금으로 만든 관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안사는 궁리 끝에 흰 소를 한자로 쓰면 백우(白牛)이므로 숫자상 일백 백자와 발음이 통하므로 소 일백마리는 흰 소 한마리로 대신하고, 귀리 짚이 황금색이니 이것으로 금관을 대신하면 될 것이라 판단하였다. 마침 처가에 흰 소가 있어 부인에게 내일 밭갈이를 하려고 하니 처가의 흰 소를 잠시 빌려오라고 하였다.

다음날 부인이 몰고 온 흰 소를 잡아 제물로 사용하고 황금색 귀리 짚으로 관을 만들어 장사를 지냈다. 이렇게 장례를 치른 후 이양무의 5대손인 이성계가 마침내 왕이 되어 조선을 건국하였다.

 

 

 

 

 

후손인 듯

간단히 제를 올린다.

 

 

 

묘역 뒤에서 내려다 보는 전경

 

비각안에는 '어제준경묘비'라 적힌 비가 있으며, 이 비는 광무 3년(1899)에 자헌대부 이근명이 비문을 썼다.

 

 

저기 사람들이 가는 목적지는 바로 숭례문에 쓰인 나무를 자른 곳과 일제강점기에 일본놈들이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소나무에 생치기를 낸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가고 있는 것이다.

나쁜놈들~~~

 

 

 

 

 

 

영경묘

 

 

영경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