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여행] 목숨을 바쳐 왕건을 지킨 충절의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
대구광역시 동구 신숭겸길 17(지묘동)에 있는 신숭겸장군 유적지를 찾는다.
그는 누구인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생명력을 잃어가고 새로운 시대가 웅비하려고 새로이 나타난 세력들이 있었으니 궁예의 후고구려와 견훤의 후백제가 그들이었다.
궁예의 부장이었던 신숭겸이 배현경, 홍유, 복지겸 등과 918년 궁예의 폭정을 견디다못해 새로이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건국한다.
신숭겸은 본명은 삼능산 또는 능산이며 시호는 장절, 평산 신씨의 시조이다.
고려태조 10년(928) 대구 전투에서 왕건의 갑옷을 바꾸어 입고 대신 전사하였다. 견훤의 후백제군이 그의 시신에서 수급을 베어갔으므로 고려 태조는 그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순금으로 두상을 만들어 시신과 같이 광해주(지금의 춘천)에 묻고 순절단, 지묘사, 미리사를 세워 명복을 빌었다.
조선 선조 40년(1607)에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지묘사의 자리에 표충사를 지어 신숭겸을 모셨으며, 후에 이 서원에 사액을 내려 관리하였다.
고종 8년(1871)에 서원 철폐령으로 표충사가 없어지자 후손들이 표충재를 새로 지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 신숭겸장군유적
팔공산 왕건길에서 만난 신숭겸유적지
팔공산 왕건길은 총 8개 코스로 되어있다.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과의 동수 전투의 주무대가 된 신숭겸장군 유적지부터 대구광역시 동구 동내동 동곡지까지 모두 35km구간에 이른다.
특히, 코스마다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어 온 가족이 함께 걷기에 좋은 길이다.
1코스 용호상박길 : 신숭겸장군 유적지 ~ 열재 4.3km
2코스 열린하늘대 : 열재 ~ 부남교 4.5km
3코스 묵연체험길 : 부남교 ~ 물넘재 5.4km
4코스 문화예술길 : 물넘재 ~ 백안삼거리 3.3km
5코스 고진감래길 : 백안삼거리 ~ 평광종점 5.2km
6코스 호연지기길 : 평광종점 ~ 매여종점 5.0kim
7코스 가팔환초길 : 매여종점 ~ 초례봉 3.3km
8코스 구사일생길 : 초례봉 ~ 동곡지 4.0km
코스마다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함축한 길 이름이 붙어 있는 것도 흥미롭다.
특히 1코스 용호상박길, 5코스 고진감래길, 7코스 가팔환초길, 8코스 구사일생길에서는 동수 전투와 이야기와 왕건의 탈출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대구 팔공산 일대에는 왕건과 견훤의 동수전투 이후 생겨난 지명이 많이 있다.
나팔고개 : 견훤의 군사가 고려군을 추격하며 나팔을 분곳으로 지묘1동과 3동 사이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지묘동 : 신숭겸이 지혜로운 묘책으로 왕의 목숨을 구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왕산 : 신숭겸 유적지 뒷폄의 왕산은 견훤에게 대패한 왕건이 도망치며 넘은 산, 왕이 오른 산이라고 해서 왕산이라 불린다.
불로동 : 도망치던 왕건이 도착했을 땐 마을에 어른들은 업고 아이들만 남아있었다 하여 불로(不老)동이라 불린다.
독좌암 : 왕건이 홀로 앉아 쉬어 간 바위를 독좌암(獨坐巖)이라고 부른다. '독지바우'라고도 하는 이 바위는 봉무동 노인회관 북쪽 5m지점의 개천가에 있다.
시량이마을 : 왕건이 나무꾼을 만나 주먹밥을 얻어 먹은 편광동 마을은 훗날 '시량이 마을'로 불리게 된다. 고려의 왕인 줄 꿈에도 몰랐던 나무꾼이 다시 돌아와 보니 사람들은 간데없고 그가 왕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이때부터 '왕을 잃었다'고 해서 실왕리(失王里)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훗날 '시량이'로 고쳐부르게 된다. 변음되어 '시랭이'라고도 불린다.
안심 : 왕건이 이곳에서 겨우 안심하고 마음을 푹 놓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반야월 : 도피중 시각이 반야(半夜:한밤중)였고, 달이 떠 있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신숭겸 유적지 뒤에 있는 산이 왕산이다.
견훤에게 대패한 왕건이 도망치며 넘은 산, 왕이 오른 산이라고 해서 왕산이라 불린다.
동수전투에서 패한 왕건은 왕산을 빠져나와 봉무동(독좌암)을 거쳐 불로동 - 평광동 - 시량이 마을 - 안심 - 반야월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표충단
고려때는 지묘사 절을 지어 향사를 모셔오다가 1607년 후손 신흠과 외손인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신숭겸 장군이 돌아가신 자리에 단을 쌓아 위왕대사의 정신을 기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강원도 춘천시에는 신숭겸 장군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으며 묘역에는 묘와 묘비, 신도비, 사당, 영정, 동상이 있고, 묘에는 봉분이 세개 있어 특이한 형태로 되어 있다.
1805년에 김조순이 비문을 짓고, 신위가 글씨를 쓴 신도비에 의하면
'봉분이 세개가 있는데 대하여 두가지 설이 있으니 그 하나는 신숭겸이 전사하자 견훤의 후백제군들이 목을 베어 갔으므로 고려 태조는 순금으로 두상을 만들어 시신과 같이 매장하고 어느 것에 시신이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게 하여 도굴을 방지하려 하였다고 하고, 다른 하나는 신숭겸의 부인 묘라고 전해지는데 그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고 기록하였다.'
일찍이 신숭겸이 태조를 따라 삼탄에 사냥을 나갔을 때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마침 기러기 세 마리가 하늘을 빙빙 돌고 있었다. 맑고 화창한 오후였다.
“누가 쏘겠는가?”
왕건이 느닷없이 기러기를 가리켰다. 주위의 장수들은 하나같이 머뭇거렸다. 나서는 이가 없었다.
“제가 쏘겠습니다.”
신숭겸이었다. 왕건의 웃음 띤 시선이 그를 향했다. 기대에 찬 미소였다.
“몇 번째 기러기를 쏘면 되겠습니까?”
활을 움켜 쥔 신숭겸이 왕건에게 되물었다. 자신감에 찬 말이었다.
“허허 그래, 그럼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맞혀 보거라.”
신숭겸의 활이 둥근 곡선을 그렸다.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고, 신숭겸의 화살은 빠르게 바람을 갈랐다. 화살은 곧장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에 꽂혔다.
“역시 신숭겸이군. 허허허”왕건은 크게 웃었다. 흡족한 웃음이었다.
“내 오늘, 이곳 황해도 평산 일대의 논과 밭을 신숭겸에게 상으로 내릴 것이다. 또한 오늘부터 평산 신씨 성을 하사할 것이다. "
<윗 글은 영남일보의 '팔공산 왕건길, 동수전투 이야기 속으로'의 내용을 참조하였다>
태조가 크게 칭찬하고 평주(平州:평산) 라는 본관을 주고 기러기를 쏜 근방의 밭 3백 결(結)을 주어 자손 대대로 조(租)를 받게 하였으니 이땅을 궁위(弓位)라 불렀다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은 신숭겸의 동생 능길, 아들 보를 원윤으로 등용하고 지묘사를 창건하여 그의 명복을 빌게했다.
1120년(예종 15) 그와 김락을 추도하여 예종이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향가를 지었다.
향찰식으로 표기했으며 신숭겸(申崇謙)의 행적을 기록한 〈평산신씨장절공유사 平山申氏壯節公遺事〉에 실려 전한다.
"님을 온전히 하시는 마음은 하늘가에 미치시니 넋은 가셔도 삼으신 벼슬만큼은 또 하는구나. 오오 돌아보건대 그때의 두 공신이여 오래되었으나 곧은 자취는 나타나는구나."
붉게 핀 매화를 바라본다.
매화향기 담장너머로 날아와
그대가 잠들어 있는 곳에
살며시 흩 뿌리고 사라진다.
붉게 핀 매화향기 그대의 넋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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