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여행

[제주여행] 제주도의 교학발전에 공헌한 다섯분(5현)을 기리는 제단-오현단

들꽃(野花) 2013. 5. 23. 06:00

[제주여행] 제주도의 교학발전에 공헌한 다섯분(5현)을 기리는 제단, 오현단

 

제주도여행

제주도하면 남쪽나라, 섬여행, 한라산, 싱싱한 횟감, 세계자연유산 등 볼거리가 참으로 많지만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제주여행에서 그동안 놓치기 쉬웠던 문화재 관련 여행을 곁들이기로 하여 삼성혈을 보고 이도1동에 있는 오현단을 찾는다.

 

오현단은

  조선시대에 이곳 제주도에 유배되거나 방어사로 부임하여 이 지방의 교학 발전에 공헌한 다섯 분(5현)을 기리고 있는 제단으로, 이들의 위패를 모시던 귤림서원의 옛 터에 마련되어 있다.

 

  5현은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김정 선생, 중종 29년(1534)에 제주목사로 부임해 온 규암 송인수선생, 선조 34년(16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정온 선생,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 선생 등 다섯 분이다.

 

고종 29년(1892) 제주사람 김의정이 중심이 되어 비를 세우고 제단을 쌓아놓았는데, 원래는 선조 11년(1578) 임진이 목사로 있을 때, 판관 조인준이 가락천 동쪽에 충암 김정을 모시기 위한 충암묘를 지은 것이 그 시초이다. 현종 6년(1665) 판관 최진남이 이 묘를 장수당 남쪽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놓은 뒤, 숙종 8년(1682) 예조정랑 안건지를 제주도에 파견하여 ‘귤림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여 김정 선생·송인수 선생·김상헌 선생·정온 선생 등 네 분의 위패를 모시도록 하였다. 숙종 21년(1695) 송시열 선생도 함께 모시면서 5현을 배향하게 되었으나, 고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 서원이 헐리게 되어, 그 터에 이 제단을 설치하게 되었다.

 

단내에 있는 5현의 자취로는 철종 7년(1856) 송시열 선생의 글씨로 하여 판관 홍경섭이 바위에 새긴 ‘증주벽립’이라는 글씨와, 김정 선생과 송시열 선생의 ‘적려유허비’가 남아있다.

 

오현단 (五賢壇)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호

소재지 : 제주 제주시 이도1동 1421-3

 

 

 

 

 

 

 

 

 

 

 

 

 

송시열 선생의 글씨로 하여 판관 홍경섭이 바위에 새긴 '증주벽립'

 

 

 

 

오현을 기리는 제단

 

 

좌측의 송시열 선생과 우측 김정 선생의 '적려유허비'

 

 

 

 

 

 

향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