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대승사묘적암나옹화상영정 (聞慶大乘寺妙寂庵懶翁和尙影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8호
소재지 :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20(대승사 묘적암)
대승사 묘적암은 윤필암 입구 삼거리에서 서북쪽 400m 지점인 8분 능선에 위치하여 전만이 좋은 곳으로 646년(신라 선덕여왕 15) 부설(浮說)거사가 창건하였고, 1339년 지공, 무학과 함께 삼대화상의 호칭이 있는 나옹화상이 출가한 곳이다.
대승사 묘적암에 모셔진 이 나옹화상 영정은 화기(畵記)를 통해 1803년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화면에는 가사 장삼을 입은 나옹화상이 주장자를 들고 염주를 잡은 채 측면 향으로 가부좌하고 있다. 고승 뒤로 용장식이 화려한 불자(拂子)가 세워져 있으며, 바닥과 벽면이 구분되어 있다.
(문화재청 자료 참조)
화면 왼쪽 위에는 주인공의 존호를 밝힌 영제(影題)가 적혀있고, 맨 아래에 제작연대와 제작자를 밝힌 화기가 있다. 왼쪽 어깨의 커다란 가사 고리가 금으로 장식되어 있는 등 비교적 많은 양의 금을 사용하고 있다. 이 불화는 제작연대를 알 수 있어 나옹화상 영정 연구에 기준작이 되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요무애이무증혜) :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以終我(여수여풍이종아) :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이 가사는 지공, 무학대사와 함께 고려말 3대화상이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선사 지은 서왕가(西往歌)의 일부분이다.
나옹선사는 고려 충숙왕 7년(1320) 영해부 가산리(지금의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에서 아버지 아서구와 어머니 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충숙왕 복위 8년(1339) 선사가 20세 때에 친구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하고 물으니 모두 모른다 하여 슬픈 생각을 품고 공덕산 묘적암의 요연선사를 찾아가 출가하였다.
묘적암에 머물던 요연스님이 열심히 수도하던 나옹에게
“너는 무엇하러 머리를 깎았는가.” 라는 물음에 나옹이 답하기를
“삼계를 뛰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지금 여기 온 너는 어떤 물건인가.”라고 묻다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여기 왔을 뿐, 볼 수 없는 몸을 보고 싶고 찾을 수 없는 물건을 찾고 싶습니다. 어떻게 닦아 나가야 하겠습니까” 라고 답하니 요연선사께서
“나도 너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보라”하였다.
요연은 자신도 알지 못하니 명안종사를 찾아가라 하셨다. 이후 나옹선사는 여러 절을 돌아다니다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서 뜻한 바를 깨달았다 한다. 뒷날 나옹이 도를 깨닫고 다시 이 절에 들어와서 화목 4그루를 심었다.
지금도 묘적암 곳곳에는 나옹선사와 관련되는 유적과 유믈들이 남아있다. 이절은 조선후기까지 나옹으로 인하여 불교의 한 성지처럼 부각되었다.(대승사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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