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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거창] 육현신 중의 한분인 임훈과 아우 임운이 후학양성을 위해 세운 갈천서당

들꽃(野花) 2013. 9. 17. 05:00

 

[문화재답사/거창] 육현신 중의 한분인 임훈과 아우 임운이 후학양성을 위해 세운 갈천서당

 

갈천서당은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1073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5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에 있는 갈천서당은 조선 명종 때 육현신의 한 사람으로 광주목사를 지낸 갈천 임훈이 후학 양성을 위하여 그의 아우 임운과 1573년에 건립하였으며, 그 후 1878년에 후손들이 중건한 목조와가(木造瓦家) 건물이다.

 

건물 구성은 강당과 대문으로 되어 있는데,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반의 맞배지붕 홑처마이고 양측 면에 풍판(風板)을 달았다. 처마 밑에는 그 당시 사용하던 큰북의 외통이 걸려 있다. 대문은 맞배지붕 솟을대문이며 뜰에는 후손들이 세운 두 형제의 신도비(神道碑)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서당은

그 지역의 선비와 백성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사설 교육기관이다. 서당의 기원은 멀리 삼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시기는 사림파가 등장하여 향약을 보급하고 향촌 지역민의 교화를 힘쓰던 16세기 초반부터이다.

 

  서당에는 대개 7~8세 남자아이들이 입학하여 15~16세까지 공부하였는데, 주로 초 ․ 중급 정도의 유교경전을 공부하였다. 그러나 서당교육은 19세기 말에 근대 교육이 도입되면서 점차 쇠퇴하여 갔다. 

 

 

 

갈천 임훈 선생은 본관은 으진, 자는 중성, 호는 자이당 또는 고사옹, 갈천이다.

1540년(중종 35)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독서하였고, 1553년 관천에 의하여 사직서참봉이 되었다가 이듬해에 집경전참봉으로 옮겼다.

1555년 전생서참봉이 되었다가 얼마 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80세가 넘은 노부를 봉양하여 1566년 관찰사의 추천으로 효행의 정려를 받았다.

안의의 용문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갈천집』이 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효간이다.

 

 

 

 

1564년 임금이 선생 형제가 사는 마을에 정문(旌門)을 세우도록 명하였으며, 그 뒤에 임금이 경학에 밝고 행실을 수양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파격적으로 6품(品) 관직을 제수하라고 명하여, 대신(大臣)이 그 선발을 주관하여 여섯 사람을 선발하였는데 선생이 그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