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여행] 원효스님이 전생에 와 본곳임을 깨달았다는 거창 우두산의 고견사
거창 우두산의 고견사
인천에서 남으로의 떠난 여행의 둘째날
어제는 인천에서 무주로, 무주에서 거창의 위천면 주변을 둘러보고 거창읍에서 하룻밤을 유하였다.
오늘은 거창의 마지막날
거창읍내의 향교(유형문화재 제230호), 상림리 석조보살입상(보물 제378호), 거창박물관, 양평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377호), 그리고 가조면으로 넘어와 원천정, 사병리 변씨고가, 원천느티나무, 당산리 당송을 둘러보고 거창의 마지막 고견사를 찾아간다.
고견사는 우두산에 중턱에 있으며 고견사 경내에는 보물 제1700호인 고견사 동종과 유형문화재 제263호 고견사 석불이 있는 역사가 오래된 사찰이다.
고견사는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의상봉길 1049(수월리)에 주소를 두고 있으며, 신라 667년(문무왕 7) 원효와 의상대사 두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뒤의 연혁은 잘 알려진 것이 없지만, 조선시대에 숙종 임금이 하사한 『강생원』이라는 편액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비중있는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고견사에는 조선시대의 동종이 있는데 보물 제1700호로 지정되었으며 1630년(인조 8년)에 견암사 동종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동종에 기재된 견암사는 고견사와 동일한 사찰을 말하는 것이며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할 당시에 사명은 고견사였지만, 1271년(고려 원종 2년)에 고견사가 거제에 이속되면서 견암사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사찰을 운현(雲賢), 금복(金福), 종해(宗海) 세 분의 스님이 중창하면서 고견사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거창 우두산의 고견사
찾아간다.
가조면소재지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고견사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다.
오늘이 평일이라서 그런지 넓디넓은 주차장에 차량이 10여대 안팍으로 주차되어 있다.
간단히 안내판을 읽어보고 서서히 등산준비를 하고 길을 걷는다.
주차장에서 고견사까지는 약 30~4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는데 내 걸음이 어찌될지 모르겠다.
의상봉, 고견사를 가기 위해서는 좌측길로 올라간다.
우두산 의상봉 고견사
한발 한발 걸어간다.
고견사는 원효대사가 절을 창건할 때 이곳에 와 보니 전생에 와 본 곳임을 깨달았다는 데서 고견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해골바가지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스님
거창의 고견사에도 그 분의 흔적이 남아있음이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속에 살다가 자연과 벗하며 흙을 밟고 걷는 이 기분 속이 후련하다.
홀가분하다.
계곡의 물소리, 솔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 새소리 등과 함께 걷는 이내 발걸음, 그져 좋다.
어느정도 올라가니 갑자기 가파른 나무데크 길이 나오고 그 옆에 천길 낭떠러지를 연상케하는 절벽에 시원스레 물이 폭포를 이루고 떨어지고 있다. 이름하여 견암폭포라 하는 곳
아하1
맞다.
고견사의 또 다른 이름으로 견암, 견암사, 견암선사라고 하니 고견사 올라가는 길 옆에 있어 견암폭포라 하였을 것 같다.
나무데크가 상당히 높고 길다.
제법 힘이 들지만 나무사이로 폭포를 보며 오르다보니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아찔하다.
계곡 건너편의 암벽들과 소나무, 그리고 파란하늘의 뭉게구름
참으로 아름답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경치인가. 한참을 머물다 다시 고견사를 보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주차장에서 견암폭포까지는 그래도 흙길이라 할 수 있는데 견암폭포를 오르고부터는 거의 돌길이다.
돌로 길을 만들어 한발한발 조심스레 걸어야 한다.
무턱대고 걷다가는 발목을 삐기 십상이다.
작은 계곡에 쌓여져 있는 돌탑
소망을 빌기위해 하나둘 쌓았을 돌탑
만든이를 비롯해 모든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주차장에서 고견사까지 1.2km
지금 있는 곳에서 고견사까지 0.3km를 남겼으니 제법 많이 올라왔다. 여기서 잠깐 쉬어간다.
방금 올라온길
돌길이고 오르막길이다 보니 적지않이 힘이 든다.
좌측에 거무스레 보이는 것은 모노레일이다.
사람을 싫지 않고 물건들은 운반한다나.
때론 저것에 실려 올라갔으면 한다. 그리하면 쉽게 올라갈텐데 말이다.
우두산 고견사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일주문
드디어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40분 정도, 제법 힘이드는것을 보니 나의 체력을 거의 바닥수준이라고 해야하나.
기운을 차려야지.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에는 수령 1,000여년의 은행나무가 있는데, 전하기로는 신라 최치원이 짚고 온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고 한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요사채옆 좌측의 길로 조금 더 올라가야 한다.
마지막 대웅전까지 돌로 만든 계단길, 여기서도 또 나의 무릎을 고생시킨다.
고견사 주변의 울창한 숲들
시원하니 좋고 전망좋고 경내가 조용하니 무엇보다도 좋다.
보세요.
이런 길이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또 기다리고 있답니다.
우측의 돌기둥은 무엇을 하는 지 알 수 없고, 그 앞 돌계단 사이로 소나무 한 그루 우뚝 서 있어 고견사를 찾는 이의 반가이 반겨주고 있는 듯하다.
돌계단위에 출입문이 보이고 나한전의 현판도 눈에 들어온다.
출입문에서 방금 올라온 일주문과 요사채의 전경
중앙의 출입문과 좌측 뒤에 약사전이 눈에 들어온다.
그뒤 바위에는 불상이 새겨져 있는 것 같다.
고견사는 우두산에 자리한 해인사의 말사이며 원효, 의상 두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견사(古見寺)라는 이름은 원효대사가 절을 창건할 때 이곳에 와 보니 전생에 와 본 곳임을 깨달았다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지며, 견암, 견암사, 견암선사라고도 불리어 졌다.
고견사는 해인사의 창건주 순은, 이정 스님과 중창주 희랑대사가 머물다간 곳이며, 고운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가 담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 왕실에서는 고려 왕씨들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밭 100결을 하사하고 대궐의 향을 내려 해다마 2월과 10월에 수륙재를 지내게 한 원찰로도 유명하다.
대웅전앞에 있는 작은 삼층석탑
보물 제1700호로 지정된 고견사 동종
대웅전에 봉안중인 이 동종은 1630년(인조 8년)에 견암사 동종으로 제작된 것으로, 높이 97.2cm이고, 입지름이 59.7cm로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동종 가운데 그 규모가 큰 편이다.
특히 상단 연곽 사이에 부조된 불좌상, 북탑, 범자문, 위패 등이 있으며, 이중 불좌상과 불탑은 기존의 양식과 차별된 형태로 조선시대 동종에서 그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표현이다.
고견사 석불 우측에 있는 탑과 석등, 기와들의 흔적에서 고견사의 역사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3호 고견사 석불
고견사 경내에 있는 석불로 재질은 화강암이며 머리는 육계가 뚜렷한 소발형이다. 두광은 단판연화문과 연주문으로 처리되어 당시의 조형미을 나타내고 있다. 불상은 높이 220cm, 광대너비 120cm, 어깨너비 75cm이며 전체적으로 당당한 모습과 토속적인 인상을 풍긴다.
약사전과 불상이 새겨져 있는 암벽이 가을의 냄새를 풍기듯이 그 자리에 있다.
약사전
약사전에서 바라본 고견사의 전경
때론 이렇게 절의 뒷모습을 보는 것도 색다른 맛을 나타낸다.
암벽에 약간의 굴을 파서 새긴 석굴암
불상 아래에 불상을 바라보고 있는 새
오래된 절의 흔적들을 나타내는 맷돌도 보이고 절구공이도 보인다.
나한전앞 뜰에 심어져 있는 채송화
햇빛을 받고 토실토실 살이오른 채송화의 붉은 꽃이 고견사의 방문을 축하해주는 것 같다.
이제 내려가야 한다.
올라올 때는 내려갈 때를 생각하지 않고 왔지만, 그래도 내려가야 하는 시간이 되니 자연스레 나의 발걸음은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얻고 가는가.
비록 문화재사진을 찍는다고 올라왔지만 어쩌면 답답한 나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파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를 삼아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제 절을 떠난다.
어디로 가야할까?
인연따라 나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할 것인가?
답은 정하여져 있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은 그 말을 하고 싶다.
찾아가는 길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의상봉길 1049(수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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