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여행] 충효쌍수,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군한 청도김씨의 시조 김지대의 남계서원
남계서원 (南溪書院)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9호
소재지 : 경남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 361
남계서원은 1704년(숙조 30)에 고을의 유림들이 고려 중기에 평장사를 지낸 영헌공 김지대의 충효쌍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묘우의 이름을 충효사라 하였고, 강당을 쌍수당이라 하였는데 이는 김지대가 그 아버지를 대신하여 종군하면서‘충과 효를 함께 닦을 수 있다’라 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지대(1190∼1266)는 고려 고종 때 문신으로 청도 김씨의 시조이다. 고종 4년(1217)에 거란이 침입하자 병환 중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가 싸워 충과 효를 동시에 이루기도 하였다. ‘국가의 어려움은 신하의 어렴움이요, 어버이의 근심은 자식의 근심할 바이다. 어버이를 대신하여 나라에 보답한다면충과 효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충효쌍수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김지대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아들인 대안군 김은열의 8세손이자 시중 김여흥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초명은 중룡이었으며, 풍채가 훌륭하고 시와 문장에 뛰어났다고 고려사에 적혀있다. 그는 문무를 겸한 명신으로 고려의 8대 시인이자 다도로서도 명성이 있었다고 한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서 헐려져 폐허가 되었으나 1907년(순종 1)에 낡은 강당을 철거하고 세로지었다. 1954년에 다시 강당을 철거하고 지금의 쌍수당을 지었다. 1986년부터 서원 복원을 추진하여 1989년에 묘우를 완공하고, 1990년에 김지대의 오세손인 오산군 한귀와 칠세손인 호강공 정을 함께 배양하였다.
건물은 묘우, 신문, 강당인 쌍수당, 동제인 원청제와 서제인 강의제, 정문인 숭덕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너무 늦게 왔나 서원의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다.
담장너머로 들여다 본 남계서원
남계서원의 현판이 보인다.
왼쪽길로 올라가면서 들여다 본 남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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