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여행] 옥정호의 붕어섬을 바라보며 수몰로 인한 아픔을 간직한 양요정과 망향의 탑
양요정 (兩樂亭)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37호
소재지 : 전북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 490-3
옥정호의 붕어섬
임실여행에서 옥정호를 빼놓으면 뭔가 빠진듯한 허전한 느낌을 받는다.
붕어섬은 물안개 자욱히 깔린 붕어섬의 붕어를 사진에 담으려는 사진사들의 노력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섬이다.
그래서 나그네도 작년 여름 옥정호의 붕어를 만나기 위해 국사봉의 전망대를 찾은 적이 있었다. 물론 사진사들의 열정에 미치지 못하지만 옥정호의 붕어를 만나기 위해 그 높디 높은 전망대까지 올라갔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임실여행에서 다시 옥정호를 찾았다. 그러나 옥정호의 나드리에서 많은 고심을 하게 된다. 다름이 아니라 일행을 두 편으로 나누어서 한팀은 국사봉 전망대에 올라 옥정호의 붕어섬을 보는 것이고, 다른 팀은 붕어섬 너머에 있는 양요정과 망향의 탑을 구경하는 것으로 팀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옥정호의 붕어섬은 하늘이 도와줘야 하기에 아침까지 좋았던 임실의 하늘이 오후들어 짙은 구름이 깔려있기에 붕어섬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양요정과 망향의 탑을 보기로 결정한다.
양요정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부터 선조(재위 1567∼1608) 때까지 살았던 성균진사 양요당 최응숙이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이곳으로 낙향한 후 지은 정자이고 망향의 탑은 1965년 옥정호를 만들어서 수몰된 수몰민들의 애환을 담아 만든 탑이다.
(망향의 탑과 오른쪽 숲속에 살짝 보이는 양요정)
녹조가 끼여 있는 옥정호와 하얀 색의 망향의 탑이 눈에 들어온다.
맑은 물이 있어야 할 곳에 누르스름한 녹조가 끼이다니, 더군다나 옥정호는 상수원으로 사용하는데 안따깝기 그지없다.
농작물이 익어가는 가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들녘길을 걸으며 양요정과 망향의 탑을 찾아간다.
가을이 많이도 온 것 같다.
조금 있으면 단풍놀이 가자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왼쪽 소나무 아래로 가면 양요정이고, 오른쪽 자갈깔린 길로 가면 망향의 탑이 나온다.
먼저 양요정을 들린다.
양요정은
조선 중종때부터 선조때까지 살았던 성균진사 양요당 최응숙이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이곳으로 낙향한 후 지은 정자이며 여기서 양요는 최응숙의 호이다.
양요(兩樂)는 맹자(孟子)의 “인자(仁者)는 요산(樂山)이요 지자(智者)는 요수(樂水) ”라는 글에서 '요(樂)' 2자(字)를 따 온 것이다. (어진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라는 말이다.)
강물이 산을 휘감고 흐르다가 폭포를 이루는 정자 주위의 뛰어난 경치를 보기 위해 수 많은 풍류객들이 찾아와 시(時)와 기(記)를 글로서 남긴 편액(扁額)이 14개 걸려있다.
사회를 피해 낙향하여 지은 것으로 약 450년 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건물을 지은 기록에 따르면 지금 있는 자리보다 훨씬 아래쪽에 세웠으나, 1965년 옥정호 공사로 인하여 지금 있는 자리에 옮겨 지었다고 한다. 1878년과 1923년에 지붕 ·서까리 등을 중수한 기록이 있다.
최응숙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떠났을 때 왕을 호위하였다고 한다. 최응숙은 그 공로로 선조 호성공신(선조의 의주파천을 수행한 공) 3등 공신에 이름을 올렸다.
아마도 그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 같다.
최응숙이 낙향한 후 낚시를 즐기며 여생을 보내는 모습을 그려낸 것 같다.
양요정 건물은
정면 3칸 · 측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한 가운데에 1칸 규모의 방이 있고, 그 주위에 툇마루를 놓았다. 정자 전체에는 여러 가지 색으로 무늬를 놓아 그리거나 칠한 단청과 벽화가 있다.
양요정에서 바라본 망향의 탑
섬진강댐은 1961년부터 5년간 축조되었으며 수몰민 2,786세대, 수몰민 19,851명, 수몰 면적은 1,455 ha에 이르러 농업용수, 생활식수로 사용되왔던 댐이다.
사라진 흔적 가슴에 새기며
국사봉 아래 운암강 흘러 흘러 이룬 터전
하늘 아래 구름과 땅 위의 바위가 어우러진 雲巖
산자락엔 실한 열매 가득하고
조상님들 얼고 혼이 서린 골짝마다
오순도순 들어앉은 마을들
수천 년을 살았던 땅 수만 년을 이어갈 땅
몸 붙여 살던 집 마음 바쳐 짓던 문전옥답
속수무책 차오르는 물속에 잠기는데
희로애락 함께 하던 이웃들과 뿔뿔이 흩어지는데
설움은 삼켜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멈출 수 없었다
삶의 터를 잃고 떠나야만 했던 애달픈 운암사람들
안타깝고 눈물겹던 그날들은 시간 속에 흘러간다
그림 같던 고향! 꿈결 같은 추억!
그리움 담아 잃은 듯 새로이 태어나 여기 있다
운암강 그러안아 옥정호 탄생하고
외안날 물안개 피어올라 선경을 이루었다
나래산 줄기 따라 오색구름 날아드는데
지난날의 서러움은 푸른 물에 묻어두자
불현듯 찾아와 속마음 풀어 놓을 수 있는 고향
실향의 아픔도 망향의 애틋함도 고이 접어가면서
한 세월과 함께 우리들의 이야기는
온 산천에 새겨져 유구한 세월 이어가리라
- 김춘자 -
망향
생명의 물이되어
어떤이에게는 수몰이라는 아픔을 주고
어떤이에게는 상수원으로 식수를 선사하고, 어떤이에게는 농업용수로 농작물의 생수가 되고
참 아이러니 한 일이지만
그들의 희생이 있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것이다.
망향의 탑
망향의 탑 조형물 설명
- 18개의 화강석은 18개 수몰지역 마을을 상징하고
- 자연석 조각으로 담수된 옥정호를 단순조형화하였다.
- 좌우기둥은 충효의 고장 임실군의 기상을 의미하며
- 옥돌 물방울 조각으로 주옥같은 생명의 물을 상징하고
- 구름조각으로 운암지역의 옛 정취를 표출하며
- 솟대조각으로 운암지역 수몰민 19.851명의 소망을 조형화 하였다고 한다.
망향의 탑에서 바라보는 옥정호
옥정호는 전북 임실군과 정읍시에 걸쳐 있으며, 섬진강 상류수계에 있는 인공호수이다.
운암호라 불리기도 하며 총 저수용량은 4억 6,600만톤이며 면적은 16㎢이나 만수위 때는 26.51㎢에 이른다.
현재 수위를 5m를 높이려 하고 있다고 한다.
옥정호의 유래를 살펴보면
섬진강댐의 근처에 옥정리(玉井里)가 있다. 조선 중기에 한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머지않아 맑은 호수, 즉 옥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옥정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옛날 운암호 또는 섬진호로 부르던 것을 '옥정호'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옥정호는 1965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으로 만들어진 저수지이다.
고요한 옥정호에 작은 통통배가 들어오며 멋진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옥정호가 너무나 고요하다.
국사봉 전망대 아래에 있는 작은 전망대
이곳에서 옥정호를 볼 수 있지만 붕어섬의 전체 모습은 볼 수 없어 아쉽다.
그래서 아래 사진을 준비했다.
작년 2012년 8월 12일 가족여행을 왔을 때 전망대에 올라 붕어섬을 찍은 사진이다.
찾아가는 길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 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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