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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여해] 용이 돌아오는 절, 회룡사의 관음보살에 작은 소망을 빌어본다.

들꽃(野花) 2014. 1. 4. 06:00

[절집여해] 용이 돌아오는 절, 회룡사의 관음보살에 작은 소망을 빌어본다.

 

 

의정부의 회룡사

회룡(回龍), 한자를 풀어보면 '용이 돌아온다'는 뜻으로 조선 개국과 관련된 내용이 전하는 사찰이다.

전국의 내노라하는 명찰들을 찾아다니지만 수도권에 있는 사찰은 발걸음이 쉽게 허락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의정부 1박2일 여행길에 도봉산자락에 있는 회룡사를 찾는 기회가 생겼다.

회룡사로 가는 길

포장된 길에 잔설이 남아있어 길은 미끄럽고 골바람이 살살부니 내딛는 걸음걸음 조심스럽다.

혹여나 넘어지면 어쩌나

조심스런 걸음을 옮기는데 완전무장한 산꾼들은 씩씩하게도 잘 걷는다. 잰걸음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사진을 찍고 풍경도 구경하며 건는 걸음 영 속도가 나지 않는다.

 

도봉산 깊은 골에 있는 회룡사

눈 내린 산사의 모습을 그려본다.

 

 

 

 

 

회룡, 용이 돌아온다하는 데 용은 누구인가?

회룡사의 용은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를 말한다고 한다.

 

1881년(고종 18)에 우송(友松)스님이 쓴 「회룡사중창기(回龍寺重倉記)」에는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1398년(태조 7) 태조가 함흥에서 한양의 궁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왕사 무학을 방문했는데, 무학은 1394년에 정도전(鄭道傳)의 미움과 시기를 받아 이곳 토굴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중 태조의 방문을 받은 것이다. 태조는 여기서 며칠을 머물렀고, 이에 절을 짓고는 임금이 환궁한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회룡(回龍)이라 했던 것이다.

 

 

한편, 「회룡사중수기」에 전하는 이야기 외에도 절이름의 기원과 관련된 무학과 태조의 이야기가 전한다.

하나는 함흥에 가 있던 태조가 1403년(태종 3)에 환궁한 뒤 이곳에 있던 무학을 찾아왔으므로 무학대사가 태조의 환궁을 기뻐하여 회룡사라 했다는 이야기이다.

또 하나는 1384년(우왕 10)에 이곳 도봉산에서 이성계가 무학과 함께 창업성취를 위한 기도를 했는데, 이성계는 지금의 석굴암에서, 무학은 산등성이 가까이 있는 무학굴에서 각각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 뒤 이성계가 동북면병마사라는 직책을 맡고 요동으로 출전하자 무학은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후 그의 영달을 축원했는데, 그 뒤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무학을 찾아와서 절 이름을 회룡사로 고쳤다고 한다. (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 자료 참조)

 

 

 

 

하얗게 온세상을 덮었던 눈도 따뜻한 태양의 열기에 의해 양지바른곳에서는 녹아가지만 그늘진 곳에 있는 눈은 복스럽게 쌓여있다.

복스럽게 쌓여있는 눈 사이로 계곡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내 마음을 씻어가듯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회룡사 가는 길

걷기 시작을 했을까하는데 오래된 나무 한그루가 사람들의 호기심속에 의젓하니 서 있다.

저기 저 자리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인내하고 서 있었을까?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회화나무로 수령이 약 420년 되었다고 한다.

나무둘레기 4.6m, 높이가 무려 25m나 되는 거대한 회화나무다.

저렇게 크다보니 이야기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서두에서 말했지만 회룡사는 무학대사와 이성계가 앞날을 의논한 곳으로 이름나있다. 훗날 이성계가 왕에 오르자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이길을 지나던 도인이 쉴 곳이 없는 것을 보고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 수호신목이라 여겨 봄, 가을에 제를 올렸다고 전한다.

 

 

 

탐방지원센터

 

 

북한산국립공원

회룡사까지는 1.2km 그리 멀지 않은 길인데 길이 미끄럽다보니 조심스럽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속의 자연공원으로 수려한 자연경관과 문화자원을 온전히 보전하고 쾌적한 탐밤서비스 제공을 위하여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걸쳐 약79.916㎢의 면적으로 우이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북한산, 북쪽의 도봉산 지역으로 구분되며 수도권 어디에서도 접근이 용이한 교통 체계와 거대한 배후도시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머리위를 가로지르는 외곡순환고속도로가 도봉산의 아름다움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 좀 답답한 마음이 든다.

 

 

 

길을 보세요.

잔설이 녹아가는 질퍽하고 미끄러움이 넘쳐나는 길을 조심스레 한발한발 걸어간다.

 

 

 

 

가는 길 중간중간에 거대한 바위가 노출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북한산국립공원은 평지에서 우뚝 솟은 급경사의 바위산(백운대 836.5m, 자운봉 739.5m)으로 1억 5천 만년 전 중생대 쥐라기 때 만들어진 화강암 바위들이 오랜 동안 풍화와 침식작용을 통해 깎여나가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이 생겼다고 한다.

 

 

 

 

도봉산의 봉우리중 사패산은 백두대간 추가령지구대에서 뻗은 한북정맥으로 '사패산'은 조선시대 선조의 여섯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에게 시집 올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회룡계곡, 안골계곡, 송추계곡, 원각사계곡을 통해서 사패산 정상에 오를 수 있으며 사패능선, 포대능선을 통해 도봉산으로 연결된다.

 

 

 

 

회룡사 가는 길 조금 못미쳐 있는 약수터

이 추운날 시원한 약수한잔 마시고 가시죠.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고드름이 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회룡사를 오면서 묘한 느낌을 받는다.

아니 나의 기억력에 한계를 느꼈다고 해야하나.

언젠가 왔던 기억이 나는 데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회룡사를 보고 되돌아가는 내내 내 머리속을 혼란에 빠지가 한 대목이다.

 

앞에서 설명한 사패산이 문제인 것이다.

결론은 오래전에 회사에서 단체로 사패산을 왔던 것이었다. 인천에서 사패산을 가려고 회룡역을 통해 올라갔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

나의 뇌리여!

정신차리게나.

정신차려!!!!!

 

ㅎㅎ

뭐 이런맛에 사는 것이 인생아니겠습니까!

 

 

 

 

 

 

회룡사의 입구에 도착했다.

 

 

 

우측 산 중턱에 부도전에 눈에 들어오고

 

 

 

계곡에 석축을 쌓아 놓은 모습과 녹지 않은 눈을 한아름 머금은 담장의 모습이 회룡사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것 같아 느낌이 좋다.

절!

올라올 때 떠오르는 단어

왜 깊은 산속에 있고, 왜 높은 곳에 있어 이렇게 나의 다리를 고생시키냐며 투정아닌 투정을 하며 오르지만

사찰에 도착하였을 때의 이런 멋진 풍경과 조용한 산사의 모습에 언제 그런마음을 먹었냐하며 사그러진다.

 

 

 

회룡사는 북한산의 대표적인 비구니 사찰로 관음도량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다리를 건너 취선당과 설화당을 지나면 범종각 뒤쪽으로 관음보살입상과 오층석탑, 그리고 대웅전, 극락보전, 삼성각이 보인다.

석조관음보살상은 1987년 조성하였는데 북한산을 오르는 등산객을 위해 봉안하였다고 한다. 등산화를 벗고 법당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고자 보살상을 세워 지나는 도중에 가벼이 예를 올릴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갈증이 났을 때 찾는 감로수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범종각 아래에 있다.

그런데 회룡사의 감로수는 특별하다. 범종각 아래의 커다란 석조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이 석조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7호로 지정된 '의정부 회룡사 석조'이다.

 

 

 

문화재청의 자료를 보면

돌로 만든 수조를 석조라 부르는데 물을 저장하여 사용하는 석조는 예로부터 사찰의 필수품으로 총길이가 244cm이고 폭이 153cm, 깊이가 67cm, 돌의두께가 21cm나 되는 이 거대한 장방형석조는 서울 근교에서는 가장 큰편에 속한다고 할수 있다.

전체적으로 잘 치석하여 표면이 매끈하게 처리되어 있고, 바닥으로 내려가면서 완만하게 내곡을 이루어 시작적으로 안정되게 보이고 있다. 물이 흘러내리는 주구도 끝을 부드럽게 처리하였고 물이 흘러내리는 홈도 매근하게 만들어 석조의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다.

 

 

 

시원한 감로수 한잔 드시고 가시죠.

 

 

 

 

대웅전, 극락보전 앞에 있는 오층석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6호 의정부 회룡사 오층석탑

 

석탑은 단층기단위에 오층 탑신을 올린 높이 3.3m 규모의 일반형 석탑이다. 지대석과 기단의 상면에는 단엽 복판의 연화문을 조각했고, 면석의 각 면에는 장방형의 구획을 나눈 후 모두 안상을 새겼다.

1층부터 3층까지는 탑신석과 옥개석을 각각 별개의 석재로 4층 이상은 탑신과 옥개석을 동일석(同一石)으로 조성했다. 탑신석의 각 면은 직사각형의 액(額)으로 삼등분했으며, 옥개석의 하면에는 각형 3단의 옥개받침을 조출했다. 회룡사는 무학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조선 태조의 회가(回駕)를 기념해 중창이 이루어지고,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석탑은 왕실의 발원(發願)으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15세기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석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대웅전

1971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불단 중앙에 석조로 조성한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좌상과 대세지보살좌상을 봉안하였다.

탱화로는 삼존불상 뒤의 아미타후불탱과 함께 신중탱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 신중탱은 1883년에 조성된 탱화로 절에 있는 불화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8호 의정부 회룡사 신중도

신중도는 가로 219.5cm, 세로 176cm나 되는 꽤 큰폭의 그림이다. 앞줄 중앙에 위태천, 뒷줄 좌우에 제석, 범천이 배치되어 있고, 그 주위로 제석, 범천의 권속과 팔부중이 배치된 꽉 찬 화면도구를 보여주고 잇다. 형태는 늘씬하면서도 경직된 면이 보이는 신체와 19세기 말에 유행하던 특유의 얼굴을 나타내고 있다.

신중들의 옷은 주로 분홍색에 가가운 옅은 붉은 색으로 되어 있는데 군청과 녹색들이 약간씩 가미된 19세기 후반시 채색을 칠해 당대 신중탱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서울 근교의 불화 양식이 잘 표현 되어 있는 이 신중도는 서울 동작 지장사 신중도와 친연성이 짙은것으로 당대의 신중도 가운데 대표적인 예로 평가될 수 있다.

 

 

대웅전 내부

 

 

 

극락보전

1996년에 건립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대웅전 좌측으로 삼성각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차가운 날 찾은 회룡사

나그네의 걸음 걸음

시원스레 불어오는 도봉산의 부드러움 바람을 나그네의 가슴속에 담아간다.

 

요즘

세상사 시끄럽고, 살기 힘들다지만 하얀 눈을 벗삼고, 깊은 산속에 자리한 산사의 넉넉한 마음에 깊은 시름 내려놓고 간다.

 

 

 

 

 

절마당이 내집 마당인냥

뛰어노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에 나그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찾아가는 곳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