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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여행] 천년의 미소가 살아숨쉬는 구례 지리산 화엄사

들꽃(野花) 2015. 5. 16. 00:45

[구례여행] 천년의 미소가 살아숨쉬는 구례 지리산 화엄사

 

구례 지리산 화엄사

화엄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기억은 한참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1985년 대학 4년때 친구와 둘이서 배낭을 둘러메고 조치원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구례까지 오고,  화엄사를 거쳐 노고단으로 올라가 지리산 천왕봉까지 2박3일간 종주를 하였다. 당시에는 지리산 종주 도로가 없어 화엄사를 거쳐야만 노고단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화엄사를 지나가야 한다. 지금이야 노고단까지 차량이 올라가니 거기서 출발하여 지리산을 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화엄사를 거쳐야 하기에 이곳에 왔었다는 옛 기억만이 남아있을뿐이다.

얼마전에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쌍계사 등 구례의 섬진강을 따라 1박 2일간의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이 세번째 방문이 된 셈이다.

문화재를 찾아 전국을 다니기에 문화재 위주로 화엄사를 둘러보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옛 기억을 더듬으며 화엄사를 둘러본다.

 

화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19교구본사 지리산 대 화엄사로 화엄사의 창건은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스님이신 연기조사께서 대웅상적광전과 해회당을 짓으며 화엄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화엄사에 3,000여면의 스님들이 있는 대사찰이었다고 전한다.

 

 

 

'지리산 화엄사'의 현판을 달고 있는 일주문

이 문을 들어서면 오직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품에 안기게 되는 것이다.

 

 

 

 

벽암국일도대선사비

화엄사 중창의 주역인 벽암각성(1575~1660)의 탑비이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하여 크게 활약하였고, 승군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축성하는 등 조선후기 사회에서 불교계의 위상을 높이는데 공헌하였다. 또한 전란 후에는 화엄사를 비롯하여 해인사, 법주사 등의 여러 사찰의 중수를 주도하여 조선후기 불교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금강문

금강역사는 절을 수호하는 신장으로 2구 한쌍이며, 인왕이라고도 불리운다. 인왕상의 옆에는 문수와 보현 보살이 동자의 모습으로 각각 사자와 코끼리 위에 앉아있다.

 

 

 

 

 

 

 

천왕문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는 네명의 대천왕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고대 인도에서는 제석천이 만물을 창조한 신이라하여 존경을 받았다. 제석천왕은 사람이 착한일을 하면 복을 주고, 악한짓을 하면 벌을 주는 등 인간을 다스리고 감독하기 때문에 그를 도와주는 신으로 사천왕을 두어서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

 

 

 

 

비파를 들고 있는 지국천왕은 수미산의 동방을 수호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며 나라를 잘 다스리고 지키는 천왕이며

칼을 잡고 있는 중장천왕은 수미산의 남방을 수호하고 항상 사람을 관찰하고 더욱 길고 넓게 중생의 이익을 많게 해주는 천왕이다.

 

 

 

 

용을 잡고 있는 광목천왕은 수미산의 서방을 수호하고 위엄으로 나쁜 것을 물리치고 넓고 큰 눈으로 국토를 바르게 지키고 중생을 이익되게 해주는 천왕이다.

보천을 들고 있는 다문천왕은 수미산의 북방을 수호하고 재물과 복덕의 부귀를 맡고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고 설법을 많이 들으며 불법을 옹호하는 천왕이다.

 

 

 

화엄사 법고루

사물은 중생들을 제도하는 네가지 물건이라고 한다.

법고는 축생(짐승)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치는 것이며 악기로서의 북이 아니라 법요에 쓰는 북이라는 뜻에서 법고라 한다.

 

운판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 허공을 헤매이는 영혼 등 허공계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치는 것으로 청동으로 된 판을 구름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운판이라고 한다.

 

목어는 물속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치는 것으로 나무를 잉어모양으로 만들어 그 속을 비게 파내어 두두리면 소리가 나나.

 

범종은 육도중생을 제도하기 위한것으로 새벽에 28번을 치는 것은 천상28천(욕계6천, 색계18천, 무색계4천)이며, 저녁에 33번 치는 것은 28천과 오도(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합해서 33이 된다.

 

 

 

 

당간지주

 

 

 

화엄사보제루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제 제49호

보제루는 부처님의 법문을 들려주어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는 법요의식 장소이다.

 

 

 

 

 

 

 

 

 

 

국보 제35호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은 기단에 주악천인과 공양상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고, 기단 갑석위에는 연꽃 봉오리를 든 비구니 상이 서 있다. 그 위체 1층 몸돌에는 문의 좌우에 인왕상과 사천왕상, 법천상과 제석천상이 새겨져 있다.

탑을 향해 석등을 머리에 이고 앉아 있는 승려상은 찻잔을 들어 공양하는 모습이다. 이곳은 효대라고도 불리는데,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가 어머니를 위해 탑을 세웠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

각황전은 본래 이 자라에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을 의상조사깨 조성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그뒤 숙종 25년 ~ 28년(1699~1703)에 중건되었다. 부처님을 깨달은 왕(성인중에 성인)이라는 뜻과 숙종 임금에게 불교 사상을 일깨워 주었다는 뜻으로 각황전이라고 한다.

 

 

 

 

국보 제12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보물 제300호 화엄사 원통전전사자탑

이 탑은 절 안의 원통전 앞에 서 있는 독특한 석탑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절에서는 보통 노주(露柱)라고 부르는데,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불사리를 모셔 놓은 것이라고도 하며,

불가의 공양대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뿐이다.

 

4사자 감로탑이라고 불리는 이 탑은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조성한 것이며

4사자의 표정은 인간의 감정인 희노애락(기쁨, 성냄, 슬픔, 즐거움)을 표현한 것으로 사람들의 수 많은 번뇌를 뜻하며,

사자의 표현은 부처님의 말씀, 부처님의 법문을 사자후 또는 감로법,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석탑은 사람들의 수많은 번뇌를 부처님의 청정한 지혜를 얻게하여 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나

연화장세계로 이끌어 주는 감리로운 탑이라 할 수 있다.

 

 

 

 

 

 

 

 

 

 

보물 제299호 화엄사 대웅전

화엄사에서 가장 오래된 법당으로 대웅전 편액은 인조 14년에 의창군이 쓴 글씨이다.

 

 

 

 

 

보물 제1548호 구례화엄사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대웅전 불단 중앙에 모신 불상으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며, 수인은 지권인으로 신라시대의 전통적인 비로자나 수인과 달리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싼 모양을 짓고 있다. 오른손은 불계, 왼손은 중생계를 표하며 이 결인으로서 중생과 부처님이 둘이 아니며, 번뇌와 깨달음이 일체인 뜻을 나타낸다.

 

비로자나불 왼쪽에 모신 불상인 원만보신노사나불은 두 손을 들어 설법인을 짓고 있는데, 보관을 머리에 쓴 보살상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비로자나불 오른쪽에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을 무릎위에 두고, 왼손은 엄지를 중지에 대고 왼쪽 무릎위에 올려놓고 있는 이 수인은 항마촉지인으로서 악마를 항복시키는 인상이며 부처님께서 성도한 모습이라고 한다.

 

목조비로자삼신불좌상 뒤에 있는 탱화는 보물 제1463호 대웅전 삼심불탱으로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구층암으로 가는 길

 

 

 

 

화엄사 구층암

구층암에는 작은 불상 1,000구가 봉안된 천불보전과 수세전, 그리고 두 채의 요사채가 있다.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된 화엄사 구층암 석등

 

 

 

 

석등의 높이는 2.43m이며, 하대석과 간석, 상대석, 화사석, 옥개석 및 상륜을 모두 갖추고 있다.

 

 

 

 

구층암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승방에 있는 모과나무 기둥이다. 이 기둥은 인간의 손끝이 전혀 닿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기둥은 나뭇가지의 흔적, 나무의 결과 옹이까지도 그대로 드러낸다.

 

 

 

 

 

작은 불상 1,000구가 봉안된 천불보전

 

 

 

천불보전의 지붕 밑에는 민화풍의 거북이와 토끼 조각상이 있는데 이것을 토끼와 거북이 설화를 묘사하여 조각했다고 전한다.

 

 

 

보물 제299호 화엄사 대웅전

 

 

 

보물 제133호 화엄사 서오층 석탑과 각황전

 

 

 

보물 제132호 화엄사 동오층석탑과 보물 제133호 화엄사 서오층석탑

 

 

 

보물 제132호 화엄사 동오층석탑

화엄사 대웅전 앞에는 동서로 쌍탑이 있는데 그중 동쪽에 있는 탑으로 서탑이 조각과 장식이 화려한 반면 동탑은 아무러 장식이 없다.

 

오층은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 보살계, 불계를 표현하고, 장식과 꾸밈이 없음은 청정한 마음을 표현하며, 단층기단은 일승법을 뜻하니 이 탑의 사상은 부처님과 보살님과 사람들의 성품은 둥글고 원만하여 차별이 없고 꾸밈이 없으며, 평등한 마음의 세계가 곧 화엄세계요, 연화장세계라는 것을 증명하는 탑이다.

 

 

 

보물 제133호 화엄사 서오층석탑

탑의 형태는 2층 기단에 5층의 탑신을 세운 것으로 아래층 각 기단 각 면에는 안상속에 12지신상을 방향에 따라 배치하였고, 위층 기단은 각 면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본써 새겼으며, 나뉜 두 면에는 8부신중을 조각하였다.

1층 몸돌 4면에는 4천왕상을 조각 배치되어 있다. 특히 아래층 기단의 12지신상은 석탑에서 흔치 않은 예이다.

 

 

 

 

 

 

 

 

천연기념물 제38호 화엄사 올벚나무

올벚나무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다른 벚나무보다 일찍 꽃이 피기 때문에 올벚나무라고 부른다.

화엄사의 올벚나무는 나이가 약 3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m, 뿌리부분 둘레 4.2m이다.

병자호란 이후 인조는 오랑케에게 짓밟혔던 기억을 되새기며 전쟁에 대비하고자 활을 만드는데 쓰이는

올벚나무를 많이 심게 했다. 당시 화엄사의 벽암스님도 그 뜻에 찬성하여 주변에 올벚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그중의 한그루가 살아남은 것이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6호 남악사

지리산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다.

지리산은 삼국시대부터 5악 중 하나인 남악으로 신성하게 여기는 산이다. 신라 때는 천왕봉에서 고려 때는 노고단에서 산신제를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부터는 한양에서 파견된 제관에 의해 남악사에서 제사를 지냈다.

 

 

 

찾아가는 곳

지리산 화엄사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