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의 길,맛,멋따라♣/절집 여행

[여주여행] 남한강을 벗삼아 천년을 이어온 천년고찰 여주 신륵사

들꽃(野花) 2015. 5. 17. 00:01

[여주여행] 남한강을 벗삼아 천년을 이어온 천년고찰 여주 신륵사

 

천년고찰 여주 신륵사

남한강을 벗삼아 천년을 이어온 신륵사

 

제27회 여주도자기축제

여주에는 지금 여주의 도자기를 세계에 널리알리는 2015 경기도자 세계도자비엔날레와 제27회 여주도자기축제가 열리고 있다. 여주도자기축제는 지난 4월 24일부터 5월 17일까지 열리고 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여주로 떠난 1박2일의 여행에서 먼저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을 먼저 둘러보고, 제27회 여주도자기축제를 참가하였다. 도자기축제에서 여주의 도자기에 대한 자세히 알아보는 좋은 기회였다. 그중 제4회 전국도자접시깨기 대회에서 2등을 하여 도자기교환권 20만원을 받는것이 기억에 남는다.

여주도자세상에서 열리는 축제를 보고 강변에 있는 신륵사를 찾아간다.

따뜻함을 느껴지는 봄날, 강변에는 수상스키와 유람선을 타는 사람들이 즐겁게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주 신륵사는

여주시 북내면 천송리 봉미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로 신라 진평왕 때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한적하니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신륵사

 

절은 그래서 좋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곳이면서도 왠지 찾아가고픈 곳

그래서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약속을 하고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왠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혼자 조용히

아님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찾아가는 곳

그곳이 절이어서 좋다.

 

 

 

 

예로부터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확실치 않다.

 

 

 

여주 신륵사의 앞

남한강변에 유유히 떠 있는 황포돛배를 타러 가는 길

 

 

 

 

 

부처님오신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초록을 머금는 나무에는 등이 달려있다.

 

 

 

고요함고 운치가 넘쳐나는 신륵사

옛날부터 여주의 명소로 알려져 있는 신륵사

 

 

 

신륵사는 원효대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하는 데

어느 날 원효대사의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가람이 설 곳이라고 일러준 후 사라지니, 그 말에ㅔ 따라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원효대사가 7일 동안 기도를 올리고 정성을 드리니 9마리의 용이 그 연못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한 뒤 그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륵사라는 절 이름에 관해 2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고려 우왕 때 여주에서 신륵사에 이르는 마암이라는 바위 부근에서 용마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나옹선사가 신시한 굴레를 가지고 그 말을 다스렸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이를 사람들이 붙잡을 수 없었는데, 이때 인당대사가 나서서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제압하였다하여 신력의 신(神)과 제압의 뜻인 륵(勒)을 합쳐 신륵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원효대사의 9마리 용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는 의미하는 구룡루

 

 

 

 

 

 

 

 

경기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28호 신륵사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신 사찰의 중심전각이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으로 죽은 이의 극락왕생과 함께 중생들의 수명장수와 안락을 도와주시는 분이다.

 

 

 

 

보물 제225호 다층석탑

신륵사 극락보전 앞에 있는 다층 석탑은 흰 대리석을 사용한 특이한 예로 조형감각이 매우 뛰어나고 우아한 석탑이다. 현재 탑의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정확한 층수를 알 수 없으나 탑의 아래 부분에 새겨진 용과 구름 문양의 세부 조각은 우수한 기량을 보이고 있다.

이 탑은 신라나 고려시대에 성행한 석탑의 조형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그세부양식에서는 이전 시대의 것과는 다른 조형감각을 보이고 있다. 이 탑은 영릉의 원찰로 지정되었던 성종3년(1472) 중창 시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1791호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2010년(불기 2554) 극락보전 해체보수 중 불단 아래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청동불상 3점과 아미타부처님(보물 1791호) 복장 발원문

 

 

 

 

 

보물 제180호 - 신륵사 조사당

조사당은 신륵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지공, 나옹, 무학 3화상의 덕을 기리고 법력을 숭모하기 위해 영정을 모셔놓은 곳이다. 3화상은 서로간에 관계가 돈독했던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고려말 기울어 가는 불교계에 한 가닥 빛이 되었던 스님들이다. 조사당 내부에는 중앙에 지공,  그리고 좌우에 무학과 나옹스님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으며, 중앙 지공화상의 영정 앞에는 목조롤 된 나옹스님의 독존을 안치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인 조사당 좌측에 있는 향나무이다.

 

 

 

 

 

 

 

 

 

 

보물 제229호 보제존자 석종비

보제존자 나옹의 부도인 석종 뒤편에는 나옹화상이 밀양의 영원사로 가는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한 후 정골사리를 봉안한 부도를 조성한 내용을 기로한 묘비이다.

목은 이색이 글을 짓고 한수가 글을 쓰고 이인중이 각을 한 이 비문은 단정한 해서체로 기록되어 있다.

 

 

 

 

 

보물 제228호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신륵사의 조사당 뒤의 숲위로 올라가면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보제존자 나옹스님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이곳은 오대산 줄기가 연방산, 덕고산, 공작산, 오음산, 부동산, 묵방산, 고달산, 우두산을 거쳐 여강에 꼬리를 담그는 봉미산 주맥이 정기를 모아 고개를 들고 있는 명당자리로 감여술, 즉 지리학에 정통하였다는 무학대사가 스승의 묘자리로 삼은 것이다.

 

나옹선사 입적 3년 뒤인 1379년에 건립된 부도는 종모양을 닮았다하여 석종이라 하였다.

넓은 기단의 전면과 측면에는 모두 계단을 만들고 기단은 여러 개의 석재로 쌓아 올려 그 중앙에 부도를 안치하였는데 이러한 형태는 통도사나 금산사의 계단사리탑과 유사하다.

 

탑신은 종 모양으로 표면에 조각을 하지 않은 중후한 멋을 자아내며 탑의 정상부분에는 화염문을 본따 만든 보주가 얹혀있다.

 

 

 

 

보물 제231호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앞 석등

보제존자 석종 바로 앞에 있는 석등으로 석종부도를 장엄하기 위한 공양구이다. 사찰에서 석등을 밝히는 이유는 중생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 화강암이 주재료로 사용되었고, 화사석은 대리석재를 사용하여 조각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단순화되고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석종형부도에 비해 석등은 섬세하고 화려한 느낌을 풍기고 있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형적인 8각형 석등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세부적으로 다양한 변형을 모색하여 화려하고 장식적인 면이 강조된 고려말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보물 제226호 신륵사 다층전탑

신륵사 경내의 동남쪽 강가에 세워진 전탑으로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유일한 전탑이다. 전탑이란 벽돌을 구워 탑을 쌓은 것으로 주로 중국의 탑에서 볼 수 있다.

벽돌로 된 탑이 있다는 의미로 신륵사는 예로부터 벽절이라고 불리었다.

 

강 상류의 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절벽 아래부분이 강물이 매우 거세었다고 전하므로 강 절벽에 건축된 탑은 강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등대와 같은 구실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찰의 중심 구역이 아닌 사찰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별개의 장소에 탑을 건립한 것은 신라말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물 제230호 대장각기비

대장각기비는 고려 말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의 문도와 함께 대장경을 인출하고 대장각을 지어 봉안한 사싱를 기록한 비문이다.

 

 

 

 

 

 

 

일반적으로 사찰들은 깊숙한 산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에 비해 신륵사는 푸른 물줄기와 드넓은 모랫벌, 그리고 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여주팔경의 첫번째가 신륵사에서 울리는 저녁종소리 인 것을보면 여주의 신륵사는 역사와 아름다운 경관으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 같다.

 

걷기 힘든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한걸음 한걸음 걸으시는 부부의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남한강위를 두둥실 떠다니는 황포돛배

그래서인지 멀리서 황포돛배를 바라보는 이 맛이 있어 좋다.

 

 

 

 

찾아가는 곳

여주 신륵사

주소: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천송동)

전화 : 031 - 885 -2505

홈페이지 : http://www.silleuks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