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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여행] '도주'라 불렸던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 도주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2호

들꽃(野花) 2015. 3. 5. 04:43

[청도여행] '도주'라 불렸던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 도주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2호

 

도주관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2호

 

도주관

조선시대에는 청도군을 '도주'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청도군의 객사를 '도주관'이라 부른다.

객사(客舍)란?

객관(客館)이라고도 하며 외국 사신이 내왕할 때 이곳에서 묵으면서 연회도 가졌던 것인데 최초의 기록에는 『고려사』에 충렬왕 5년(1279) 8월에 객관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외국사신이 주로 이용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객사에 전패(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안치하고 초하루와 보름에 향망궐배(向望闕拜 : 달을 보면서 임금이 계신 대궐을 향해 절을 올림) 하는 한편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객사는

중앙에 정청을 두고 좌우에 동헌, 서헌을 둔 구조로 정청에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어 지방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하였으며, 동·서헌은 접객시설로 외국사신들이나 중앙관리들의 이동시 접대 및 유숙하는 곳이었다.

 

 

입구에는 고종8년(1871) 병인·신미양요를 치른 뒤 쇄국의 결의를 다지고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가 옮겨져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9호)

 

 

 

 

 

도주관은

조선초기부터 있었으나 노후하여 중종38년(1543) 관찰사 임백령이 중창하였고, 주세붕이 쓴 "도주관 중수기문"에 중창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후 정청과 우객사만이 남아있었으나 2006년 좌객사를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익공집이며, 동·서헌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정청의 외관은 기둥을 건물 폭에 비하여 높게 세워 좌우 건물보다 높게 만들었다.

 

 

 

현존하는 객사로는 조선전기의 것인 강릉의 객사문(국보 제51호), 전주객사(보물 제583호), 안변객사의 가학루, 고령객사의 가야관, 경주객사의 동경관 등이 있다. 후기의 것으로는 성천 객사 동명관의 강선루, 통영객사, 여수객사 등이 남아있다.

 

 

 

 

 

 

 

 

 

찾아가는 곳

도주관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도두관로 146(서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