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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여행] 조선 태조 이성계의 태를 묻었던 태실, 태조대왕태실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들꽃(野花) 2015. 9. 22. 16:12

[금산여행] 조선 태조 이성계의 태를 묻었던 태실, 태조대왕태실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태조대왕태실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태조대왕태실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태를 묻어둔 곳으로

태실이란 왕이나 왕실의 자손의 태(胎)를 묻은 석실을 말하는 것이다.

태조대왕태실은 만인산을 관통한 금산과 대전을 연결하는 추부터널 위에 복원되어 있다.

 

복원되어 있다.???

그렇다면 태실이 파괴되었다가 복원하였다는 것인데

안내문을 읽어보니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의 일제의 만행에 의해 태실이 파괴되고 일제는 태실이 있던 원래의 자리를 민간에게 분양하여 태실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원천봉쇄하였던 것이다.

 

 

 

 

태조대왕태실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태조 이성계는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났는 데 어찌하여 만인산에 태를 묻었을까?

 

원래 이성계의 태실은 함경도 용연지역에 두었다가 1396년(태조 5) 무학대사의 지시로 만인산 남쪽 산허리에 태실을 만들어 태를 안치하고 태실비를 세웠다.

이후 만인산을 태를 안치하였다고 하여 태봉산이라고도 불러왔다.

 

 

 

그렇다면 왜 또다시 복원이니 이런말을 사용했을까?

 

일제강점기인 1028년 조선총독부에서 전국에 있는 왕의 태실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태실을 훼손하고 태 항아리를 창덕궁으로 옮겨갔고, 태실이 있던 자리를 민간에게 분양을 하였다고 한다. 1993년 지역 주민들이 남은 석비와 석물을 수습하여 원래의 자리에 복원하려 했으나 이미 다른 묘가 있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만인산 추부터널 위에 새로이 복원된 태조대왕태실

 

 

 

 

태조대왕의 태실은 만인산의 산봉우리 아래에 있었으나 지금은 추부터널 위 산봉우리에 복원되어 있다.

 

그럼 왜 함경도에 있더 태조의 태가 만인산에 위치하게 되었을까?

 

 

 

 

 

 

태실자생식물원에서 바라본 태조대왕태실

 

태조대왕태실이 있는 만인산을 보고 고려 말 ~ 조선 초에 한 시인이

산의 모양이 깊고 두터우며 굽이굽이 겹쳐진 봉우리는 연꽃이 만발한 것 같고 계곡의 물이 한 곳에 모여든다고 찬앙하였다고 한다.

 

 

 

태실자생식물원에서 만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와 있는것인가?

서서히 푸르렀던 나뭇잎들이 오색의 아름다운 단풍잎으로 옷을 갈아입으려 하고 있다.

 

 

 

자생식물원에서 태실로 가는 오솔길

 

 

 

태실로 가다보면 능선길에서 만난 정자

 

 

 

 

신작로로 불리웠던 길

 

일제는 조선의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전국에 쇠말뚝을 박는 등 몹쓸짓을 하였고

태실도 그 몹쓸짓을 피해갈 수 없었다고 한다.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전국의 왕과 왕실의 태를 창덕궁으로 옮겨가며

태실을 훼손하고 그 앞에 신작로라는 길을 만들어 태실의 권위를 떨어뜨렸다고 한다.

 

 

 

 

 

가을의 전령

쑥부쟁이가 가을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이쁘게 피어있다.

 

 

 

 

 

저 길

신작로길을 넘으면 대전의 만인산 자연휴양림이 나온다.

 

 

 

 

태실과 태실비

태실비 전면에는 '태조대왕태실'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중건한 시기(1689)가 새겨져 있다.

 

태조태왕태실에 관련된 기록을 살펴보면

"태조 2년(1393) 계유년에 태조의 태실을 안치하고 진산군을 지진주사로 승격했다. 태종 13년(1415)에 다시 군으로 개칭했다."『세종실록지리지』(1454)

 

"만인산 : 군의 동쪽 20리에 있다. 성봉(星峯)이 있는데 땅이 후박하고 물이 깊으며, 봉우리가 기이하고 수려한 것이 연꽃과 같다. 태조의 태를 묻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1481~1530)

 

"만인산 : 차령에서 뻗어내렷는데 군의 동쪽 30리에 있다. 태조대왕어태를 봉안했다." 『여지도서』(1759~1765)

 

 

 

 

태봉에 묻어둔 왕도의 꿈

 

 

 

 

 

태조 이성계는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났는 데 어찌하여 만인산에 태를 묻었을까?

 

현지 안내문을 내용을 적어보면

"형국론에 따르면 차령산맥 이남과 금강 밖에 위치한 지역은 산의 형상이나 물의 흐름이 나란히 왕도에 반기를 들 지세로 알려져 잇다. 이러한 지세를 일러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반궁수(反弓水)'로 풀이했다. 즉 왕도가 있는 한양을 항해 활 시위를 겨누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반궁수의 지세를 염두에 두고 좌향을 보면 이 태조의 태실지는 자좌오향(子左午向 : 북쪽을 등지고 정남방을 향한 좌향)으로 배치되어 화살촉인 마이산을 정면에서 막아서는 형국이 된다."

 

 

 

 

 

고개를 우측으로 살짝 돌린 해태

 

 

 

 

 

 

 

 

 

 

 

 

 

 

 

 

 

 

숲 너머에 태조대왕태실의 원래의 자리가 있다

나뭇잎이 무성하여 보이지는 않지만 지도를 확인해보니 그 자리에 왜 태실을 묻었는지 알 수 있다.

 

 

 

 

 

찾아가는 곳

 

태조대왕태실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충남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산1-86,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