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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여행] 총각, 처녀 장수의 애뜻한 전설이 내려오는 군산 탑동삼층석탑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들꽃(野花) 2015. 8. 21. 09:22

[군산여행] 총각, 처녀 장군의 애뜻한 전설이 내려오는 군산 탑동삼층석탑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전라북도 유형문화제 제66호 탑동삼층석탑

 

완주 모악산으로 가는 길

인천에서 이른 새벽 출발하여 모악산까지 길을 간다.

가는 길 시간적 여유가 있어 집사람에게 이야기도 없이 서해안고속도로동군산 IC를 나오면서 방향을 바꾼다.

보통 모악산(전북도립미술관)으로 가려면 동군산 IC로 나와 21번 국도를 이용하는데 오늘은 발 닿는 대로

가려고 첫번째 갈림길인 대야방면으로 방향을 튼다.

대야에 이르러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직진을 하여 가는데 갈색바탕의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임피역사

갈색바탕의 안내판 글씨라면 문화재로 지정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 그리로 간다.

임피역사를 찾아가는 길은 오가는 차량들이 거의 없는 한적한 길이다.

임피역사 앞 길옆에 차를 주차시키고 안내판을 보니

지금은 폐역이 되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역사였다.

구) 임피역을 둘러보고 지도를 검색해보니 인근에 '탑동삼층석탑'이 있다고 한다.

임피역에서 약 300m 떨어진 계산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철길을 건너 약 1.6km를 가니 길 우측에 탑동삼층석탑의 안내판이 보인다. 그곳에서 우회전하여 마을 안길을 가니 쉽게 석탑을 찾을 수 있었다.

 

 

 

 

 

탑동삼층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군산 탑동삼층석탑이 위치한 곳은

전북 대야면 죽산리로 탑은 죽산리 뒷쪽에 있는 건장산 기슭에 외로이 서 있다.

마을 이름도 탑동마을, 탑골이라고 탑에 관련되 지명을 갖고 있으나

탑이 있으면 절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절에 대한 설명이 없다.

 

 

 

 

탑은 화강암으로 된 5.5m의 높이를 갖춘 삼층석탑으로

탑을 보는 순간 백제의 형식을 계승한 탑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탑동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든 탑으로 백제 석탑의 기본 형태를 갖추고 있다.

탑이 있는 군산지역은 백제의 영토였으니 백제 양식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것 같다.

 

 

 

 

 

탑은 마을사람들에게 '잘 생긴 탑', '토박이 탑',' 여장군 탑' 등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남자장수와 여자장수의 애뜻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주민들에게 무척 사랑을 받는것 같다.

 

 

 

탑의 전체 높이는 5.5m이고

1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세운 후 머리장식을 얹은 탑이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의 내용에는

기단은 밑바닥돌이 탑의 보수 당시 콘크리트에 묻혀버렸다고 되어 있으나

사진에서처럼 기단부의 형식이 그대로 남아있다.

아마 후에 보수한것 같다.

 

 

 

 

 

탑신부는 각 부분을 조립하듯 여러 돌로 짜 맞추었는데,

1층 몸돌은 큰 편이나, 2·3층의 몸돌은 높이가 급격히 낮아졌다.

1층 지붕돌은 별도의 돌로 2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머리장식 받침),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 장식), 앙화(활짝 핀 연꽃모양 장식) 등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탑동 3층석탑 및 골샘약수터 관련 설화가 있어 적어본다.

 

먼 옛날 고려시대에 탑골(탑동의 옛 지명)에 여자장수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고,

탑골 너머 뒷동산(장자골)에 남자장수가 살고 있었는데

둘은 때때로 시합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탑을 쌓아 무너뜨리는 기술과 괴력의 시합이었습니다.

탑골 장수는 탑골에 탑을 쌓고, 장자골 장수는 장사마을에 탑을 쌓았습니다.

탑을 쌓고 무너뜨리는 시합날 두 마을은 풍악을 울리며 마을이 온통 축제 한판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탑을 쌓고 두 손가락으로 무너뜨리는 괴력의 시합이었습니다.

여자장수는 장자탑을 무너뜨렸습니다.

장구, 꽹가리가 울리며 함성이 일었습니다.

남자장수 차례가 되어 탑골탑을 무너뜨리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탑골 3층석탑에는 남자장수가 두 손가락으로 밀은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시합이 끝나고 마을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튿날부터 여자장수의 늙은 어머니의 온 몸에 알 수 없는 피부병에 걸렸습니다.

온 몸이 짓무르고 시꺼멓게 죽어가는 알 수 없는 피부병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여자장수는 전국을 돌며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았지만 효험이 없어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갔습니다.

무너진 탑의 혼이 씌어 그런다느니 회괴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어머니는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여자장수는 석탑아래 꿇어 앉아 백일기도를 시작합니다.

봄에 시작한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100일을 마치는 여름날 폭풍우처럼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여자장수는 석탑아래 꿇어 앉아 기도를 계속합니다.

깜깜한 밤 천둥번개가 치더니 홀연히 백발노인이 나타나 "건장산 골샘약수를 먹이면 피부병이 나을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여자장수는 그 길로 골샘약수터에 달려가 물을 먹였습니다.

온 몸을 씻기고 먹였습니다.

몇차례 씩기고 먹이고 나니 어머니믜 몸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약수터는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나 지역에서 구름처럼 사람이 몰려왔습니다.

칠월칠석에는 더욱 효험이 있다하여 이 날을 특정한 날로 정하여 물맞이를 하였습니다.

얼마 전까지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사람들이 찾던 곳이기도 합니다.

 

(현지 안내글을 옮겨 적음)

 

 

 

 

 

탑 기단위에 알 수 없는 모양이 있다.

 

 

 

 

 

혹 이것이 남자장수가 탑을 무너뜨리기 위해 힘을 가했던 흔적이 아닐까?

 

 

 

 

 

삼층석탑은 군산 지역에서 유일하게 500여 년 전부터

농사지을 때 부르는 노동요인 '탑동 들노래'와 함께 마을의 상징이기도 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중에도 탑이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을 보고 처녀장수의 혼이 마을을 보호해준다고 믿고있다고 한다.

 

 

 

탑동삼층석탑 우측에 있는 '보탑정사'

탑동삼층석탑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사찰에 대한 기록이 없으며

석탑 북쪽에 백제시대에 창건됐다는 터가 있다고 한다.

 

1890년경 정매진 스님이 폐사지 인근에 자그마한 암자를 지으면서

청룡사라 칭하고 법맥을 이어오다 1989년 '보탑정사'라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차장에는

참깨가 익어가고 있다.

 

 

 

 

찾아가는 곳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탑동삼층석탑

전북 군산시 대야면 죽산리 66-1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