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여행

전북 태조 이성계 역사탐방 - 발자취를 찾아 떠난 1박 2일

들꽃(野花) 2021. 10. 7. 00:12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이성계의 인생에서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개경, 서울, 함흥 등이 있지만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은 아마도 전라북도 지역이다.

전주의 오목대, 임실 성수산 상이암, 남원 여원치 마애불상, 황산대첩비와 피바위, 장수 뜬봉생, 진안 이산묘, 마이산 은수사 등 많은 곳에서 이성계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오랜만에 떠난 이번 여행은 태조 이성계의 이야기가 있는 곳들을 찾아갔다.

 

오목대
오목대는 고려 우왕 6년에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잔치를 벌인 곳이다.
잔치에서 이성계는 한고조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읊어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심을 보였고, 이를 눈치 챈 정몽주가 남고산성의 만경대에서 고려를 걱정하는 시를 읊었다고 한다.

 

임실 성수산 상이암

고려말에 무학대사의 권유로 이성계가 이곳을 찾아 치성을 올린바 삼업이 청정함을 깨닫고 삼청동이라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또한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와 손을 귀 위로 올리며 성수만세라 세번 외치는 용비어천의 길몽을 얻었다. 이에 성수산은 한반도 제일의 생왕처로 불린다.

 

 

 

 

여원치 마애불상

여원치 정상 부근 바위에 새긴 이 불상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붕상 옆에 운봉현감 박귀진이 지은 글애 따르면 조선 태조 이성계의 꿈에 한 노파가 나타나 이성계가 황산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불상은 그 노파에게 감사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황산대첩비

이곳은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 전적지이다. 금강어귀에서 퇴로가 막힌 왜구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차 바다로 달아나려 하였다. 고려군의 최고지휘관 이성계는 적장 아지발도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성계가 먼저 활을 쏘아 아지발도의 투구를 떨어트리고 뒤이어 이두란이 쏜 화살이 그의 머리를 맞혔다. 이에 힘입어 고려군은 지휘자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왜구를 섬멸하였다.

선조때 왕명을 받아 김귀영의 글, 송인의 글씨로 대첩비를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부수었다.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

수분마을의 뒷산 (신무산) 산록에는 금강의 발원천이 되는 뜬봉샘이 있다.

향토지의 기록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가 마라를 세우기 위해 산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곳에서 보았던 봉황이 하늘로 올라간 곳에 옹달샘이 있었다. 그는 하늘의 계시를 들은 이 샘의 옆에 제단과 상이암을 세우고, 옹달샘 물로 제수를 만들어 천제를 모셨다고 전한다. 이후에 옹달샘에서 봉황이 떳다고 해서 샘 이름을 뜬봉샘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산묘

이산묘는 조선 건국의 정신과 구한말 구국항쟁의 뜻을 기리는 사당으로  사당의 왼쪽 암벽에 주필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주필대는 태조 이성계가 남원 은봉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개선하던 중에 하늘로부터 금척을 받은 것을 기념해 잠시 머물러 시를 읊은 곳으로 전한다.

 

 

마이산 은수사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꿈속에서 신인으로부터 받았던 왕권을 의미하는 금으로 된자인 금척을  받은 장소로 알려진 곳으로 기도중에 마신 샘물이 은같이 맑아 이름이 은수사로 붙여진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