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자락에 있는 은해사의 암자인 돌구멍절로 유명한 중암암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비구니스님의 도량인 백흥암을 볼려고 하는데 이곳은 공개되지 않은 곳이라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다.
마침 지나가시는 스님이 있으시기에 들어가서 보물로 지정된 극락전을 사진을 찍을 수 없냐고 여쭈니까. 어디서 왔냐, 뭐하는 사람이냐 등 간단한 것을 물으시고 흔쾌히 허락하시며 안내하신다. 집사람과 딸을 소개드리고 같이 백흥암 안으로 들어가서 나는 극락전 사진을 찍고 집사람과 딸은 법당에 들어간다.
원주스님인 소현스님을 만나 차를 대접받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점심 공양도 들고 가라 하시기에 여간 고마운게 아니었다. 특히 딸을 좋아해서 겨울방학에 이곳에 다시 한번 더 오라고 하니 딸도 싫다고 하지 않아 겨울에 다시 한번 오기로 하였다.
백흥암에 대해 알아보면
백흥암은 신라 경문왕 9년(869년) 국사 혜철(惠徹)가 창건하였다. 당시에는 절 주위에 잣나무가 많아서 송지사(松旨寺)라 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사찰이 전부 전소되었으나, 조선 명종1년 (1546년)에 백흥암으로 개칭하였다. 효종2년(1651년)과 숙종3년(1677년)에 중수하였다. 영조6년(1730년)에는 보화루(寶華樓)를 중건하였고, 철종 9년(1858년)에는 청봉이 영산전(靈山殿)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한때 수백 명이 수도하였다고 하며, 규모도 암자로서는 매우 큰 편이다. 건물로는 보물 제790호로 지정된 극락전(極樂殿)을 중심으로 영산전·명부전(冥府殿)·문루(門樓)·산신각(山神閣)·선실(禪室)·원주실(院主室)·요사 등이 있다.
보물 제790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아미타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극락전은 인조 21년(1643)에 지은 것으로 지금 있는 건물은 그 뒤로 여러 차례 수리한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재료의 형태와 짜임이 조선시대의 옛 수법을 잘 갖추고 있다.
안쪽 천장은 가운데를 높이고 주변을 낮게 만들어 층을 이루게 꾸몄으며, 불상을 올린 불단(수미단)은 조각이 매우 특이하고 우수하여 보물 제486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구니스님 수행도량인 백흥암은 수행의 역사보다도 불교미술로서 그 진가를 나타내는 도량이다. 조선 인조 때 건립된 극락전 안 수미단이 바로 그것이다. 극락전 자체도 보물로 지정받았지만 불단인 수미단도 보물 제486호로 보호받고 있다. 수미단이란 절의 법당 정면에 상상의 산인 수미산 형태의 단을 쌓고 그 위에 불상을 모시던 대좌를 말한다.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에 있는 높이 125㎝, 너비 413㎝의 조선 후기에 만든 불단이다. 앞쪽 면은 5단으로 되어 있으며, 각 단도 5등분 되어 각각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제일 위의 단은 안상문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제2단은 봉황·공작·학·꿩 등을, 제3단은 용·어린아이·물고기·개구리 등을 매우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제4단은 코끼리·사자·사슴 등을 꽃잎 속에 조각하였고, 제일 아래단의 양쪽 끝에는 도깨비 얼굴을, 가운데 부분에는 용을 조각하였다. 각 단에 있는 새나 동물의 배열이 특색 있고, 조각기법도 매우 우수하다. 이런 특징이 있는 불단은 조선 후기 작품으로 더러 남아 있지만, 이 불단은 그 중에서도 대표되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자료 참조)
또 하나는 추사의 글씨이다. 진영각 편액과 6개의 주련이 바로 추사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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