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여행

나라를 지키다 숨져간 이들의 넋이 살아있는 강화도 광성보

들꽃(野花) 2010. 2. 7. 21:06

광성보!

강화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강화도에서 구경거리를 추천하라면 나는 서슴없이 이곳 광성보를 추천한다.

이곳은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신미양요라 하여 조선이 미국과 전쟁을 치른 강화도의 전적지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또한 바다의 정취를 맡으며 한가로이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인년 둘째날 집사람이 강화도의 광성식당을 가자고 한다.

그곳에서 된장찌게를 먹고싶다나.

눈이 내려 있어 조금 미끄럽지만 겨울 바다를 볼 수 있고, 저녁시간이라 강화도의 낙조를 볼 수 있어 좋은 곳이다.

 

광성보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곳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다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숙종 때 일부를 돌로 고쳐서 쌓았으며, 용두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광성돈대 등 소속 돈대가 만들어 졌다.

 

이곳은 1871년의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이해에 통상을 요구하며 침입한 미국 함대가 강화 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광성(廣城)·초지(草芝)·덕진(德津)·덕포(德浦)등의 포대에서 일제히 사격을 가하여 물리쳤으나, 4월 23일에 450명의 미국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여 진을 점령하였다. 이튿날 미군이 북상하여 덕진진을 함락시키고, 이어서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미국 극동 함대는 9인치 포와 8인치 포 등 약 80문(門)의 함포로 지원사격을 하였으며, 광성보를 지키던 중군장(中軍將) 어재연(魚在淵)을 위시하여 그의 아우 어재순(魚在淳)·군관 이현학(李玄學)·어영초관(御營硝官) 유풍로(柳豊魯)·천총(千摠) 김현경(金玄暻)·광성별장(廣城別將) 박치성(朴致誠) 이하 49인의 장사와 200여명의 군사가 전사하고, 20여명이 부상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중상으로 기동이 어려운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순국하였다. 이 싸움에서 미군은 맥키 중위를 위시하여 3명이 전사하고 10여명이 부상하였다.  이때 성첩과 문루가 파괴된것을 1976년에 복원하는 동시에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무덤과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쌍충비각(雙忠碑閣)을 보수, 정비하였다. 이곳에는 어재연장군의 전적비가 남아 있다.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이곳은 조선 고종8년 신미양요때 광성보 일대에서 미해군과 격전하다거 전사한 용사들의 묘가 있는 곳이다.

당시 중군 어재연 장군과 아우 재순을 비롯한 군관, 사졸 53인의 전사자중 , 어재연 형제는 고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분별 할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는 곳이다.

  광성보 전투에서 조선군은 최후의 한명까지도 포로되기를 거부하고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았으니, 외침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려는 우리민족의 살신호국 정신을 보여준 곳이라 할 수 있다.

 

 

 

손돌목 돈대

이곳은 조선 숙종 5년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가 있었다. 신미양요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있었던 곳이다. 

 

 

 

 

 

 

광성포대

이곳은 손돌목돈대 주변 3곳에 설치되었으며 각각 9좌, 4좌, 3좌의 포좌를 갖추고 있던 곳이다. 1875년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외세에 문호를 개항함에 따라 파괴되었던 것을 2004년 발굴조사를 실시 유적이 확인되어 복원하였다.

 

 

 

용두돈대는

강화해협을 지키던 천연요새로서 손돌목돈대에 속해있는 외곽 초소겸 포대이다. 고종8년 포대가 설치되면선 정비된 곳으로 1977년 강화전적지 정화보수사업을 하면서 용두돈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병인,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용두돈대에 저녁노을이 물들고 있다.

 

 

 

 

 

 

 

영조 21년(1745)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었는데 ‘안해루’라 하였다. 

 

 

 

광성돈대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