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여행

[무안여행] 한국의 다성(茶聖), 동다송의 저자 초의선사 탄생지

들꽃(野花) 2010. 7. 18. 08:59

차를 아는가?

다도를 아는가?

출근하면 마시는 커피 한잔, 그것도 커피 믹스로 된 것을 마시는게 고작이다.

그리고 어쩌다 마시는 녹차 한 잔, 그것 역시 1회용 티벳포장으로 된 것을 마신다.

어느 잔을 사용할까 고민할 것 없이 그저 종이컵에다 타서 먹는다.

이것이 내가 아는 차의 전부다.

참, 작년 10월 대구 팔공산에 있는 은해사 백흥암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비구니 암자로 일반 관람객은 들어갈 수 없었으나 마침 지나가시던 원주스님을 만나게 되어 암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원주스님인 소현스님에게서 백련을 구증구포하여 숙성시킨 귀중한 차를 대접받은 적이 있다.

그때 연노랑 색을 띄던 은은하고 부드러웠던 그 차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다성(茶聖)을 아는가?

명맥만 유지하여 오던 우리나라 다도를 중흥시킨 초의선사를 아는가?

솔직히 나는 여기에 오기 전에는 강진의 다산초당을 찾았을 때 초의선사에 대해 조금 들었던 것이 전부였다.

전남 무안의 초의선사 탄생지.

이곳에 와서 초의선사에 대해서, 차에 대해서, 다도에 대해서 조금 알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 높지 않은 봉수산 자락에 위치한 초의선사 탄생지, 조성한 지가 얼마되진 않았지만 이것을 만든이의 열과 정성이 깃든 것을 여기저기서 알 수 있다.

 

 

조선후기의 혼란과 격변기를 살다간 초의선사(1786~1866)는

조선 불교의 선풍을 크게 진작시킨 대선사(大禪師)로, 한국의 다도를 중흥시킨 다성(茶聖)으로, 조선의 시풍을 투명하게 전수한 시인(詩人)으로 살다가신 고승이다.

 

 

초의선사는 조선 정조 10년(1786년) 4월 5일에 전남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서 태어났으며,  속성은 흥성 장(張)씨이며 이름은 의순이다.

초의(艸衣)라는 호는 출가 후 스승 완호 윤우로부터 받은 것이며 일지암은 재호이다. 15세에 나주시 남평에 있는 운흥사로 출가하였으며, 19세에 해남 대둔사에서 완호스님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1866년(고종 3년) 7월 2일 입적하니 세수 81세요, 법랍은 66세였다.

 

대각문

스님이 55세(1840년) 때에 헌종으로부터 대각등계보제존자초의대선사(大覺登階普濟尊者艸衣大禪師)라는 사호를 받았다. 이에 탄생지를 조성할 때 들어가는 문을 대각문이라 하지 않아나 싶다.

 

 

탄생지 안에 가꾸어 놓은 차밭

 

 

선사의 다도관을 알아보자.

선사는 그의 동다송 제29송에서 말하기를,다도란 신(神) 체(體) 건(健) 영(靈)을 함께 얻는 것이라고 했다.
' 평해서 말하기를 채다(採茶)는 그 묘(妙)를 다해야 하고, 조다(造茶)는 그 정성(精誠)을 다해야 하고, 물(水)은 그 진(眞)을 얻어야 하고, 포법(泡法)은 중정(中正)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체(體)와 신(神)이 서로 고르고 건(健)과 영(靈)이 서로 함께 하는 것을 일컬어 다도(茶道)에 이르렀다고 한다.' 라고 하였다. 

 

 

용호백로정

하얗게 피어나는 백련과 용호백로정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의 여유, 상상만 해도 운치있을 것 같다.

 

 

대흥사의 일지암을 복원하여 놓은 모습 

 

초의선사 기념전시관

이곳에는 선사의 일대기를 정리하여 놓았다.

 

 

조선 불교의 13대 초의대종사

헌종임금으로부터 사호를 받은 대각등계보제존자초의대선사

 

명선관

이곳에는 차 관련 자료들을 볼 수 있다.

 

 

다성사

 

 

동다송

  초의선사가 차를 알고자 해서 묻는 홍현주에게 지어서 보낸 차의 전문서로 동다(東茶)라는 말은 동국 또는 해동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차를 말한다.

이 차를 게송(偈頌)으로 읊었다고 해서 동다송이라 한다.

 

  동다송의 대의(大意)를 요약해 보면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는데,

첫째로 차는 인간에게 너무나도 좋은 약과 같은 것이니 차를 마시도록 해라.

둘째로 우리나라 차는 중국차에 비교해서 약효나 맛에 있어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육안차(六安茶)의 맛이나 몽산차(蒙山茶)의 약효를 함께 겸비하고 있다.

셋째로 차에는 현묘(玄妙)하고 지극(至極)한 경지가 있어 다도(茶道)라고 한다는 것이다.

 

 

 

 초의선원

 

금오초당

 

 

 

조선차역사박물관 

 

 

  

 

 

58세에는 스님께서 고향을 찾아간 감회를 시로 남겼는데

 

멀리 고향을 떠난 지 사십여년 만에 (遠別鄕關四十秋)
희어진 머리를 깨닫지 못하고 돌아왔네. (歸來不覺雪盈頭)
새터의 마을은 풀에 묻혀 집은 간 데 없고, (新基草沒家安在)
옛 묘는 이끼만 끼어 발자욱마다 수심에 차네. (古墓笞荒履跡愁)
마음은 죽었는데 한은 어느 곳으로부터 일어나는가. (心死恨從何處起)
피가 말라 눈물조차 흐르지 않네. (血乾淚亦不能流)
이 외로운 중(僧) 다시 구름따라 떠나노니, (孤공更欲髓雲去)
아서라 수구(首邱) 한다는 말 참으로 부끄럽구나. (已矣人生傀首邱)

 

고향!

모든 이들에게 정답게 다가오는 그말 한 마디.

지금 우리네 삶에서도 고향은 어머니요. 마음의 안식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