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환
그는 누구인가?
월북 시인 오장환
우리들에게 잊혀졌던 월북 시인
충북 보은군 회인면의 오장환문학관
1988년 납 · 월북 문인들에 대한 해금조치로 오랫동안 우리들에게 금기시 되었던 오장환의 문학세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그의 생가였던 충북 보은에 문학관이 설립되게 되었다.
오장환은 (1918~1951) 충북 보은 출생으로
휘문고등보통학교 시절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33년 2월 학교문예지 <휘문>에 '아침'과 '화영', 1933년 11월 <조선 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후 <시인부락>, <낭만>, <자오선> 등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해방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참가하여 활동하였으며, 1947년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직후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와 테러가 시작되자 이를 피해 북으로 갔다. 남포적십자병원과 모스크바 볼킨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병이 악화되어 1951년 한국전쟁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벽>(1937년), <헌사>(1939년), <병든 서울>(1946년), <나 사는 곳>(1947년), 산문집 <남조선의 문학예술>(1948년)을 내었고 <전쟁>, <수부>, <황부지>와 같은 장시를 비롯하여 22편의 산문, 44편의 동시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충북 보은군 회인면의 오장환문학관 전경
정거장
- 오장환
정거장엔
할머니 한 분,
차는 벌써 떠나갔는데,
돌아가지도 않고,
기다립니다.
어둑한 길목엔,
깜박깜박 등불이
켜 졌어도,
막차가 떠나간 정거장서
할머니는 누구를
기다리시는지,
우두커니 서서,
돌아가지도 않고
기다리십니다.
회인면을 가로지르는 길가에 있는 오장환문학관의 이정표
골목길로 들어서자 골목길 담장에 그려져 있는 동시 '해바라기'
울타리에 가려서
아침 햇볕 보이지 않네
해바라기는
해를 보려고
키가 자란다.
'종이비행기'
오장환생가터
생가터 전경
나의 노래
- 오장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
문학관 전경
문학관 입구
오장환 시인의 동시들
<내생일>, <애기꿈>, <가는비>, <기러기>
<편지>, <바다>, <늦은 봄>, <섬골>
중등국어교본 하에 실린 <석탑의 노래>
1943년 6월 <춘추>에 실린 이 시는 오랜 세월 아름답게 서 있는 탑과 순간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유한한 삶을 대비하여 노래하고 있다.
이 시기 오장환은 조선의 문화유산을 찾아 답사를 다니며 보냈다고 한다.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 속에서 과거를 보고, 미래를 생각하며 장기적인 역사적 전망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단 한 편의 친일시도 쓰지 않고 해방이 되는 날까지 병든 몸으로 이겨낸 것이다.
<석탑의 노래>라는 제목의 시는 1947년 중학교 5, 6학년 교과서에 실린 시로, 원 제목은 <절정의 노래>이다.
'나의 길'
휘문고등보통학교 시절 스승 정지용을 만나 천재시인으로 인정받게 되는 과정과 월북 후 지병 치료를 위해 입원해 있던 남포적십자병원에서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 오장환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단막극 형식의 영상을 볼 수 있다.
오장환 시인이 발표했던 문집들
오장환 시인의 사진
휘문고 2년 문예반 일동과 함께 한 사진으로 가운데줄 맨 오른쪽이 오장환 시인이다.
오장환문학관
주소 : 충북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
전화번호 : 043-540-3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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