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골목길 투어
대구의 골목길에 '근대로의 여행'이라는 골목길투어가 있다.
골목길
어느 가수의 노래제목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구의 근대화의 물결속을 겪어왔던 그 길, 즉 근대로의 길을 걸어보며 그때의 모습을 그려보는 여행이다.
3.1운동길을 내려오면서 길 건너편에 있던 오래된 건물, 계산동성당이 우리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그리고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건물벽에 대형 태극기와 이상화 시인과 서상돈 선생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좌측의 계산동성당과 우측 건물 벽에 모자이크로 만든 태극기와 두 사람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이 이채롭다.
길을 건넌다.
대구 계산동 성당
사적 제 290호로 지정 되었으며, 1886년 로베트(Robert.A.P) 신부가 경상도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다가 1897년에 현재의 계산동 성당 자리에 있던 초가집를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1899년에 한식 목조 십자형의 성당을 지었으나, 다음 해에 화재로 불 타 1902년에 현재의 성당을 짓게 되었다.
설계는 로베트 신부가 하고 중국인이 공사를 맡았다고 한다. 당시 대구에서는 처음 세워진 서양식 건물로, 입구에 두 개의 종각에 우뚝 솟아 ‘뾰족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성당건축은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화강석 기단 위에 붉은 벽돌을 쌓고 검은 벽돌로 고딕적인 장식을 하였다. 대구 지방에서 유일한 1900년대 성당 건축물로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00여년이 넘는 건물로 대구대교구의 중심으로 영호남 천주교의 뿌리라고 한다.
전에 말했듯이 대구의 나무들은 대구 지역의 사람이름을 딴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인성 나무
이인성(1912~1950)은 대구 출신의 천재화가로 1998년 모 미술전문잡지사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평론가 13명을 대상으로 한국근대유화베스트10을 조산한 결과 1위로 선정되었고, 작가 인기도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한 화가이다.
이 나무는 수령이 100년 정도된 감나무로 1930년대에 그린 [계산동성당}의 배경이 된 나무중 하나이다.
계산동성당을 둘러보고 성당을 나와서 왼쪽으로 돌면 아까 길건너에서 보았던 대형 태극기와 이상화 시인과 서상돈 선생의 벽화를 만나게 된다.
도로가 인도에는 이상화 시인의 대표적 시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의 제목이 길위에 세겨져 있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계속이어지는 벽에는 대구의 옛모습이 담긴 사진들과 안내판이 있어 골목길을 걸으며 옛생각이 빠지게 만든다.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들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이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간다.
계속 이어지는 붉은 색의 담벼락
갑자기 훤하니 넓은 광장이 나온다.
좌측이 이상화 시인의 고택이고, 저 앞쪽에 보이는 것이 서상돈 선생의 고택이다.
길 바닥에는 대구 골목길의 안내도가 눈에 들어온다.
먼저 서상돈 고택을 찾아갑니다.
서상돈 선생은 경북 상주 출생으로
대구에서 지물 행상과 포목상으로 성공한 인물로 정부의 검세관이 되어 정부의 조세곡을 관리하기도 했다.
1907년에 정부가 일본에 빚을 많이 져 국권을 상실한다고 생각하여 대구 광무사 사장인 김광제와 함께 대구에서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회를 조직하고 국배보상운동을 벌였다.
서상돈 선생의 고택과 마주하고 있는 이상화 시인의 고택을 찾아간다.
이상화 시인은
1901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상화, 무량, 상화, 백아이다. 1918년에 서울 중앙학교를 수료했고, 열아홉되던 1919년 대구에서 3.1운동 거사를 모의하기도 하였으며, 1921년 현진건의 소개로 박종화와 만나 <백조> 동인에 참여했고, 1922년 <백조>1~2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특히 1926년 <개벽>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였다.
1943년 3월 위암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4월 25일 대구 자택에서 숨졌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해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들이 구름 뒤에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곱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을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접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상화 시인의 흔적들이 집안 곳곳에 남아있다.
친구들과 제자들을 맞이하던 사랑방
어렸을 적 먹는 물을 푸던 펌프
추억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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