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여행

[정읍여행]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니 대웅전과 서래봉이 거꾸로 보이네-벽련암

들꽃(野花) 2012. 4. 6. 10:12

정읍의 내장사

2012년 전북 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찾은 전라북도

전라북도로 떠난 여행길에 내장사가 있어 반가움에 선뜻 길을 나선다.

 

내장사!

10월의 늦은 가을 이곳은 관광객들로 몸살을 치루는 것으로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알고 있을 뿐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사람에 치이는 곳에 뭐하러 가냐는 등 온갖 핑계로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다.

전국의 문화재를 찾아다니고 있지만 여기는 어찌 갈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결론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는 것.

이제야 비로소 길을 떠난다.

 

따뜻한 봄날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쌀쌀한 느낌이 드는 날

정읍의 내장사를 향해 길을 떠난다.

사람이란 여행을 떠나면 욕심이 생기는 법, 결국 이날 과욕을 부리고 말았다.

내장산의 내장사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서래봉 아래의 벽련암을 먼저 보려 떠난다. 시간이란 놈 때문에 결국 내장사를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충분히 벽련암과 내장사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시간 계산을 잘 못하는 바람에 내장사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럼 가을에 와야하나?

사람이 너무 많으면 오기 싫은 데, 이를 어쩌나?

 

하소연은 뒷날의 이야기 거리로 남겨놓고 내장산으로 들어간다.

 

벽련선원의 건물에 누워 대웅전과 서래봉을 바라본 모습

물 위의 반영처럼 특별한 만남이었다.

 

벽련암의 이름에 대해 알아보자.

서래봉 아래에 위치하여 원래 내장사란 이름으로 일컬었는데 근세에 와서 영은암(현 내장사)를 내장사로 개칭하였고, 이곳은 백련암이라 이름하였고 나중에 벽련암으로 고쳐쓰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이름을,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고 하지만 사람들 편의에 의해 이름을 고쳐부렸다고 하니 왠지 마음이 별로이다.

벽련암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73호 내장사지, 벽련사지로 지정되어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장사를 향해 걸어간다. 이곳이 유명하여서 그런지 봄날에도 관광객들이 제법 많이 있다.

 

내장산내장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일주문

문은 문이되 열고 닫는 문이 없는 일주문, 세속과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문, 그런 문을 두고 오른쪽 산길의 벽련암과 내장사의 갈림길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여기서 오른쪽 벽련암을 먼저보고 내려와 내장사를 보기로 하며 길을 잡는다.

 

벽련암으로 올라가는 길에 콘크리트포장이 되어있어 발걸음이 무겁다.

벽련암을 오가는 차량들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콘크리트로 길을 만들었겠지만 흙길이었으면 하는 생각은 나만의 바램일까?

이런 산 속에 와서 콘크리트길을 걸어야 할까?

 

이런 콘크리트 포장길은 벽련암까지 이어진다.

푸르른 잎새가 그리워지는 계절, 너무 썰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날을 택해 찾아온 나의 불찰이려니 생각하며 길을 걷는다. 

 

보도블록으로 깔린 길은 소나무의 그림자가 살며시 내려앉고 그 길을 투덜이 객이 힘겨운 걸음을 옮긴다. 

 

 

새의 둥지처럼 보이는 것은 '겨우살이'로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데 여기서 보게 되니 이곳이 제법 깊은 산인가보다.

 

양지바른 곳에 원추리로 보이는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길가의 느티나무와 암자의 석축을 보니 절의 역사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실록이 우거졌을 때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전설이라

전설이 없으면 어떨까?

여기에도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니 바로 앞쪽에 보이는 석축에 관련된 이야기다.

'벽련암 석축대를 쌓을 때 희묵대사가 서래봉 정상에서 돌을 던지면 수제자 희천스님이 이를 받아 쌓아올렸다'고 전하니 석축에 새삼 눈길이 머문다.

 

벽련선원으로 오르는 길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벽련선원

그 계단길을 올라간다.

 

벽련선원 아래의 길을 통해 올라가니 눈 앞에 대웅전과 서래봉이 눈에 들어온다.

 

맑은 하늘 아래 서래봉과 대웅전의 모습이 벽련암의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잠시 벽련암에 대해 알아보고 가자.

내장산에서 으뜸가는 경치를 자랑하는 이곳 벽련암은 옛 백련사가 있던 절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백련사는 내장사라고도 이르며 내장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련사는 의자왕 20년(660)에 유해스님이 세웠다고 하는데, 추사 김정희가 백련사를 벽련사로 바꿔 부르고 현판을 써서 걸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다. 백련사가 언제부터 벽련암으로 격하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경내 서편에 부도가 남아있고 뒷편 암벽에 몽련당 김진민의『석란정(石蘭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라고 벽련선원 오르는 계단 좌측 안내판에 써 있다.

 

네 마리의 사자가 오층석탑을 받치고 있다. 

 

 

 

 

 

 

벽련선원에 오르니 누워서 서래봉과 대웅전을 볼 수 있는 자리가 준비되어 있어 카메라를 들고 누워본다.

잠시 누워 사진을 찍지만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피곤한 몸을 마냥 쉬게 하고 싶다. 

 

대웅전 내부

 

천불전

 

 

벽련암을 내려와 내장사의 단풍나무 길을 담아본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고 

 

길가에는 현호색이 보라색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따뜻한 봄날 나들이를 즐기는 가족의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인다.

 

배롱나무의 가지에는 아직 봄은 멀지만 땅에는 푸르른 새싹들이 돋아나 제법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다음에는 '내장사를 꼭 찾아오련다.' 약속하며 내장산내장사의 일주문을 통해 되돌아간다.

 

차를 타기 직전 도랑가 석축 밑에 피어있는 제비꽃의 아름다움을 뒤로한 채

내장산이여!

안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