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역사박물관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충청남도역사박물관을 찾아간다.
이번 여행은 충남 기호 유학의 명재 윤증선생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충청남도역사박물관, 기호유교문화, 기호유학의 흐름, 특성, 명재 윤증선생의 일생과 명재고택, 전통과 예절 등을 알아보기 위한 여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번째로 찾아간 곳이 공주시에 있는 충청남도역사박물관으로 충청남도역사박물관은 충청남도에서 출연한 (재)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 속한 박물관으로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고 바로 세워 역사 ·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충남도민의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할 목적으로 2006년 9월 28일에 개관하였다.
충청남도역사박물관의
시설과 규모는 부지 13,645㎡, 전시실은 1층 기획전시실과 2층 상설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박물관 소장유물 현황으로는 명재'윤증 초상' 5점 및 영당기적(보물 제1495호), '윤증가의 유품'54점(중요민속자료 제22호), '공주 상세동 산신도' 1점(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9호), '무안박씨 요여' 1점(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20호) 등 54,907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국고개길 24
전화번호 : 041-856-8608
홈페이지 : http://www.cihc.or.kr/museum/index.jsp
오늘은 그 첫번째로 앞의 글에서 1층의 명재 윤증 선생일가의 삶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2층의 상설전시장에서 충남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공주여행] 충남역사박물관에서 만난 소론의 영수 윤증선생 가계의 일대기
충남의 역사,
선비의 얼을 간직한 곳,
충남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충남의 역사와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흐름도
이것 하나면 충남을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2층에 특별한 기증품이 있어 눈길이 갑니다.
청자음각앵무문발/아에이야 히로스케 기증
비색의 은은한 광택을 띠고 있는 청자 발로 안쪽 경사면에는 하늘을 날고 있는 앵무새 한쌍과 구름을 표현하였다.
(12세기 후반 ~ 13세기 전반 / 높이 7.8 x 입지름 18.0 x 밑지름 5.7cm)
분청사기인화승염문대접/아메이야 히로스케 기증
분청사기 대접으로 안쪽 면에 국화문, 집단연주문, 나비문대 순으로 인화 · 상감되었다.
(15세기)
석봉 한호 간찰 / 윤완식 기탁
조선시대 명필 석봉 한호(1543~1605)의 편지글이다. 한호가 강원도 흡곡현령(강원도 통천)으로 있으면서 재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제할 방도가 마땅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1603년, 선조 36)
백동화로
화로는 숯불을 담아 실내를 덥히는 도구로 무쇠, 곱돌, 놋쇠 등으로 만든다.
이 화로는 조선후기에 백동으로 제작된 것으로 호사품에 속하며, 표면은 아(亞), 복(福), 희)囍) 등의 글자와 대나무, 덩굴무늬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고종 때 명성황후 민씨의 친정조카인 아산시 외암마을의 퇴호 이정렬 가문의 소장 유물이다.
은잔
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열이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잔과 잔받침이다.
잔 하나에는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고, 그 받침의 전체 모양은 오얏꽃 형태이다.
오얏꽃 문양은 대한제국의 황실을 상징하는 문장이었다.
관찰사의 지방 순시
관찰사의 지방 순시
조선시대 관리의 근무성적을 평가하는 것을 포폄(褒貶)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 성적에 따라 관리의 승진과 강등 대로는 파직이 결정되었는데, 이를 출척(黜陟)이라 하였다. 특히 수령의 업무는'칠사(七事)'라는 이름으로 경국대전에 실려있고, 관찰사는 그 각 항목에 대하여 선(善), 최(最), 악(惡), 전(殿)으로 구분하여 평정하였다.
관찰사는 매년 6월 15일과 12월 15일에 근무 성적을 작성하여 임금에게 보고하였고, 임금이 열람한 후 이조(吏曺)에 보내면 이조의 고공사에서 이를 합하여 보관하다가 고과성적에 반영하였다. 포폄의 성적은 상 · 중 · 하의 등급으로 구분되는데, 특히 하에 해당하는 수령은 즉시 파직되었을뿐만아니라, 2년 동안 벼슬에 나갈 수 없었다.
순력은 수 많은 수행원과 함께 행해졌는데, 전시된 축소모형은 그 일부를 보여주는 자료이며. 포폄목은 포폄의 결과를 공개한 문서이다.
'무안박씨 요여' 1점(충청남도 민속문화재 제20호)
성삼문 신주의 여정
성삼문은 1456년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참화를 당하면서 그의 동생과 아들 등이 모두 죽임을 당하여 혈손이 끊어졌다.
성삼문의 부인 김씨는 관비로 끌려가서도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가 죽은 후에는 외손 박호(1466-1536)의 가계에서 제사를 받들다가 임진왜란 때 신주를 땅에 묻었다고 한다. 1672년 인왕산이 바위가 무너지면서 묻혀있던 성삼문의 신주가 발견되었고, 이 신주는 우암 송시열 등의 의견에 따라 홍주 노은서원에 봉안되었다.
1871년 노은서원이 훼철됨에 따라 성삼문의 신주를 모실 곳이 없게 되자 외손인 박진하가 노성 당호재로 옮겨 봉안하였다. 1903년에 칙명에 의해 성삼문의 봉사손이 결정되면서 창녕성씨 집성촌인 연기군 금남면 달전리 사우(현 문절사)로 옮겨졌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신주의 훼손을 염려하여 단지에 넣어 땅속에 묻었다고 전한다.
연시연(延諡宴)
시호(諡號)란 돌아가신 임금이나 공이 큰 신하에게 내리는 칭호를 말한다. 원래 후손들이 임금에게 청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때로는 임금이 직접 내릴 수도 있다. 송준길은 시호를 청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숙종이 1681년 특명으로 문정이라는 시호를 내린 경우이다.
임금이 시호를 내린 경우에는 곧바로 시호를 하사하는 의식이 치러지는데, 송준길의 경우에는 집안의 변고로 인하여 1686년에 연시가 거행되었다.
후손들은 고을의 경계에 나가 선시관을 영접하고, 현감은 5리 밖에서 맞이하여 객사에 모셨다. 다시 본가까지 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근 수령들이 집사관이 되어 사당에 시호를 봉안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묘소에서 분황제를 올린다.
연시연 상차림 재료는 보통 나라에서 하사한다.
충현서원의 주자초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8호)
'공주 상세동 산신도' 1점(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9호)
함흥읍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17호)
함흥읍도는 조선시대 함경도 감영 소재지였던 함흥 일대의 전경을 담은 일종의 회화식 지도이다.
족자의 장황이 일부 훼손되었지만 화면의 보존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며, 함흥성을 비롯한 외곽으로 흐르는 성천강의 만세교, 포도, 그리고 북쪽의 반룡산 등을 포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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