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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부여] 부여 화지산 유적 - 사적 제425호

들꽃(野花) 2012. 7. 11. 05:30

부여 화지산 유적 (扶餘 花枝山 遺蹟) / 사적 제425호

소재지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05번지 외

 

  화지산은 부여읍내 북쪽에 자리한 부소산에서 남쪽으로 약 2㎞ 떨어져 있으며, 부여 궁남지(宮南池, 사적 제135호) 동쪽에 위치한 해발 48m의 낮은 산에 위치한다.

 

  화지산의 서편 기슭은 백제 사비기의 이궁지(異宮址)가 있었던 곳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특히 이 부근에는 대리석을 8각으로 짜 올린 어정(御井)이라는 유구가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백제본기 의자왕 15년(655년)조의 ‘왕궁 남쪽에 망해정(望海亭)을 세웠다’는 기록과 화지산 주변의 경관을 고려할 때 망해정 또한 궁남지와 관련하여 화지산에 존재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화지산 일대는 예전부터 왕궁과 관련된 유적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화지산에 부여군이 도시자연공원 조성계획의 일환으로 ‘백제오천결사대 충혼탑’과 국제 조각공원을 조성하고자 하여 사전에 실시한 지표조사 결과 유구 및 유물이 확인되지 않은 남편 일대에 ‘백제오천결사대 충혼탑’을 5부 능선에 건립하고 조각공원 공사를 시행하는 도중에 상당량의 기와편 등이 확인되어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2000년에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친 건물지, 분묘, 목책시설 등 다양한 유구와 함께 기와류, 토기류, 자기류 등 많은 유물이 확인되었다.

 

  백제시대 건물지는 6기가 확인되었는데, 그 중 사비기 이전에 해당하는 것으로 건물지 4와 5를 들 수 있으며, 이외에도 ‘마’지구의 목책 유구, ‘바’지구의 배수구로 추정되는 도랑유구가 있다. 목책 유구는 부분적으로 조사되었으나 산의 경사면 하단부에 위치하고 산의 지형에 따라 나란히 조성된 점으로 미루어 방어시설로 판단되며 사비 천도 이전에 화지산 일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사비기에 해당하는 유구로는 ‘가’지구 건물지 1과 2, 그리고 ‘라’지구의 건물지 8을 들 수 있다. 건물지 1은 마사토를 다져 쌓은 적심토(積心土) 위에 원형과 말각방형의 초석을 놓은 건물로 남북 4칸, 동서 1칸으로 초석 위에서는 다량의 백제 기와가 출토되었으며, 건물지 1의 뒤편에서는 위치와 방향, 규모가 유사한 건물지 2가 19m 떨어진 지점에서 확인되어 무왕대에 조성된 망해정 또는 이궁지와 관련된 건물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건물지 8은 백제 건물지로 연가(煙家)와 연통토기(煙筒土器)편이 출토되어 의례적인 기능이 강조된 가지구의 건물지 1과 2에 음식물 등을 조달해주는 생활공간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지산에서는 분묘유적도 상당수 확인되었으며 백제의 멸망 이후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골용기(藏骨容器)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조영된 토광묘와 석곽묘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출토유물로는 무문토기 및 석촉, 원저단경호, 연가 등으로 무문토기 및 석촉은 ‘다’지구의 퇴적토에서 확인되었는데, 이 중 무문토기는 완이나 호로 추정되는 저부편 2점이다.

 

  이와 같이 화지산 일원은 무문토기가 출토되는 청동기시대로부터 생활의 무대가 되었으며 사비기 이전에는 옹관, 목관을 조영하고 대벽건물을 조성하는 등 토착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다가 사비기에 이르러 국가가 경영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멸망 후 한동안 공백기를 거치다가 고려시대에 이르러 분묘가 조성되기 시작하고 조선시대에는 건물지와 분묘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유구의 분포 상태로 보아 조사되지 않은 부분에도 다양한 유구가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재청 자료 참조)

화지산 유적 전경

 

 

건물지 1

 

건물지 8

 

건물지 2

 

건물지 4,5

 

'바'지구 도랑유구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