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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여행] 천년동안 드센 물줄기를 이겨온 어쩜 우리네 인생같은 진천의 농다리

들꽃(野花) 2012. 7. 24. 06:00

[진천여행] 천년동안 드센 물줄기를 이겨온 어쩜 우리네 인생같은 진천의 농다리

 

진천농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

증평을 지나 진천으로 가는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차창너머로 만날 수 있는 진천농다리

숱한 시간을 지났으면서도

언제나 갈 수 있지

하면서도 2007년에야 처음으로 찾아갔었다.

그뒤에도 자주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에야 다시 찾아간다.

무려 5년이 지났으니 다리야 그대로겠지만 주변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진다.

 

지난밤에 비가 내렸을까?

누런 흙탕물이 진천농교 다리 밑을 흐르고 있다.

맞은편 산에는 인공폭포를 만들어놓아 시원스레 물줄기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주변의 산들도 간벌을 하여서 그런지 깔끔하고 새로이 나무를 식재하여 뭔가 자연의 미가 아닌 인공의 손이 많이 갔다는 느낌이 든다.

 

가족과 또는

연인들고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조심조심 돌다리를 건넌다.

 

진천농교는

구곡리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여있는 다리로 독특한 모습에 사람들이 '농다리' 또는 '지네다리'라고도 한다.

길이 93.6m, 너비 3.6m에 총 28칸의 마디로 지네 모양을 이루며 길게 늘여져 있는데 속을 채우는 석회물을 넣지않고 돌만으로 쌓아올린 것이 특징이다.

전국적으로 이와 비슷한 양식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과학적 공법이 돋보이는 돌다리이다.

폭이 1m도 되지 않는 다리임에도 장마 등에 의해 떠내려가지도 않고 그대로 버티고 있어, 그 튼튼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진천농교는 『상산지』와 『조선환여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초 임장군이 축조하였다고 기록이 있다.

 

농다리기념관을 지나 중부고속도로 밑을 통과한다.

 

고속도로 아래의 통과도로를 들어가기 직전

오른쪽에

'소습천, 일명 어수천약수'라고 쓰여진 비석이 보인다.

 

 

소습천의 유래를 보면

진천농다리 부근에 있는 것으로 산비탈의 반석은 품(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반석사이에서 용출되는 샘물은 연중 마르는 법이 없다.

이 샘물은 풍습에 좋고 안질에도 양약으로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또한

이 옹달샘은 어수천(御水泉)이라고도 하는데, 세종대왕께서 안질 치료차 초정에 가는 도중 이곳을지나 가실 때 이 샘물을 마시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말이 널리 알려지자 인근 지역 아낙네들은 치마로 병풍을 만들어치고 목욕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중부고속도로 밑을 통과하자 하천이 보이고 맞은편 산에는

'생거진천'이라는 커다란 글씨와 그 밑에서 인공폭포를 만들어 놓아 물이 시원스레 아래로 흐르고 있다.

언제 만들었을까?

 

 

 

 

 

비가 왔을까?

깨끗한 물이 아니라 흙탕물이 되어 흘러가고 있다.

 

 

아빠와 손을 잡고

연인들끼리

아낙네들의 손에는 양산을 들고

각자 개성에 맞게 농다리의 돌다리를 밟으며 조심조심 다리를 건너고 있다.

 

 

 

아빠품에 안겨 사진도 찍고

 

형먼저, 아우먼저

누가누구인지 먼저 부지런히 다리를 거넌고 있다.

 

큰돌, 작은 돌

돌들을 이용하여 어찌 쌓았을까?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끄덕도 없이 그자리에 버티고 있으니

선조들의 축조기술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현대적인 교량들이 바람에 의해,

또는 부실 설계 및 시공에 의해 무너져내리는 사고를 신문지나 방송에서 들을 수 있는데

현대 기술로 만든 것이 얼마가지 않고 황당한 사건을 전해듣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천년을 내려오는 동안 수 많은 물난리를 겪은 이 작은 돌다리는 오늘도 튼튼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니

현대에 사는 우리들이 다리를 만드는 기술이나 정성을 본 받아야겟다.

 

작은 도랑에 물이 흐르듯하다.

 

맞은편에 올라오니 지네처럼 생긴 진천농교가 보이고, 주차장에는 많은 차들이, 그리고 중부고속도로에는 시원스레 막힘없이 차량들이 신나게 달려가고 있다.

 

초평저수지를 향해 야산을 넘어가니 한눈에 서낭당임을 알 수 있는 나무와 그 밑에 돌무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낭당이란

서낭신에게 제사하기 위한 제단으로 지방에 따라 성황당, 할미당, 천황당, 국사당으로 불린다.

서낭신앙은 중국의 성황신앙이 전래된 것이라는 학설이 있지만, 그 이전부터 우리 나라에 있던 고유의 토착신앙이다.

서낭당은

보통 신수(神樹), 돌무더기, 당집이 단독 혹은 복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이 고개길은 옛사람들이 이용하던 교통로로 용고개라 불리고 있으며, 여기에 있는 서낭당은 신수와 돌무더기가 복합된 형태로 나타나 있다.

서낭신앙은

마을에 들어오는 액, 질병, 재해, 호환 등을 막아주는 마을 수호와 기풍의 기능을 가지며, 마을 사람들은 정초에 이곳에 머물며 제물을 차려놓고 제의를 행하였다.

 

 

초평저수지

예전에 왔을 때는 나무데크가 없어서 성황당까지 보고 멀리서 초평저수지를 보고 되돌아갔는데 오늘보니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저 위의 청소년수련원까지 저수지를 구경하며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