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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여행] 하이얀 눈으로 덮힌 지리산의 품속에 있는 천년고찰, 남원 실상사

들꽃(野花) 2012. 12. 30. 00:32

[남원여행, 절집여행] 하이얀 눈으로 덮힌 지리산의 품속에 있는 천년고찰, 남원 실상사

 

남원의 실상사

눈이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린지 며칠이 지나 지리산의 천년고찰 남원의 실상사를 찾는다.

하이얀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다.

온갖 세상사 모두 덮어버리듯 하얀 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근심걱정 없는 동심의 세계로 이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실상사로 가는 길

눈이 내려서인지 실상사의 매표소 관리하는 아저씨들이 다리위의 눈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한국의 사찰이 산속에 지어진것이 대부분인데 남원의 실상사는 지리산 아래 산내면 들판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실상사는 선(禪)의 가르침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뿌리를 내린 곳으로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 증각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여 마조도일선사의 제자인 서당지장선사의 선맥을 이어받고 돌아와 구산선문 중 처음으로 실상선문을 열었던 곳으로 2대조 수철화상이 법맥을 이어서 고려까지 선종의 근본도량으로 자리 잡아 왔다.

 

실상사는 산내에 백장암, 약수암, 서진암 등 유서 깊은 암자가 산사의 예스런 분위를 전하고 있으며 사내에는 신라시대의 석탑, 석등, 철불 등 국보 1점과 보물 11점과 다수의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눈내린 길을 걷는다.

매표소를 지나 다리를 건너기 전 좌측에는 실상사와 첫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15호 남원 실상사 석장승이 떡하니 부리부리 한 눈으로 실상사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다리 건너기전 좌측에 있는 석장승

 

중요민속문화재 제15호 남원 실상사 석장승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을 한다.

실상사 입구에 있는 3기의 돌장승 역시 경계표시와 함께 경내의 부정을 금하는 뜻에서 세운 것으로 보여진다.

좌측의 돌장승이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이고,

중앙에 있는 석장승이 괴목 아래에 있는 대장군(大將軍)이고,

제일 오른쪽에 있는 석장승이 논두렁 가에 있는 돌장승이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다.

3기의 장승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머리에 벙거지를 쓰고 있으며 크고 둥근 눈에 뭉툭한 주먹코이다. 윗 송곳니 두 개가 삐져나와 험상궂은 듯 하지만 입가의 미소가 순한 심성을 드러내고 있다. 길게 수염이 표시되고 몸체에는 좌우 각각 상원주장군, 대장군, 옹호금사축귀장군이라는 이름이 새겨있다. 다만 수염이 반대로 향하고 있어 상원주장군과 대장군은 대칭적인 한 쌍을 염두에 둔 조각인 듯싶다. 대장군의 기단석(基壇石)과 상원주장군의 뒷면에 있는 기록으로 보아 실상사 석장승들은 조선 영조 원년(1725)과 영조 7년(1731)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잔돌사이로 흐르는 하천에도 하얀눈이 내려있다.

 

 

수확을 끝낸 논 너머로 실상사의 담장이 보이고 그 너머로 전각들의 지붕만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몇년 전 봄에 왔을 때는 이곳에 자운영이 활짝피어 실상사의 방문을 축하해 주었는데 오늘은 하얀 눈이 세상의 근심걱정을 잊으라는 듯 덮어버리고 있다.

 

 

 

활짝핀 자운영의 모습 

 

 

연꽃들이 저버리고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너머로 실상사의 천왕문이 반겨주고 있다. 

일반 사찰에 있는 일주문이 보이지 않는다.

 

 

천왕문은

맑고 깨끗해야 할 부처님의 세계, 즉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동쪽의 持國天王(지국천왕),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깨서 삼보(三寶)를 지키시는 문이다. 나쁜 것을 깨 버리고 올바른 길을 펼치려는 마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그 뜻이 있다.

 

- 동쪽을 수호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비파(琵琶)를 들고 있고, 선한 이에게는 복을, 악한 자에게 벌을 줍니다.

 - 서쪽을 수호하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용관, 여의주(如意珠), 또는 견색(絹索; 새끼줄)을 들고 있으며, 악인에게 고통을 줘 구도심을 일으키게 한다

 - 남쪽을 수호하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보검(寶劒)을 들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덕을 베풉니다.

 - 북쪽을 수호하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보탑(寶塔)을 들고 어둠속을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해 줍니다.

 - 대체로 이들 사천왕은 왼쪽에 동.남천왕, 오른쪽에 서.북천왕이 배치된다.

이 사천왕들은 불교경전에 나타나는 인도 재래의 神(신)인데, 불교의 수호신이 되어서 사방을 지키게 된 것이다. 일정한 모습이 처음부터 규정된 것이 아니어서 인도에서는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중앙 아시아나 중국, 우리 나라로 전파되는 동안 무인상(無人像)으로 변형되었다.

 

 

전통찻집

'뜰 앞의 잣나무'에서 차 한잔 마셨으면 하지만 시간이 없어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

설경으로 덮힌 실상사를 온 몸으로 느끼며 차 한잔을 마시고 픈 간절하다.

 

 

실상사에서 흩어져 있던 기와조각들을 모아 놓은 모습

다른 사찰에서는 담장에 박아 놓은 모습을 본적도 있는데 여기서는 삼층탑처럼 쌓아 놓았다.

 

 

하얀 눈으로 덮힌 절의 모습이

그렇치 않아도 주인은 보이지 않고 객들만 분주히 오가는 절에 지난밤에 내린 하얀 눈이 더욱더 고요하게 하고 있다.

 

 

 

범종각

범종은 의식이나 행사 때 또는 대중을 모이게 하거나 때를 알리기 위해서 친다.

범이란 우주 만물이며 진리란 뜻으로 바로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이 범종이다. 범종의 신앙적 의미는 모든 중생이 종소리를 듣는 순간 번뇌가 없어지고 지혜가 생겨 악도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지옥중생까지 제도하는데 있다.

범종은 일반적으로 청정한 불사나 범찰에서 사용하는 종을 일컫는 말이다.

 

원컨데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 퍼져 번뇌가 소멸되며 어둠에서 밝아지고 삼악도의 고통을 여의고 도산을 허물어 모든 중생이 정각을 이루게 해 달라는 중생제도의 간절한 발원이 담겨있다. 새벽예불의 종송은 미망의 잠을 깨우는 28번의 타종 소리에 실려 허공계로 울려퍼진다.

저녁예불 때는 33번 타종한다.

 

1967년 실상사 경내 약사전 동남쪽에서 윗부분이 깨진 신라 시대의 동종 파편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는 천의(天衣)자락을 휘날리며 생황과 피리를 불고 내려오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현재 범종각에 걸려 있는 동종은 이 파편을 기초로 복원한 것이다.

 

 

 

차마 이 추운 겨울날

꽁꽁 얼어붙은 감로주를 마실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니 먹을 수가 없다.

 

 보물 제37호 남원 실상사 동 · 서 삼층석탑

실상사의 중심법당인 보광전 앞뜰에 동·서로 세워져 있는 두 탑이다.
탑은 2층으로 된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동서 두 탑 모두 탑의 머리장식이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희귀한 예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통일신라시대의 정형을 보이며,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이며, 밑면의 받침은 4단이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는데, 그 정도가 부드러우면서도 경쾌하다.

특히 탑의 머리장식은 원래대로 잘 보존되어 각 장식부재들이 차례대로 올려져 있다.

이와 같이 두 탑은 규모나 양식이 같아서 동시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대작은 아니지만 돌의 구성이 정돈되어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실상사의 법당인 보광전을 뒤로하고 극락전으로 향한다.

 

 

 보물 제34호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비

실상사에 위치한 수철화상의 탑비이다.
수철화상은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로, 본래 심원사에 머물다가 뒤에 실상사에 들어와
이 절의 두번째 창건주가 되었다.

진성여왕 7년(893)에 77세로 입적하니, 왕은 그의 시호를 ‘수철화상’이라 하고, 탑 이름을 ‘능가보월’이라 내리었다. 
비문에는 수철화상의 출생에서 입적까지의 행적과 사리탑을 세우게 된 경위 등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실상사에서 입적하였으나 심원사의 승려이었기 때문에 비문에는 ‘심원사수철화상’으로 적고 있다. 비문을 짓고 쓴 사람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마멸과 손상이 심한 편이다.

탑비의 형식은 당시의 일반적인 탑비 형식과는 달리 거북모양의 받침돌 대신 안상(眼象) 6구를 얕게 새긴 직사각형의 받침돌을 두어 그 위로 비를 세웠다. 비를 꽂아두는 비좌(碑座)에는 큼직한 연꽃을 둘렀다. 머릿돌에는 구름 속에 용 두마리가 대칭하여 여의주를 다투는 듯한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그 앞면 중앙에는 ‘능가보월탑비’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조각수법이 형식적이고 꾸밈이 약화된 경향이 뚜렷하다.

비의 건립 연대는 효공왕(재위 897∼912)대로 추정되고, 글씨는 당대를 전후하여 성행한 구양순체를 따랐다.

 

 

 

능가보월탑비 

 

 

극락전의 옆 모습

극락전 오른쪽에 수철화상탑이 보인다.

 

 

보물 제33호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

실상사 안에 있는 극락전을 향하여 그 오른쪽에 서 있는 탑으로, 수철화상의 사리를 모셔 놓은 사리탑이다.

탑은 신라 석조부도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아 맨 아래 바닥돌에서 지붕까지 모두 8각을 이루고 있다.

기단(基壇)은 아래받침돌에 구름과 용무늬와 사자가 새겨져 있으나 마멸이 심하다.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가 삼중으로 조각되어 둘러져 있다. 8각의 탑몸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각 면에는 문(門) 모양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얇고 경사가 완만하며, 처마부분에는 엷은 곡선을 이루고 서까래를 새겼다. 지붕 경사면에는 기와골을 표시하였고, 그 끝에는 막새기와까지 표현함으로써 목조건축의 지붕 양식을 충실히 모방하였다. 꼭대기에는 몇 층의 단이 있고, 그 위에 원형이 작은 돌에 있을 뿐 모두 없어졌다.

탑 옆에는 탑비가 건립되어 있어서 이 탑의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관련된 내용을 알 수 있다. 비문에 의하면, 수철화상이 진성여왕 7년(893)에 입적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탑을 세운 시기를 이 즈음으로 추측하고 있다.
 

 

 

 

 

보물 제39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비

실상사에 있는 증각대사의 탑비로 증각대사는 일명 홍척국사 ·남한조사로 불리며,

통일신라 헌강왕 때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흥덕왕 1년(826)에 귀국한 뒤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파를 일으켜 세운 고승이다.

비는 비몸돌이 없어진 채 현재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있다. 받침돌은 용의 머리를 형상화 하지않고 거북의 머리를 그대로 충실히 따랐다. 머릿돌은 경주의 ‘태종무열왕릉비’계열에 속하는 우수한 조각을 보여주는데, 앞면 중앙에 ‘응료탑비(凝蓼塔碑)’라는 비명칭을 새겨 두었다.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의 신라 무열왕릉비와 같이 한국 석비의 고전적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대사의 묘탑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보물 제38호)은 탑비의 뒤편 언덕에 세워져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5호 실상사 극락전

극락전은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불에 탔다가 다시 지어졌다.

절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자료에 의하면 순조 31년(1831)에 지어졌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칸에는 세짝의 문을 달았고 양쪽은 한짝 씩의 문을 달았다. 건물 안은 바닥에 마루를 깔고, 뒤쪽 높은 기둥 사이에 후불벽을 설치하고 불단 위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보물 제38호 남원 실상사 증각대사탑

홍척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팔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전형적인 팔각원당형 탑이다.

홍척은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로 시호는 '증각’이다.

탑은 기단(基壇)은 팔각형의 석재를 여러층 쌓은 뒤 연꽃이 피어있는 모양의 돌을 올렸다.

각 면의 조각들은 닳아 없어져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고 윗받침돌의 연꽃잎만이 뚜렷하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되었는데 낮은 편이다. 몸돌은 기둥 모양을 새겨 모서리를 정하고 각 면에 아치형의 문(門)을 새겼다. 그곳에 문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하였다. 지붕돌에는 목조건축의 처마선이 잘 묘사되어 있다. 전체적인 조형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35호 남원 실상사 석등

 

실상사 보광명전 앞뜰에 세워져 있는 석등이다.
석등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밑에 3단의 받침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는데, 평면은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받침부분의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8장의 꽃잎을 대칭적으로 새겼다.

화사석은 8면에 모두 창을 뚫었는데, 창 주위로 구멍들이 나 있어 창문을 달기 위해 뚫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가 모두 위로 치켜올려진 상태로, 돌출된 꽃모양 조각을 얹었다.

머리장식에는 화려한 무늬를 새겨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장식성을 잘 보여준다.

이 석등은 규모가 커서 석등 앞에 불을 밝힐 때 쓰도록 돌사다리를 만들어 놓았으며,

지붕돌의 귀퉁이마다 새긴 꽃모양이나 받침돌의 연꽃무늬가 형식적인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인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7호 실상사 동종

실상사 보광전내에 있는 높이 123㎝, 입 지름 83㎝의 종이다.

종을 매다는 고리는 용이 종머리를 딛고 있는 형상이며,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은 간략화 된 용이 꼬리를 휘감은 모양을 하고있다. 몸통 위쪽은 원안에 범자를 양각한 문양을 12곳에 배치하였다. 그 아래 사각형을 이룬 유곽이 4면에 있으며, 사이사이에 두 손으로 꽃가지를 잡고 보관을 쓴 보살상이 1구씩 배치되었다. 유곽의 테두리는 덩굴무늬로 장식되었고, 안쪽으로는 꽃 모양의 유두 9개가 있다.

종에 새긴 글을 통해 조선 숙종 20년(1694)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실상사 동종은 몸통에 종을 만든 사람이름과 강희33년(1694)이라는 주조 년대가 새겨져 있어

침허 조사사 실상사를 중찰할 때 사용한 범종으로 보고 있다.

 

범종 아래에는 우리나라화 일본 지도가 새겨져 있어,

이 종을 치면 일본의경거망동을 경고하고 동시에 우리나라를 흥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새롭게 정비될 약사전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보물 제41호 남원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실상사 보광전 오른편의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실상사 창건 당시부터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유명한 철불이다.

통일신라 후기에는 지방의 선종사원을 중심으로 철로 만든 불상이 활발하게 만들어졌는데,

이 불상 역시 한 예로서 당시의 불상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머리에는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기교있게 붙여 놓았고, 정수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아담한 크기로 자리잡고 있다. 귀는 그런대로 긴 편이고, 목에 있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는 겨우 표현되고 있다. 좁아진 이마, 초생달 모양의 바로 뜬 눈, 다문 입 등의 근엄한 묘사는 이전의 활기차고 부드러운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어깨선이 부드럽고 가슴도 볼륨있게 처리되었지만 전반적으로 다소 둔중한 느낌을 주며, 양 어깨에 모두 걸쳐 입은 옷 역시 아래로 내려올수록 무거운 느낌을 준다. 옷주름은 U자형으로 짧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에 유행하던 옷주름 표현기법으로 비교적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상과 같은 특징을 지닌 실상사 철제여래좌상은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던 8세기의 불상이 다소 느슨해지고 탄력이 줄어드는 9세기 불상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인 작품이라는 점에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오른손을 들고 왼손을 내린 9품인 두 손은 새로 찾아낸 원래 철제손 그대로 1986년도에 복원한 것이다.

무릎 아래부분 역시 원래 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예전의 약사전 

 

 

흰눈에 싸여있는 실상사 전경

일행들의 모습들이 사라져버린 실상사

너무나 고요하다.

 

 

 

실상사의 뒷 모습

 

 

실상사 뒤편에 있는 실상사 승탑을 찾아가는 길

소나무가 우거져 있는 숲속에 두 개의 부도가 사이좋게 있다.

 

 

푸른 소나무와 하얀 눈

길을 걸어간다.

 

 

보물 제36호 남원 실상사 승탑

실상사 뒤의 솔밭 근처에 있는 승탑으로 탑은 일반적인 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맨 아래 바닥돌에서 지붕까지 모두 8각을 이루고 있다.

아래받침돌에는 용틀임과 구름무늬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고, 가운데받침돌은 아무런 무늬를 새기지 않았다.

윗받침돌에는 연꽃 8잎이 위를 향해 피어 탑몸돌을 받치고, 각 모서리를 따라 꽃장식이 표현되어 있다.

탑몸돌은 한 면에만 문을 얕게 조각하고, 다른 면에는 아무 장식이 없다.

지붕돌은 윗면의 경사가 급하고, 여덟 곳의 귀퉁이에는 작은 꽃이 장식되었다.
꼭대기에는 꾸밈이 없는 둥근 돌이 놓이고, 그 위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놓여 있다.

너비에 비해 길쭉해 보여 안정감이 없어 보이지만 정제된 편이다. 약한 석질 탓인지 조각은 간소하고 소박한 편이며, 특히 윗받침돌의 꽃장식 표현은 심하게 닳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에 속하는 탑으로서는 걸작에 속한다고 하겠다. 만들어진 연대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충실하게 계승한 고려 전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승탑너머로 저 멀리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겨울날의 지리산은 어떨까?

 

 

 

실상사 승탑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실상사의 뒷 모습을 담아본다.

사찰이 보통 산에 있으나 실상사는 평지에 있어 실상사 전체의 모습을 담아보지 못해 아쉬웠다. 

 

 

여름날

시원한 계곡물이 발을 담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