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여행

[제천여행] 나의 살던 고향, 철없던 시절에 뛰어놀던 그곳에서 만난 관란정

들꽃(野花) 2013. 3. 6. 15:27

[제천여행] 나의 살던 고향, 철없던 시절에 뛰어놀던 그곳에서 만난 관란정

 

관란정

서강가 높디 높은 절벽 위에 있는 관란정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끝내주는 곳이다.

영월 한반도면 선암마을의 한반도지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

어쩜 한반도지형보다도 더 높게, 더 넓게, 더 멀리 볼 수 있는 곳이 관란정에서 보는 세상일 것이다.

 

철없던 시절에 뛰어 놀던 곳

친구들과 강에 놀러 가자

하면 한달음에 달려가던 곳,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강이 너무나 좋았었다.

 

 

어떻습니까?

정말 끝내주죠?

여기에서 바라보는 세상

 

저기 중간 뒤쯤 산능선이 너울처럼 보이는 곳이 바로 한반도 지형이랍니다.

다들 가 보셨죠?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강을 바라본다.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 얼음이 저렇게 동동 떠 있으면

도끼나 나무 자르는 톱으로 자르고 자르고, 가운데는 동그랗게 구멍을 뚫어 기다란 나무로 노를 삼아 밀며 얼음배를 만들어 놀곤 하였었다.

물론 꼭 하는 것이 있었지.

누군가는 꼭 물 속에 빠진다는 사실

그럼 불을 피우고 말리다가 꼭 옷에 불똥이 튀서 빵구를 내고 집에가서 된통 혼이 나는 것은 기본이었지.

그때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지?

 

한반도지형 앞을 흐르는 평창강

평창강과 주천강, 두 강이 합쳐져 서강이 되고 그렇게 흐르고 흘러 영월로, 제천으로, 단양으로, 충주로 흘러서 서울 한복판을 흘러 서해로 가는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는 곳

오늘 그곳에 내가 왔다.

(시골 고향집에서 가까워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올 수 있다.)

 

 

 

원호유호비 및 관란정으로 가는 길

예전에는 비포장길이었으나 지금은 포장이 되어있어 걷기에는 편하지만 자연의 맛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가운데 산 아래 있는 밭이 예전에 우리밭이었는데.......

저곳에 고추를 많이 심었던 기억이 난다.

 

고추 따기 정말???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고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포장된 길을 걷는다.

 

 

작년인가 딸래미랑 이곳에 왔었을 때

그때는 지금처럼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누군가 넘어졌으니.

내가? 아니 딸래미가.

일으켜 세워주지 않는다고 아빠가 맞냐고 하던 일이 생각난다.

ㅎㅎㅎ~

얼마나 재미있는데 일으켜 세워

꿈깨라!!

(아빠 맞죠?)

 

 

 

포장도 되어있고 나무데크도 눈에 들어온다.

나무데크가 왜 생겼지.

 

소나무 사이로 관란정 정자가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친구들과의 추억이 서린 곳

오늘 이렇게 나 혼자 찾아왔다.

 

 

 

사람의 발자국은 달랑 하나, 나보다 앞서 간 사람이 있다.

누굴까?

 

 

 

 

제천 원호 유허비 및 관란정(충청북도 기념물 제92호)

 

원호는 생육신 중 한 사람으로 자는 자허 호는 무향 또는 관란이며 본관은 원주이다.

1423년(세종 5년)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으나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고향인 원주에 내려가 은거하였으며, 단종이 죽자 영월에서 3년 상을 마쳤다. 그후 세조가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생을 마쳤으며 1782년(정조 6년)에 이르러 이조판서에 추종되었고 시호는 정간이다.

 

  원호는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버리고 원주로 내려가 초야에 묻혀 지냈다. 후에 단종이 청령포에 유배되자, 원호는 서강가에 단을 쌓고 조석으로 청령포를 향해 절을 올리고 단종을 그리워하며 지냈다.

  손수 가꾼 채소와 과일이며 음식을 단종에게 보낼 때는 풀잎에 글을 지어 빈 박통에 넣고 입구를 막아 물에 띄워 보내면 영월의 유배지 청령포의 물굽이 치는 곳에서 단종이 받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은 뒤에는 항상 단종의 장릉이 있는 동쪽을 향해 앉고 누웠다.

단종을 향한 원호의 일편단심을 깊고도 굳었던 것이다.

 

그 뒤 그의 후손과 유학자들이 원호의 충의를 기리고자 헌종 11년(1845)에 비석과 정자를 세우고 그의 호를  따서 관란정이라 하였다. 관란정은 1941년에 개축하였고, 1970년과 1987년에 다시 고쳐 오늘에 이른다.

 

 

 

역사가 살아있는 관란정

 

 

앞쪽에 있는 것이 유허비이며 뒷쪽이 관란정이다.

주변을 발아래 두는 곳

강에서 바라보면 정말 높다.

실제로 상당한 높이다.

 

 

 

어렸을 적 노닐 때는 저기 보이는 난간이 없었는데,

그래도 아무 꺼리김 없이 저 밑을 내려다 보고, 저기서 돌팔매질을 하여 강가에 떨어지는 지 구경하곤 하였었다.

 

 

 

 

 

관란정 주변에 나무데크가 만들어져 있는데 발목까지 빠지는 관계로 어디까지 만들어졌는지 가보지 못했다.

 

 

 

저 소나무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내 기억 속에도 저 나무는 있었는데.......

 

 

저 아래

강으로 삐죽 튀어나온 바위가 보인다.

 

 

 

 

저 바위를 '아이고 바위'라고 한다.

초상을 당하였을 때 곡을 하는데 그때 곡을 하는 소리를 '아이고'라고 한다.

저 바위 위에서 '아이고' 세 번을 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고 하는 바위다.

 

철없던 시절 호기심이 많았었지.

그때 저 바위 위에서 세 번은 자신이 없고 두번만 '아이고'를 외치고 뒤로 도망곤 했었는데.......

과연 정말로 강에 빠질까?

나도 모르겠다.

두번밖에 안 했으니 알 턱이 있나.

 

 

하이얀 눈에 단청이 더욱 빛이 난다.

 

 

 

새로이 만들어진 전망대

 

 

 

누구없소?

나 사진좀 찍어주오.

아무리 불러봐도

어릴 적 친구들은 온데 간데 없고

길가는 나그네도 없는 한적한 곳

나 지금 외톨이다.

 

그래서 관란정 바닥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셀카를 찍어본다.

 

나 셀카 잘 찍네.

 

 

 

주천강과 평창강이 합쳐진 곳의 마을 이름이 세네뜰이다.

그 앞을 흘러 이렇게 산쪽으로 가까이 강물이 흘렀었는데 세월의 흐름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물줄기가 바뀌어서 아래 사진처럼 중앙으로 흐르고 있다.

 

 

 

여름날

시커먼 자동차 바퀴 튜브에 하늘을 이불 삼아 누워서 저 밑을 유유히 떠다녔었는데.

 

 

 

가만히 누워 있으면 강물이 알아서 저 밑에까지 나를 실어날랐었지.

그럼 다시 무거운 튜브를 끌고 올라와서 다시금 내려갔었는데......

가끔은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물에 가만히 가라앉기를 시도하다 발이 닿지도 않아 얼른 올라오곤 했었는데

그러고 보면

참 겁없이 놀았네.

지금은 하라고 해도 못하겠다.

그렇게 어려서 물과 놀아서 그런지 지금도 물이 겁나진 않는다.

왠지 물만 보면 들어가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물론 지금도 여행가면 가끔씩 객기를 부리곤한다.

 

 

 

오늘이 설 전날

마눌은 뭐하고 있을까?

아까 나올 때 만두 만들고 있었는데.

전이나 튀김을 먹으러 가야겠다.

어머니가 만드신 식혜

얼음이 동동 떠있는 달콤하고 시원한 식혜 한잔 마시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