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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여행] 일곱 손가락이 동상으로 떨어진 김순의 효를 일컫는 칠지지효(김순 효자문)

들꽃(野花) 2013. 3. 10. 23:29

[음성여행] 일곱 손가락이 동상으로 떨어진 김순의 효를 일컫는 칠지지효

 

칠지지효(七指之孝)

칠지지효는 엄동설한에 일곱손가락이 동상으로 떨어지도록 효성이 지극한 김순의 효를 가리키는 말이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 통동리 39번지에 있는 김순의 효자문(孝子門)

효자문은 임금으로부터 정려를 받아 건립하는 문을 일컫는 말로 여기서 정려(旌閭)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여 이르는 말이다.

 

 

 

김순은 자가 여균, 호는 정암, 본관은 경주사람으로,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부모님의 말씀을 한번도 어긴 일이 없고, 아침 저녁으로 문안드리는 것은 물론 잠자리에 드실 때 또한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침구를 손질해 드리는 등 효행이 지극하여 마을 사람들로부터 효자라는 칭찬을 받아왔다.

그러던 중 부친의 상을 당하여 묘소를 집 앞산에 모시고 매일 풍설을 무릅쓰고 아침 저녁으로 묘소를 찾아 지성으로 참배하여 왔다.

그런 관계로 엄동설한에 일곱 손가락이 동상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런 효행을 하는 김순을 가리켜 효성이 지극한 칠지지효라 불렀다.

밤에는 호랑이가 와서 같이 지냈고, 낮에는 산새들이 날아와서 놀았다고 전한다.

 

이와 같은 김순의 효행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김순의 효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임금이 사헌부감찰을 증직하고 김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고종 20년(1883)에 정려를 받아 건립한 효자문이다.

 

 

 

효자문은 원래 현 위치에서 동쪽으로 약 150m 떨아진 산등성이에 있었으나 1983년 통동리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졌다.

 

 아직은 잔설이 남아있어 겨울의 끝자락에 있는 듯하다.

 

 

효자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양 옆에는 풍벽을 달고 초석은 팔각 석주형이며, 전후 좌우 네 면은 홍살을 둘렀다.

 

 

 

효자각 내부에는 '효자동몽교관조봉대부사헌부감찰경주김순지려 성상이십년계미정월명정'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편액 밑에는 충주 유생이 올린 상소문이 판각되어 있다.

뒷면에는 김홍이 찬한 정려서 기문이 새겨져 있다.

 

 세상 사람들아!

어버이 살아질제 효도를 다해 후회없는 삶이 되시길......